[IV] 과학
6.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1978
제임스 에프라임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k, 1919- )은 자신을 “행성 의사”(planetary physicians)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0년 동안 화학과 의학 공부를 한 후에 천문학과 대기과학, 생물학을 공부한 행성 의사로서 그는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이아의 복수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가장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괴로운 작업을 나이 90이 넘도록 계속하고 있다. 그는 1919년 7월 26일에 영국의 런던 북부 가든 시티에서 태어났다. 영국 신사도의 예절과 책임감이 강조되던 시대에 성장한 그는 어려서 퀘이커의 친우회 교육을 받았다. 맨체스터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는 동안에는 로마 가톨릭 학생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처음에 양심적 병역자로 등록했던 것이 퀘이커의 평화주의 영향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나치의 잔학성을 깨닫고 징집에 응했으나 의학공부를 계속하도록 명령받았다. 런던 위생 및 열대 의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던 동안에 그는 종교적 신앙을 떠나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1948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에서 예일대학교, 베일러 의과대학, 하바드대학교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독자적인 과학 연구에만 헌신하기 위해 시골에 묻혀 오랫동안 가난을 견디며 살았던 학자였다. 부모를 봉양해야 했으며 자녀 셋을 키워야 했지만 많은 빚을 진 채 연구를 계속했다. 한편 그는 1960년대에 자신의 발명품들로 큰돈을 벌 기회도 있었지만, 재산을 모으는 일 역시 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이처럼 과학의 최전선에서 살았던 그는 인습적인 지혜들, 특히 도그마에 도전했으며, 생명체들이 단순히 환경에 적응한다는 생물학적인 도그마에 도전해서 그 도그마가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나중에 그의 학설이 인정을 받게 되면서부터 연구 기금을 받아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는 “가이아 학설”이라는 혁명적인 이론을 발전시켜, 지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놓은 과학자로 유명하다. 또한 그가 발명한 전자포획감지기를 통해 살충제들과 해로운 화학물질들이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또한 CFC가 대기권에 축적되어 오존층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을 뿐만이 아니라, 바다의 미생물 조류(藻類)들과 그 위의 구름들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 매우 독창적인 과학자이다. 그는 1994년 이후 옥스퍼드 대학 그린 칼리지의 명예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1974년에 영국 왕립원의 회원에 피선되었으며, 1986년부터 1990년까지 해양생물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1990년에는 네덜란드 학술원이 수여하는 제1회 지구환경 암스테르담 상을 수상했다. 또한 1996년에는 이탈리아 노니노 가문이 수여하는 노니노 상과 볼보회사의 볼보 환경상을 받았고, 1997년에는 일본의 아사이유리재단이 수여하는 권위 있는 푸른지구상을 수상했다. 1990년 영국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상급훈작사를 하사받았다. 2006년에는 지질학회 최고의 메달인 월라스톤 메달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가이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Gaia: A New Look at Life on Earth, 1978, 홍욱희 역, 2004>, <가이아의 시대 The Ages of Gaia, 1988, 홍욱희 역, 1992>, <행성 의학 The Practical Science of Planetary Medicine, 1991>, 자서전 <가이아에 경의를 표하며 Homage to Gaia, 2000>, <가이아의 복수: 지구의 기후 위기와 인류의 운명 The Revenge of Gaia: Earth's Climate Crisis & the Fate of Humanity, 2006, 이한음 역, 2008>, <가이아의 사라지는 얼굴: 마지막 경고, The Vanishing Face of Gaia: A Final Warning, 2009> 등이 있다.
[가이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Gaia: A New Look at Life on Earth)/ 1978]의 내용 - 가이아 이론(Gaia 理論)은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한 가설로, 1972년의 짧은 논문 〈대기권 분석을 통해 본 가이아 연구〉에 이어 1978년 저서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통해 소개되었다. 가이아(Gaia)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으로서, 지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것에 착안해서 러브록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신성하고 지성적인 즉, 능동적이고 살아 있는 지구를 가리키는 존재로 가이아를 사용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가이아 이론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지만 지구온난화 현상과 최근의 지구환경 문제와 관련해 새롭게 주목받았으며, 환경주의와 관련해서는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주류 생물학계에서는 냉담하게 반응한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은 이기성과 맹목성에 이끌려서 진행된다면서 강력하게 반박했고, 《풀리는 무지개》에서 러브록과 마굴리스를 ‘나쁜 시적 과학’의 예시 중 하나로 비판했다.
(박상철 서평) 봄비가 그치고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가볍게 부딪히는 산들바람이 상쾌하다. 일 년 내내 이런 날씨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굳이 이런 이상적인 날씨가 아니라도 지구는 생물이 존재하기에 적합한 곳임은 분명하다. 수많은 별들 중에 유독 지구에서만 파랑과 녹색이 공존하는 복잡한 생명체의 장이 펼쳐진 신비한 현상에 대해 근대과학의 주류적 시각은 태양복사열 증가, 화산 폭발, 운석의 충돌, 대륙 이동 등 여러 지질학적 원인들에 의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대기와 해양의 조성이 변화하고 또 기후가 바뀌었으며, 생물들은 그러한 주위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을 밟아 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1970년대 초 영국의 대기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 이론'은 지구의 역사와 생물의 진화에 대해 지금까지의 견해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살아있는 거대한 유기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의 생물권은 단순히 주위환경에 적응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지구의 물리화학적 환경을 활발하게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원문 읽기 - 지구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은 정상 상태의 화학평형에서 기대되는 값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현재의 산화성 대기 중에 존재하는 메탄가스와 아산화질소, 심지어 질소까지도 10배 이상 화학평형의 법칙을 거역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비평형 상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기권이 단순히 생물체들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만 아니라, 필경 생물학적 구조물에 더욱 밀접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해설]=지구의 대기조성은 결코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 대기의 변화를 가설의 가장 큰 증거로 들고 있다. 지구의 대기는 다른 행성들의 대기와는 달리 엔트로피가 무척 낮다. 지구 외부의 엔트로피를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면서 지구 내부의 엔트로피를 늘리거나,적어도 주변에 비해 낮은 엔트로피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엔트로피가 낮다는 말은 에너지가 나올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현재 추정되고 있는 원시 지구의 대기는 현재의 금성이나 화성과 거의 비슷하다. 이처럼 낮은 에너지의 암모니아, 메탄가스, 이산화탄소 등의 원시 지구 대기가 질소,산소가 주가 되는 현재의 대기로 바뀌는 것은 자연적인 평형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며 결국 가이아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이아의 역할은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원문 읽기 - 가장 미소한 종류에서부터 가장 거대한 종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들이 갖는 매우 특별한 속성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도달하기 위해 시행착오라는 사이버네틱 과정을 통해 이에 합당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가동시키고, 또 유지하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 지구적 규모에서 가동되고,또 그것의 목적이 생물체가 잘 번성하도록 적절하게 물리·화학적 조건을 확립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로 하여금 가이아의 존재를 명백히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증거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해설]=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지구의 환경 조성에 참여하고 있다. 사이버네틱 시스템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온도 조절계를 들 수 있다. 온도 조절계는 감지기가 전달한 정보를 기입력된 정보와 비교해 방안의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낮아지면 발열 장치의 스위치를 켜고 또 실내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스위치를 끄는 기능을 수행한다. 러브록은 지구의 생물과 무생물이 한데 어울려서 하나의 거대한 사이버네틱 시스템, 즉 가이아라는 복합적 실체(complex entity)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이아는 스스로의 존재를 위해 능동적으로 주위환경을 조절한다고 제안한다.
◆원문 읽기 - 지구 생물계의 가장 필수적인 구성원은 대륙붕의 바닥과 지표면 바로 밑 토양 속에서 생활하는 생물들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형 동식물들은 사실상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것들은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광고하는 데 이용되는 세련된 세일즈맨과 우아한 모델들처럼 겉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꼭 필수적인 존재는 아닌 셈이다. 진실로 강인하고 신뢰할 만한 지구의 일꾼은 바로 토양 속과 바다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미생물들인데,그들 주위의 환경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자외선 복사에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해설]=생물계의 필수적인 구성원은 미생물이다. 우리는 흔히 핵무기나 대기권의 오존층 파괴로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시 지구에서 탄생한 최초의 생명체는 강력한 방사능과 자외선 속에서 살아남았고 지금도 토양 속 바다 밑바닥에 존재한다. 즉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은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생각이며 가이아는 치명적인 변화를 견뎌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환경오염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가이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순한 오염물질의 배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오염물질은 자연 상태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시간이 가면 자정작용을 통해 해결될 수도 있다. 가장 치명적인 환경문제는 바로 열대우림과 같은 가이아의 핵심부분을 파괴하는 것이다.
◆원문 읽기 - 가이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생물권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시혜적 식민지주의와 마찬가지로 설득력을 잃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시도들은 모두 인간이 이 지구의 지배자라거나,또는 비록 소유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집주인 정도는 된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이아 이론이 암시하는 바는,인류는 바로 가이아의 파트너이자 그의 한 부분이며 우리는 가이아의 일원으로서 매우 민주주의적인 실체 속에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설]=인간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라.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너무나 미미할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마치 인간이 지구의 주인인양 행세하지만 가이아의 관점에 따르면 단지 그 구성요소에 불과하다. 인류의 멸망이 곧 지구의 멸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한 자연과의 공존은 불가능할 것이다. 수많은 생물종들이 멸망과 탄생을 거듭했지만 생태계 자체는 지속적으로 유지돼 왔고, 그것만이 진정 유의미한 것일 수 있다.
가이아 가설은 왜 지구만이 가이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그 한계가 있다. 화성과 금성도 지구에 가까이 있는데 왜 그 행성들에서는 지구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일어나지 않고 반대 방향의 피드백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을 의식이 없는 무생물에서 자기 조절 기능을 가지는 하나의 초유기체로 끌어올림으로서 종전의 환경에 대한 유물론적 시각과는 달리 생물학적 측면에서의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james_lovelock_reflects_on_gaias_legacy_nature_news_comme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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