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III] 사회 14.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1964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2. 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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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사회 


14.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1964



마루야마 마사오(丸山 眞男, まるやま まさお, Masao Maruyama, 1914년 3월 22일 ~ 1996년 8월 15일)는 일본의 정치학자로서 일본의 정치사상사의 권위자이다. 1937년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일본 제국 오사카에서 1914년에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마루야마 간지(丸山幹治)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군부와 관료주의를 비판했던 난바라 시게루에게 교육받았다. 1937년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1940년 동경제국대학의 조교로 근무하던 중 국가학회잡지에 기고를 시작해, 1944년까지 쓴 세 편의 논문이 「일본정치사상사연구」다. 1944년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평양에서 근무하다가 각기병(脚氣病)에 걸려 귀국하였다. 1945년 3월 군대에 복무하고자 머무르던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原子爆彈) 투하라는 사건과 함께 패전을 맞고서 대학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전쟁 이전의 일본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주제로 한 논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발표해 전후(戰後) 일본 사상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자기기만적인 전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학생들에게 배척되기도 했다. 건강 악화로 1971년에 사임하였으며 1974년에 동경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일본 제국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이와나미 쇼텐의 「세카이」지에 논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기고한 마루야마 마사오는 '초국가주의[ultra nationalism]'를 맹렬히 비판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심층 분석하였다. 그가 비판한 초국가주의의 문제는 일본 제국의 통치 원리가 중립에 기초한 공익 추구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모든 가치를 천황제를 이용해 독점했다는 데 있었다. 즉 일본 제국의 전체주의란 개인의 자유라는 보편 가치의 침해가 아니라, 국가가 국가로서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개인의 자유나 민주주의를 보편의 가치로 신봉하지 않았고, 국가가 여러 가지 특수한 가치에서 중립을 견지해야 하는데도 초국가주의는 가치의 독점에 집중해 특정한 가치, 즉 ‘천황=지고(至高)한 선’이라는 것을 보편화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헤겔리안이었으며, 서구의 근대를 인류사의 절대 가치로 여겼고 이를 전 인류의 목표로 승화시켰다. 또한 동양에서 유일하게 중세를 거친 일본은 근대 또한 동양에서 유일하게 성취할 수 있다고 간주한 서구 중심주의적 역사관을 뼛속까지 체화한 인물이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thought and behaviour in modern politics)/ 1964]의 내용 - 현대 일본 지성의 최고봉 마루야마 마사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는 마루야마 마사오에 대해 `일본의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식인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준 석학으로 평가하였다. 그의 정치학은 일본의 정치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확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의 `근대성`의 연원을 밝히는 독자적인 학풍을 성립시킴으로써 그는 `일본 최고의 정치사상사학자`로서 그 자체로 `마루야마정치학`으로 불리고 있다. 그의 주저인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은 일본파시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비판뿐만 아니라 인간과 정치, 권력과 도덕, 지배와 복종, 정치권력과 같은 정치학의 보편적인 주제들에 대한 통찰로 양심적 지식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저자 마루야마 마사오 역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 나치 지도자들과 비교하여 설명을 한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일본의 나치즘이나 독일의 나치즘이나 별 차이가 없이 똑같이 타 민족에게 박해를 가하는 나쁜 행동을 가했고 군구주의자들에 의해 강력한 통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면 독일은 완전한 반성을 하고 있고 일본은 반성을 하지 않고 항상 변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생겨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본의 나치즘과 독일의 나치즘은 확연히 달랐다는 것에서부터 기인한다.


파시즘은 많건 적건 간에 히스테리적 증상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이 동일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 심리의 구조나 발현형태는 나치스 독일과 군국 일본에서는 현저하게 나타난다. 먼저 독일과 일본의 군국 지도자들은 관념과 행동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독일은 관념과 행동이 전적으로 일관성을 보여준다. 예를들어 히틀러는 “정의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요는 승리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능동적이고 단정적인 언사를 보여준다. 일본 역시 이에 대해 근원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공공연하게 자신의 결단의 원칙으로 드러낼 용기는 없었다. 도리어 비도덕적인 내면을 은폐하고 도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일본의 무력에 의한 다른 민족 억압은 언제나 황도의 선포이며, 다른 민족에 대한 자혜로운 행위로 호도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일본 지도자들은 독일 나치스보다 순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파시국가는 파시즘을 미화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슬로건을 선포하는데 나치 지도자들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단순한 슬로건이며, 또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하는 구별을 잘 알고서 사용했다. 즉 자신이 사용하는 슬로건은 어디까지나 대중을 세뇌시키는 수단으로서만 사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지도자들은 스스로 살포한 슬로건에 어느덧 말려들어서 현실인식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즉 본인들이 선포한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허황된 꿈과 세계통일과 같은 슬로건들이 전체주의 국가로서 국가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보단 실제로 그러한 과업을 수행하려고 돌진하였다는 것이다. 두 집단 모두 죄의식은 없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엔 죄의식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본인들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다. 반면 일본은 자신의 행동에 끊임없이 윤리적인 분위기를 고취시킴으로써 죄의식을 회피하려고 했다. 또한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현실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 혹은 만들어져가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고서, 만들어져버린 것, 어디선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현실은 언제나 미래에의 주체적 형성으로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흘러온 맹목적인 필연성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은 사사로운 현실 인식일 뿐이고 국가정책이 결정되면 그것을 일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반면 독일의 현실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요소였다. 오히려 정세로 하여금 독일에게 적응하게 하려 했고 그러한 수단으로 침략과 전쟁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독일 지도자와는 다르게 일본 지도자들의 의외의 나약한 심성을 볼 수 있다. 사실 일본이 저지른 만주사변은 일본 정부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전쟁이 아니라 만주에 파견된 일부 관동군들이 자의적으로 저지른 전쟁이다. 다른 국가와의 국지전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결정 사항이다. 아무리 사이가 나쁘더라도 소위나 중위정도의 장교가 마음대로 전쟁을 벌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보면 GOP에 있는 소초장 정도되는 사람이 북한에 야습을 가한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전쟁의 성과와 승패와 상관없이 국가정책을 마음대로 결정한 자들에 대해 처벌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러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지도자들은 중간 선동자들이 벌인 만행들을 수습하고 그 만행들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는 일본 내부에 있는 억압 위양의 원리에 따른 압력에 의한 선택이라고 본다. 억압 위양의 원리란 일상생활에서 상위자로부터 억압을 하위자에게 순서대로 떠넘기는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간단한 예로 군대에서 영관급 지휘관들의 분노가 위관급 장교들에게 장교들은 부사관들에게 부사관들은 병사들에게 병사들은 말단 이등병에게 화를 풀어내는 원리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오히려 최하위에 위치한 민중의 불만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상황은 공산주의 사상이 들어오던 시기였다. 지도부들은 민중들의 억압과 공산주의 사상과 결합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도부들은 그 억압이 해외에서 해소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고, 해외에서의 군인들의 움직임에 대해 통제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게 된 것이다.


위의 다양한 설명을 통해 우리는 일본 파시즘의 나약함과 무책임성 그리고 자기기만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후 전범재판에서 독일과 일본 지도자들의 행동을 통해 이러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독일의 괴링은 “나는 백 퍼센트 책임을지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총통의 반대까지 기각시키고 모든 것을 최후의 발전단계로까지 이끌었다.” 일본의 전범자들의 한결같이 전쟁책임 부정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 한 사람도 이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개인 도덕의 타락 문제가 아니라 체제 그 자체가 타락한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일본 지도부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였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자신보다 상급자에게 있다고 서로 떠넘길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위기감으로 일본이 전체주의 국가로 갈 수도 있었다는 것은 백번 양보해서 어느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와중에 그들이 자행한 행동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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