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IV] 과학 7.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1975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2. 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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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과학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Hew Synthesis)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이 생물학과 진화론 그리고 생태학과 생태지리학 이론들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종합한 1975년도에 발간된 책입니다. 윌슨은 윌리엄 해밀턴 (W. D. Hamilton)처럼 곤충의 사회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라면,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의 사회적 행동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윌슨은 20세기 생물학과 진화론 그리고 생태학과 생태지리학 이론들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종합했으며, 사회학은 종래 진화생물학인 현대종합설의 일부로 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은 제 외동아들녀석이 아주 어렸을때 개미를 연구하고 그 결과들로 웹페이지도 만들고 했을때 직접 그 웹페이지에 댓글을 달아주던 아주 자상한 개미연구의 대가로 기억허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비가 볼때 철없는 일에만 빠져있는 아들이라 속이 많이 상하지만 아직도 어린시절 개미연구를 한 아들의 자료들을 보물단지 간직하듯 간직하고 있는 철없는 아빠이기도 합니다.


7.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1975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1929년 6월 10일 ~ )은 개미 전공의 생물학자로, "사회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20세기 후반을 빛낸 대표적 과학 지성.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저술가’ ‘섬 생물지리학 이론과 사회생물학 창시자’ ‘개미 연구의 세계적 대가’ 등으로 불리며 생물학 전반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미국 정부에서 과학연구분야의 혁신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메달 ‘미국국가과학메달’, 생물학계 노벨상 ‘국제생물학상’, 스위스 한림원이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는 분야에서 공을 세운 학자에게 주는 ‘크래포드상’ 등을 받으며 세계 석학으로 위치를 다졌다. 첫 번째 퓰리처상 수상을 안겨준 저작은 인간 본성을 생물학적으로 탐구한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1978)’다.  ‘닭은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며 반향을 일으켰다. 생명체의 행동은 유전자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은 유전자결정론으로 곡해돼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합리화한다는 비판에 휩싸여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두 번째 수상작인 ‘개미(The Ants, 1990)’는 독일 뷔르즈버그 대학의 횔도블러와 공저한 저작으로 20년 간 해온 개미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시기는 사회성 곤충을 탐구한 ‘곤충사회(The Insect Societies, 1971)’를 발표한 이후부터다. 곤충의 사회구조가 인간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면서 ‘사회생물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까닭이다. 이후 사회성 곤충에 대한 새로운 연구내용을 추가하고 논의를 척추동물과 인간까지 확대한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Hew Synthesis, 1975)’으로 새로운 학문의 태동을 알렸다. 미국 앨라배마 버밍엄에서 태어났다. 앨라배마대에서 개미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학사 및 석사과정을 거쳐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부터 하버드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한편 미국 학술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20여 권의 과학 명저를 쓴 저술가로 지적 여정을 이어왔다. 대학강단에서 은퇴한 뒤엔 하버드대 생물학과 펠레그리노 석좌 교수이자 비교동물학 박물관 곤충관의 명예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Hew Synthesis)/ 1975]의 내용 - 윌슨은 생물학과 진화론 그리고 생태학과 생태지리학 이론들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종합했다. 윌슨은 윌리엄 해밀턴 (W. D. Hamilton)처럼 곤충의 사회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라면,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의 사회적 행동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윌슨은 20세기 생물학과 진화론 그리고 생태학과 생태지리학 이론들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종합했으며, 사회학은 종래 진화생물학인 현대종합설의 일부로 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영남 서평) 1975년 봄 하버드대학교 출판사에서는 개미사회 연구의 세계 제 1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이라는 697쪽의 방대한 저서를 출간하였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서평을 통해 이 책의 출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실의 틀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하나의 큰 돌파구를 찾아주고 있는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출간 후 이 책은 끊임없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면서 명저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책이 이토록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진화론에 대한 커다란 대중적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호소력을 갖게 되었는가는 바로 사회 생물학의 중심적 단언이 인간의 문화와 행동의 모든 측면이 모든 동물의 행동처럼 유전자 안에 암호화되고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물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모든 생물종은 자연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므로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서 진화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단의 학자들이 그의 사회생물학에 반대하는 견해를 [뉴욕서평]앞으로 서신을 보냈다. 바로 전에 이 서평지는 윌슨의 저작에 관해 긍정적인 서평을 실은 바 있다. 그 서신에 서명한 학자들 가운데는 윌슨과 하버드대학 동료인 스티븐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도 있었다. 이들이 제시한 내용을 요약하면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행동을 논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새롭게 밀려온 생물학적 결정론의 파고를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윌슨은 무엇이건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자이다. 그는 모든 생명현상은 적응이라고 생각하는 적응만능론자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이름을 붙인 사회생물학을 '만능의 과학'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엉터리 악당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지난날 이미 정치적 독트린의 모습으로 충분한 폐해를 가져다 준 바 있다”라는 것이다. 이는 나치 치하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에 악용되었던 사회적 다윈주의론의 회귀라는 우려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사회생물학자도 직설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다윈주의 냄새가 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생존경쟁'이니 '유전자의 이기주의'니 하는 관용어로부터 사회규범을 도출해 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생물학 비판자들은 나름대로 개념과 이론으로 무장한 이 분과를 사회적 다윈주의의 교설이나 사회적 다윈주의가 함의된 학설로 보는데 주저함이 없다.  더욱이 사회생물학이라는 것은 과학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이데올로기에 가까운 것으로 사회적 다윈주의, 반페미니즘 내지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등의 경향을 명백히 띠고 있는 일종의 보수우파로 간주한다. 이처럼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환원론적 및 생물학 결정론적 설명으로, 바로 오늘날의 과학적 생명상 또는 인간상도 분자 생물학의 중심으로 끌려들어 올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됐음을 인정하는 것인가!


사회생물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사회생물학은 진화의 원리를 동물의 사회 행동 연구에 접목시킨 학문이다. 행동에는 인간의 행동도 포함한다. 동물들이 함께 모여 사는 데는, 즉 사회 생활을 하는 데는 몇 가지 적응적 근거가 있다. 첫째는 [집단섭식] : 동물 집단의 행동은 한 개체가 홀로 먹이를 찾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먹이를 찾으면 같이 나누게 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동물과 함께 먹이를 찾음으로써 각자에게 돌아오는 몫도 많아진다. 둘째는 [집단방어] : 집단은 단순히 많은 수가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포식동물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새는 매가 공격하려고 하면 흩어지지 않고 서로 모이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그 중 한 마리를 잡으려는 매의 의도를 분쇄시킨다. 셋째는 [이기적 무리의 효과] : 포식자에게 잡힐 확률을 다른 피식자를 방패로 삼아 그 기회를 줄이는 방법이다. 포식자가 가까이 있는 먹이를 잡으므로써 다른 동물들은 그 방패의 덕을 보게 되는 것이다. 네째는 [경계의 증가] : 눈이나 귀가 많으면 많을수록 포식자의 접근을 잘 경계할 수 있다. 다섯째는 [생식적 조정] : 집단이 동시에 출산하도록 생식 활동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 동물들은 일시적으로 먹이 습득이 가능한 곳에서 생존할 수 있으며, 수적으로 많은 새끼들을 낳아 포식자를 압도하는 경우에 유리할 수 있다. 한꺼번에 많은 피식자(먹이)가 있으면 포식자는 이를 전부 다 먹어치울 수 없지만, 한번에 하나씩 나타난다면 쉽게 모두 먹어치울 수 있다. 여섯째는 [어미와 새끼간의 상호이익] : 출생 후 새끼들은 어미와 함께 일정한 기간을 지나는데 이것이 생존과 번식을 훨씬 유리하게 한다. 이와 같은 행동들의 이점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동물의 사회성이란 단 한가지의 적응을 기조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여러가지의 적응 효과를 통해 형성된다. 이처럼 진화와 생태는 동물의 외적 생김새뿐 아니라 동물의 사회 행동 형성에도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이 분명하다.


유전자의 도덕성 - 이를 근거로 해서 윌슨은 사회생물학의 내용을 사회적 진화, 사회적 메커니즘, 그리고 사회성 종들로 나누어서 아메바로부터 사회적 곤충, 그리고 포유류 나아가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루면서 사회생물학의 이론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이 책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부분은 첫 장과 마지막 장이다. 윌슨은 1장에서 유전자의 도덕성이라는 주제로 다윈주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은 그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물의 주요 기능은 다른 생물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유전자를 재생산하는 것이며, 따라서 생물은 유전자의 임시 운반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개개의 생산은 유전자를 보존하고 확산시키는 정교한 장치의 일부로서 이 유전자를 운반하는 차량일 뿐이라는 유전자의 논리를 대전제로 해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 사회형성 메커니즘 등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행동에 대한 진화의 단위가 개체가 아니라 이제는 유전자라는 것이다. 윌슨은 사회적 진화의 원동력에서 사회성 진화는 생리학적 관성의 구속하에 이뤄지는 유전적 반응이라 규정함으로써 동물사회의 유전적 기초를 다시 동물들의 이타적 행동으로 확대해 나간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이 이타주의가 근본적으로 자기 이익으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였으며 어떤 유기체가 자기 유전자의 이익을 희생하는 그런 이타주의는 그것이 속한 종이 지닌 유전자들의 이익에 의해 보상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러한 이타주의는 다만 유전자 자신이 증식하려는 이기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저서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열정이 지나쳤는지 인간에 대한 마지막 장에서 그만 학문적 경계심을 풀어 버렸다. 비판자들이 그에게 노여운 고함을 퍼부은 것은 주로 이 부분에 대한 것이다.


문화도 유전자에 의존 - 가장 심하게 공격을 받은 점은 도덕의 유전적 기반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이다. 그에 의하면 도덕이나 종교같은 인간의 정신적 문화도 유전자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유전자의 문제에 도달할 것이라는 환원론적 설명이다. 요컨대 생물체(인간도 포함)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에 의해서 유전자는 복제의 증감에 큰 영향을 받게 되며 이처럼 문화도 유전자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은 본질적으로 유전이론이다. 더욱이 극단적인 사회생물학은 생물체를 유전자에 의해서 조종되는 생존기계로 본다. 이같은 주장을 한 사람은 영국의 도킨스로 그는 1976년에 [이기적 유전자]라는 저서를 냄으로써 더욱 논쟁의 불씨를 키웠다. 여기서 사회생물학이 새롭게 불붙인 논쟁의 전통은 유구하다. 타고난 행동이냐 학습된 행동이냐, 유전자결정론이냐 문화결정론이냐를 둘러싸고 벌여졌던 논쟁이 그것이며 생물학주의자와 문화주의자 사이의 싸움이 또한 그것이다. 그러나 최초에는 논쟁의 발상이 이데올로기화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거부되어야 마땅하다. 희망적인 것은 사회생물학이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 이 두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실은 유전자와 문화는 서로 작용을 주고 받으면서 ‘공진화’를 수행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윌슨은 1978년에 [인간본성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70년대의 그렇게 달아오르던 사회생물학에 대한 논쟁이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용해지고 지금은 거의 자연소멸한 상태가 되었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일부 심리학자와 문화인류학자는 대환영을 하고 이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기적 자기복제자, 즉 유전자의 성공’과 ‘개체의 성공’과는 거의 관련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기적 유전자로서는 어떤 상태이건 (부자이건 빈자이건) 저마다 각각 훌륭한 운반체이다. 즉, 개개의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의 운반체로서 서로 평등한 존재이다. 유전자는 운반체 위에 운반체를 만들지 않으며 운반체 아래에 다른 운반체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쟁점이 존재하며 이것이 진화론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해 주는 마법의 이론이 될 수는 없다. 이 저서는 대단한 업적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20세기에 나온 철학적으로 가장 의미깊은 생물학적 연구이지만 그 완성도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MIT9_20F13_Lec19 The Triumph of Sociobiology.pdf


Sociobiology and Human Nature.pdf


sociobiology_the_new_synthesis_twentyfifth.pdf


The Insect Societies and Sociobiology.pdf


Wilson, E.O. -Man- From Sociobiology to Sociology.- In 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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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우 서평] 


동물과 인간의 모든 이타적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20세기에 가장 걸출한 과학저술가라 불릴 만하다. 매년 미국에서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으니 말이다. 1929년생의 에드워드 윌슨은 소년 시절부터 개미 탐구에 열심이었고, 결국엔 개미연구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급기야 하버드대학의 대학원생 시절 윌슨은 그즈음 유행하던 동물행동학에 관심을 가졌다. 대다수 쟁쟁한 연구자들이 새와 포유동물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가졌던 점에 착안해서 자신은 개미들의 의사소통 방법을 밝혀보고자 노력했다. 1955년 윌슨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자마자 조교수로 발령을 받는다. 개미들에게서 여러 종류의 페로몬을 발견하고 그것들의 역할을 성실히 규명했던 학문적 업적이 높게 평가된 결과였다. 이후 10여 년 동안 윌슨은 개미 연구로, 또 원숭이와 기타 동물의 습성과 사회적 행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전 세계를 누볐다. 미국 생물학계의 분위기는 1960년대에 이르러 점점 더 분자생물학이 각광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동물행동학이나 진화생물학 등은 홀대 받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윌슨은 그런 와중에서 원숭이와 까마귀와 개미의 생활 습성을 대상으로 삼는 자신의 연구 분야가 점차 쇠퇴하는 것에 크게 자극을 받고, 그간의 동물행동학적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고 다듬어서 새로운 이론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윌슨은 그때까지 동물행동학 연구가 동물행동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치중했던 나머지 어느 누구도 그런 행동의 저변에 깔린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침팬지들이 사냥에서 획득한 먹이를 집단 내의 다른 침팬지들에게 나누어준다든지, 또는 적의 출현을 처음 발견한 새 한 마리가 경고음을 발산해서 다른 새들을 보호하는 대신 자신은 희생의 제물이 된다든지 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윌슨은 이를 새롭게 해석하며 ‘사회생물학’이란 새로운 장을 열었다. 동물들의 이타적 행동, 오랜 진화 과정과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 윌슨은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이야말로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그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능적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요컨대 동물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진화와 유전자의 영향력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는 동물의 행동을 진화와 유전자를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자신의 시도에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회생물학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1971년부터 저술에 착수하여 4년 후인 1975년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발간하게 되는데 이 책으로 말미암아 윌슨은 일약 세계적인 명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윌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이론 중 하나는 많은 동물 집단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이타적 행위조차도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진화되었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다윈의 진화이론에 의하면 자연선택은 각각의 생물 개체에 작용하여 그 개체로 하여금 생식의 기회를 증가시키는 육체적·행동적 특징들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한 생물체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타적 행위는 자연선택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윌슨은 그런 이타적 행위들이 사실상 서로 밀접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 집단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비록 자신은 죽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들에게 보다 많은 생존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동물들의 이타적 행위도 진화적 입장에서 본다면 결국 후손들에게 더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윌슨은 진화의 전략이 개체 보존이 아닌 유전자 보존에 있다고 보았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선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행동의 대부분은 각 개체에 내장된 유전자들에 의해서 통제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개미들이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엄격한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고도의 분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동물이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행위나 최고의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컷끼리 생명을 걸고 혈투를 하는 행동 등은 자신이 소유하는 유전자를 보다 많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전략전술이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도 동물계의 일원으로서 동물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은 불가피하게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게 되었는데, 윌슨은 1978년 또 한번 ‘인간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라는 화제작을 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인간 역시 유전에 의해 행동과 사회구조 획득 ‘사회생물학’과 ‘인간본성에 대하여’ 두 책에서 윌슨은 일관된 입장을 피력한다. 인간은 유전에 의해서 행동과 사회 구조를 획득하는 성향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데 이런 성향은 말하자면 대개의 사람이 공유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특성에는 남녀간의 분업, 부모자식간의 유대, 가까운 친척들에게 행하는 고도의 이타성, 근친상간 기피, 여러 다양한 윤리적 행동들, 이방인에 대한 의심, 부족주의, 집단 내 순위제, 남성 지배 등이 포함된다. 사람들은 비록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택을 행사하지만 이런 결정에 관계하는 심리적 발달의 경로는 비록 우리 자신이 아무리 다른 길로 들어서고자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우리 몸속에 깃들어 있는 유전자들에 의해 어떤 일정한 방향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게 윌슨의 주장이다. 윌슨에 따르면 인류 문화가 제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결국은 이런 특성을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서울 도심에 사는 사람이나 남태평양의 원시부족의 일원이나 설령 그들이 수만 년을 격리되어 있었다고 해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공통적인 유전자들로 인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본성에 대한 이런 윌슨의 관점은 1970년대의 시대조류에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인 관점이었다. 결국, 윌슨의 관점에 따르면 생명의 주체는 ‘유전자’인 셈이다. “닭은 달걀(유전자)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는 설명에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개체란 잠시 태어났다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이고 자손 대대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유전자뿐이다. 유전자로 하여금 더 많은 복사체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형질, 즉 생명체의 특성은 성공적으로 살아남아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했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 지극히 간단한 논리가 윌슨으로 하여금 생명의 다양성은 물론 인간의 특성 모두가 필연적으로 진화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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