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2015 5.18 문학상 수상작_소설, 심사평 - 아무도 없는 곳에서/김경숙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5. 1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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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심사평>

 

임철우, 김형중, 한 강

 

올해 5.18문학상 소설 부문 응모작은 총 105편이었다. 편수로는 예년에 비해 소폭 증가한 편이었다. 전체적인 경향 중 특기할 만한 것은 우선 5.18을 직접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현저히 줄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80년 5월로부터 35년의 세월이 지났고, 따라서 5.18의 ‘사건성’이 많이 희박해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지난 35년 동안 진행된 우리 사회의 변화를 고려할 때 ‘오월 정신’이 단순히 독재에 대한 항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다양하고 첨예한 사회 문제들로까지 확장되고 연접되는 것이 당연하다 싶기도 했다. 고무적인 일이었다.

 

작품의 질은 고르지 않았다. 80년 5월의 기억을 직접 다룬 작품들 중에는 관습적이고 경직된 작품들이 많았다. 젊은 응모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에서 이런 경향이 도드라졌는데, 아마도 체험보다 지식, 실감보다 당위로부터 작품의 동력을 얻어온 탓이 커 보였다. 반면 더 많은 수의 작품들이 ‘오월 문학’으로서의 변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기도 했는데, 노동, 인권, 평화, 차별 등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대한 사유가 충분치 않은 작품들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5.18문학상을 포함해 다른 지면에 이미 투고한 적이 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심사위원들의 다소 까다로운 눈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거인과 북극곰>, <낙지>, <골목>, <아무도 없는 곳에>, <택배> 가 그 작품들이었다. <거인과 북극곰>은 상대적으로 젊은 응모자의 작품으로 읽혔다. 신선하고 상황 설정이 흥미로웠으나 전체적으로 소품이었다. 작품을 통해 제기하려는 문제가 소소했고 구성상의 작위성이 눈에 띄었다. <낙지>의 입담은 아주 리얼하고 구체적이었다. 낙지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진 여성 캐릭터도 실감났다. 그러나 분량이 꽤 긴 만큼 구성이 중요했는데, 전체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골목>은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 가장 세련된 작품이었다. 환상을 문학적 장치로 차용한 기교가 특별히 높이 살 만했다. 그러나 철거촌 문제, 빈곤의 문제, 주인공과 아버지간 갈등 문제 등이 유기적으로 어울리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넒은 범주의 오월문학에 속할 만한 주제의식이 미미했다.

 

결국 <아무도 없는 곳에>와 <택배> 사이에서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 고심했다. 두 작품 모두 문장과 구성이 안정되어 있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강렬한 이미지나 장면들을 품고 있었고, 오월문학 다운 주제의식도 있었다. 그러나 두 작품 공히 다소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불만은 남았다. 당선작 없는 가작 두 편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수상의 영예는 <아무도 없는 곳에>에 주어졌다. 수상작으로 정해 놓고 다시 읽어보니, 체험이 녹아 있어 진솔하고, 오랜 습작으로 다듬어진 문장력도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80년 오월의 기억에 사로잡힌 두 노인 캐릭터의 비극성이 끝내 잊혀지지 않아 오월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절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나머지 응모자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 소설 수상작


아무도 없는 곳에서


김경숙

 

뼈대만 앙상한 집은 흉물스러웠다. 굶주린 개는 동냥 밥마저 먹을 수 없어 꿩을 잡기 위해 놓아둔 싸이나를 먹고 죽었다. 닭은 주둥이를 뾰족이 세우고 하루살이가 달라붙은 개의 내장을 쪼아 먹었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산책로를 내는 개울 길에는 인부들이 꽃과 초목을 심었다. 논 한가운데 들어선 아파트 건축물은 용도변경을 거쳐 가설공사가 일차 마무리되었다. 하천에선 굴착기와 포클레인이 질서 없이 움직였다. 현장사무소인 컨테이너 앞에는 트럭 한 대가 샷시와 합판 등을 실어 나르고 앙상하게 세워진 철 구조물에서는 쇠 파이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담뱃가게에는 대낮인데도 등롱이 불이 켜진 채 걸려 있었다.


깜박 꿈을 꿨다. 산이 활활 타오르는 꿈이었다. 노파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간장과 된장이 담긴 장독 뚜껑 위에 빗물이 흥건했다. 추적추적 가을비는 일손을 붙들었다. 여름 가뭄 때 풀뿌리가 벋어져 맨흙을 보이던 개천에 개울물이 차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니 단단한 흙이 물찌똥 같네.”


노파는 혼잣말을 했다. 밭뙈기에 깨와 콩이 드러누워 있었다. 해 좋으면 들어내어 멀쩡한 것 반만이라도 가려내고 싶었다. 가을 추수에 약이라도 올리듯 추적추적 여러 날 가랑비가 내렸다.


“비라도 왔으니 그 불이 멈췄지.”


야속한 비지만 고마운 비라고 노파는 생각했다. 노파는 마루에 움츠리고 앉아 팔을 뻗어 비의 양을 손바닥의 감촉으로 가늠해 보았다. 다른 한 손은 엉덩이를 득득 긁어 댔다. 미역 가닥처럼 늘어진 빨래에선 곰팡내가 나고 비를 피해 들어온 날벌레들 때문에 물것이 생겨서 이곳저곳이 가려웠다. 마루 밑에서 개똥이가 풍기는 노린내는 눅눅한 습기와 섞여 역했다. 노파는 허리를 짚고 일어나 개울을 바라봤다. 잔돌이 보이던 얕은 개울물이 흙탕물로 변해 넘실거렸다. 물이 불기 전에 얼른 다녀와야 했다. 시내로 나가는 길에 버스정류장 담뱃가게 할머니도 들여다봐야겠다고 노파는 생각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누워 지낸지 여러 달이 되었지만 가보질 못했다. 어미 없는 간이를 돌보느라 시간이 나지 않아서였다. 간이 어미마저 집을 나가고 없자 혼자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아들 제사에 쓸 찰무리 떡을 시내 떡집에 맡겼다. 아들은 생전에 찰무리 떡을 좋아했다. 집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직접 찰무리 떡을 시루에 쪘을 것이다. 찹쌀을 빻아 서리태콩, 대추, 밤, 단호박, 콩, 설탕을 넣고 버무린 후 견과류와 과일을 사이사이에 넣고 쌓은 다음 떡이 잘 익으면 참기름을 살짝 바르면 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무리 떡을 아들은 앉은 자리에서 몇 개씩 먹곤 했었다. 찰무리 떡을 제삿상에 올린 지도 삼십오 년째다. 당산마을에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데는 손수 지은 농작물로 아들 제사음식을 차리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알곡만 보관해 둔 광이 불타버렸다. 불이 난 후 영감은 잠만 자고 있다. 이마가 불가마처럼 뜨겁다. 영감의 벌어진 입속에서 더운 입김이 새어나왔다. 간이는 영감 곁에 엎드려 몸을 굴리며 놀고 있었다. 노파는 간이 궁둥이를 토닥이고 나와 문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문고리를 걸었다. 문이 잘 잠겼는지 흔들어 보았다. 안에서 잠긴 문이라 해도 영감이 일어나야만 열 수 있었다. 개울이 집 앞이라 간이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었다. 노파는 문밖에서 다짐하듯 말했다.


“할미, 금방 갔다 올게.”


대가 구부러진 우산이 마루 밑에 구르고 있었다. 노파는 우산을 펼쳤다. 가는 쇠의 살이 구부러져 잘 펼쳐지지 않았다. 노파는 우산 작대기로 후리는 시늉을 하며 개똥이를 꾸짖었다. “저놈의 주둥이 때문에 성한 것 하나 없네.”


개똥이는 꼬리를 말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노파는 역한 냄새를 참느라 얼굴에 주름을 만들고 걸레로 우산의 먼지를 닦아냈다. 휘어진 우산 뼈대는 앙상한 노파의 등을 닮았다. 짱짱하게 펴서 제 모습을 갖춰보려 했지만, 이미 휘어버린 우산살은 도로 구부러졌다.


들어오는 승객이 없으면 마을버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빈 차로 왔다가 빈 차로 다니던 버스가 당산마을의 노인들이 하나둘 소천하고 없자 그마저도 오가지 않았다. 허탕을 치더라도 나가봐야 했다. 마을버스는 당산나무 다리에서 기다리면 됐다. 담뱃가게 할머니 가게가 그곳에 있다. 담뱃가게 할머니는 가게 안 쪽문을 활짝 열어놓고 편의점의 주인처럼 방 문턱에 걸터앉아 물건값을 받았다. 담뱃가게 할머니를 들여다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오랜만에 와서 금방 일어나면 서운해 할 것이다. 비도 온데다 아들 제삿날이라 바쁘다고 하면 되겠지만 아픈 사람을 두고 바로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일이었다. 마음이 조급하니 몸마저 허둥거려졌다. 그래서일까, 돌길은 미끈거렸고 진흙 길은 발을 잡고 늘어졌다. 억새는 젖은 옷을 스치며 난도질을 해댔다. 빗물이 머릿결에 젖어들어 이마를 타고 눈을 적셨다. 노파가 옷소매로 눈을 훔쳐 닦아내자 마치 빗물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같이 진흙물을 일구며 버스가 다가와 멎었다. 노파는 발을 잦게 떼며 바쁘게 걸어 차에 올랐다. 버스에는 운전기사와 젊은 부부 승객이 타고 있었다. 텅 빈 버스 안에 한기가 감돌아 노파의 혀는 돌돌 말리고 턱이 부딪혔다. 옷에 젖어든 가랑비는 생각보다 찼다.


마을버스가 막 개울 다리를 지날 때 버스가 기우뚱했다. 다리 길이가 짧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왔기 때문에 빗물 탓이려니 생각했을 뿐인데 젊은 남자 승객이 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버스가 다녀도 되는 다린가요?”


자세히 보니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당산마을에는 언제부턴가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빈집을 헐고 새롭게 집을 꾸며 전에 살던 사람의 흔적은 물론이고 집이 몰라보게 변하여 그 허름했던 집이 그렇게 넓고 좋은 경치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새삼 감탄하게 했다. 낯선 사람들은 먼발치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농삿일은 하지 않았으나 늘 분주하게 오갔다. 집을 비우고 한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낯선 사람들은 누가 주인이고 누가 방문객인지 주말이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밤이면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다가 다음 날이면 빈집처럼 고요해졌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요.”


기사는 승객의 질문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백미러를 통해 남자 승객을 바라봤다. 기사는 팔뚝에 안전이라는 안장을 차고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남자 승객은 걱정된다는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재차 질문했다.


“이 버스 무게가 얼마나 나갑니까?”

“글쎄요. 한 십 톤 남짓 나가지 않을까요?”

“상당한 무겐데요.”


기사는 조금 전 가볍게 대답하던 표정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농촌의 현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처럼 백 미터가 되지 않는 작은 교량은 법정 도로로도 포함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민의 건의가 없으면 점검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주민이라 해봤자 노인들뿐이고 그나마도 남아 있는 분들이 없으니 시골 마을의 소하천 다리는 관리 사각지댑니다. 사고 위험을 안은 채 방치되고 있죠.”


“이 정도 물이 소하천이라뇨?”

“그러게 말입니다. 걱정되시면 직접 민원을 넣어 보시던가요?”

“저는 귀농인이라.”

“귀농인은 뭐 주민 아니고 손님인가요?”


습기 찬 유리창에 젊은 승객 부부의 모습이 비쳤다. 젊은 승객 부부는 간이 아비와 어미의 나이쯤 되어 보였다. 게으른 간이 아비는 간이 어미가 떠나자 번민하느라 심성조차 돌아앉아 있다가 말도 없이 시골을 떠났다.


어린 것도 자신의 처지가 슬펐던지 잠투정이 심했다. 영감은 오야 오야, 하며 간이를 끌어올려 안았다. 허깨비처럼 가벼운 간이를 영감은 요리조리 흔들었다. 간이는 영감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벗겨진 신발 한 짝은 아궁이 옆에 뒹굴고 다른 한 짝은 개똥이가 물어뜯고 있었다. 영감이 개똥이를 발로 슬쩍슬쩍 건드리며 넥, 하자 개똥이가 일어나 꼬리와 귀를 만 채 마루 밑으로 숨었다. 간이는 계속 잠투정을 했다. “뭐 없어?” 영감은 역정 섞인 소리를 질렀다. 배가 고파 잠투정하는 것이니 먹을 것을 빨리 내오라는 다그침이었다.


“내 몸이 열 개요?”


마음과 달리 노파는 노파대로 역정 섞인 대답이 나왔다. 간이는 배만 부르면 종일 영감을 졸졸 따라다니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것저것 만져대며 이것은 꽃, 저것은 나비, 하며 알려주지도 않은 이름을 용하게도 알아맞히곤 했다. 종일 볕에 놀던 간이는 숯검정이 된 손으로 눈을 비볐고 영감은 칭얼대는 간이의 등을 애정을 담아 쓸어주었다. 젖을 뗐다 하여도 엄마 젖이 그리운 나이였다. 노파가 뜨거운 전복죽을 내와 평상 위에 놓고 식힐 때 간이가 합지 꾸꾸, 하며 졸린 눈을 영감 가슴팍에 비비며 손가락으로 닭을 가리켰다. 닭은 발로 마당의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영감은 구구, 하며 간이를 안고 닭에게 다가갔다. 간이가 신이 나서 손바닥을 마주치자 닭은 화들짝 놀라며 평상 위로 날아올랐다. 그것을 보고 개똥이가 마루 밑에서 급작스럽게 튀어나오자 닭이 놀라 꼬꼬댁 대며 퍼덕거렸다. 그 바람에 막 담아내온 전복죽이 엎질러지고 말았다. 노파는 오살 맞을 것들, 하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영감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는지 괜스레 역정이 났다. 망할 할망구, 하며 영감은 눈까지 흘겼다. 가엾은 간이 기분 맞추려다 그런 것 가지고 욕까지 하다니. 영감은 넋이 나간 듯 있다가도 간이 일이라면 심기가 짱짱했다.


“뭐해?”


죽을 다시 끓여 내오라는 영감의 성화였다. 영감이 소리를 지르는 통해 간이는 놀라 영감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자식 잡아먹은 아비가 뭘 잘했다고 큰소리요.”


노파도 질세라 대거리를 쳤다. 간이 아비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노파의 속은 속이 아니었다. 영감은 엎어진 죽 그릇을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제 제발 그 말만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소, 라는 항변 같았다. 삼십 오년 동안 농사를 짓고 그 농작물로 죽은 아들의 제사를 지낼 때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들어왔던 말이었다.


간이 아비가 집을 나간 날 산불이 났다. 쇠죽솥에 넣어둔 싸리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싸리 대에서 톡톡 소리가 날 때마다 불꽃이 쇠죽솥 밖으로 튕겨 나왔다. 노파는 닭의 방정 때문에, 개똥이의 짖어대는 호들갑 때문에 자식을 죽인 영감을 원망하느라 불이 옮겨 붙고 있는 줄도 알지 못했다. 영감은 왜 자식을 죽여 놓고 넋이 나간 척만 하는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인지. 그렇다고 외면이 되는 것인지. 노파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 애먼 곳에 화풀이라도 하듯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개와 닭을 향해 던졌다. 개와 닭은 화들짝 놀라 달아나고 어디선가 나무 타는 향내가 진하게 났다. 쇠죽을 끓이던 아궁이의 불이 광 쪽으로 번지고 있는 것을 그때서야 알아챘다. 바람이 일자 불은 바람을 타고 잡풀이 무성한 뒤란으로 옮겨 붙었다.


“불, 불이야!”


다리가 후들거렸고 소리는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노파는 두 팔을 휘저었다. 영감은 몽유병 환자같이 뻣뻣하게 선 채 간이를 안고 있었다. 노파는 광으로 달려갔다. 허둥댈 뿐 고작 가지고 나온 것이라곤 깨와 콩 자루였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들고 나오다보니 보이는 것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불은 산꼭대기까지 타올랐다.


“엄마?”


간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새어나왔다. 간이는 영감의 품에서 빠져나와 불꽃을 따라가려 했고 어미는 불꽃이 되어 꺼질 듯 필 듯 날았다. 어미는 잡힐 듯 멀어지고 멀어진 듯하다 다가왔다. 붉어질 대로 붉어진 산은 단풍잎이 불꽃인지 불꽃이 단풍잎인지 모르게 타올랐다. “합지?” 꿈에서인지 현실에서인지 간이의 목소리를 듣고 노파는 자다가 깨여 일어난 사람처럼 정신이 들었다.


다행히 안채는 온전했다. 바람이 불길을 산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었다. 광은 숯검정이 된 채 형체만 남았다.

면사무소 직원이 다녀가고 군청 관계자가 다녀가고 산림관리 담당자가 다녀갔다. 영감은 기억을 잊어버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노파는 영감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왜 영감은 매번 기억을 잊어버린 표정만 짓고 있냐고. 기억을 잊어버린 것인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기억이 두려워 도망치는 것인지. 아들이 죽었을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그러냐고. 노파는 긴 호흡을 한숨처럼 내뱉고 개똥이와 놀고 있는 간이를 바라봤다. 간이는 막대기로 실개천 웅덩이를 파고 있었다. 실개천만 한 물줄기가 산을 타고 내려와 마당을 지나 논둑까지 이어진 도랑이었다. 간이의 얼굴에 햇살이 쏟아 붓고 있었다. 개똥이는 간이 곁에 달라붙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더운 혀로 간이의 발가락을 핥다가 허벅지를 핥았다. 간이는 간지러운지 개똥이를 밀쳤다. 개똥이는 더욱 드세게 얼굴까지 핥았다. 노파는 간이를 바라보며 근게, 하고 말을 시작했다. 말을 시작할 때마다 하는 노파의 버릇이었다. 노파는 말주변이 없는데다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지 못했다.


“근게. 간이는 아비어미가 없는 내 칠대 독자요. 간이 아비는 육대 독자고 내 아들은 오대 독자요. 간이 아비는 내 손자고 간이는 내 증손자요. 간이 아비도 부모 없이 자랐소. 내 오대 독자가 죽고 없기 때문이요. 내 아들 오대 독자는 이십 오년 전에 죽었소.”


노파는 거기까지 말을 내뱉듯 한 다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두서없는 말들이 가슴을 뚫고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무원이 말을 잘랐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노파의 말을 듣는 편보다 먼저 찾아온 용건을 말하는 게 대화가 빠르겠다고 판단했는지.


“할머니, 나무 한 그루 값이 얼만지 아세요? 어떻게 다 배상하실 거예요?”

공무원은 귀가 먹은 노파에게 말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내 잘못만이요?”

“뭐라구요?”


공무원은 노파가 실성한 것은 아닌지 노파를 바라봤다. 노파의 말을 정작 알아듣지 못한 쪽은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은 불을 내서 문제라고 말했지만, 노파는 아들이 죽은 날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아들이 죽지 않았다면 간이 아비가 그렇게 자라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면 간이 어미가 말도 없이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간이 어미가 나가지 않았다면 간이 아비도 집을 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간이 아비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간이가 울었다. 간이가 울었기 때문에 영감과 노파는 속상한 나머지 불이 나는 줄도 모르고 투덕거렸다. 그렇지만 노파의 생각은 말로 잘 표현돼지지 않았다.


“근게, 저 영감이 쇠죽을 끓이는디 우리 간이가 웁디다. 우리 간이가 칠대 독자요. 육대 독자는 간이 아빈디 집을 나갔소. 왜 나갔냐 허먼은 내가 얼러 키워서 그라요. 아비 어미도 없어서 가엽어서 얼러 키웠소.”


“할머니?”


공무원이 또 말을 자르려 하자 노파는 공무원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어떻게 불이 났냐먼은 내 육대 독자 간이 아비가 집을 나가서 그러요. 그날따라 간이가 울고 닭과 개가 와서 죽을 쏟고….”


“할머니, 독자 얘기는 그만하시구요. 나라 산림을 파괴한 죄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노파는 솟는 울분을 막으려고 가슴을 누르며 부걱부걱 말했다.


“내 칠대 독자 울고 내 육대 독자가 집을 나갔소. 이 모든 것이 내 아들 오대 독자가 죽어서 그라요. 어째서 내 아들의 죽음을 책임지려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요?”


격분되어 두서없이 떠벌리는 노파의 말을 제지하기라도 하듯 남자 승객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노파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산에 나는 연기가 산불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네요.”


노파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불이 아직 덜 꺼진 모양이었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가 안개 같았다.


“산불예방과 환경정화 활동도 농촌의 문제 중에 하나죠.”


기사의 동문서답에 승객 부부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시선을 창밖에 두고 있었다.


먹거리장터에 마을버스가 멎었다. 버스에서 내린 노파는 약국부터 들렀다. 약사가 증상을 물었다. 근게, 하고 노파는 숨을 돌린 후 나무토막처럼 토막말로 영감의 증상을 설명했다.


“누워 자요. 아들 제삿날 그럴 사람이 아니라서 아픈 게 틀림없는 것 같소. 집에 불이 나서 광과 산이 다 타버린 후 누워 잠만 자요. 입안에서 더운 입김이 나오는 것이 열도 있는 것 같소.”


의사가 증상을 한마디로 줄여 말했다.


“놀랬군요.”


약사는 하루에 두 번이라는 투약횟수를 적은 봉지를 노파에게 건넸다. 노파는 약국을 나와 서둘러 떡집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개울물이 불면 걱정이었다. 영감이 일어났을까? 간이 혼자 노는 것을 두고 나왔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노파가 찰무리 떡을 찾아 마을버스로 왔을 때는 버스 안은 비어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노파는 서둘러 출발하길 바라지만, 마을버스는 대체로 시간보다는 승객 수 위주로 움직였다. 당산마을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없다. 낯선 사람들이 당산마을에 들어와 살지만, 그들은 빈집과 소 마구간을 헐어 담벼락이 높은 집을 짓고 센서를 달고 커다란 개를 마당에 풀어 키웠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지나가는 차 방향에 따라 검은 차는 이 집, 은색 차는 저 집, 하며 차와 집을 연결해 보는 정도였다. 어떤 집은 주말만 내려와 살다갔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다. 상추와 가지, 호박과 오이 등을 심어 자기들 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정도였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단순 농작물이 아닌 농업생명공학연구라는 푯말을 걸고 유전자변형작물을 재배했다. 성공하면 외국으로 수출될 품종이라고 했다. 농사는 기계가 했고 사람들은 비 오면 우산을 쓰고 둑길을 산책하거나 통유리로 지은 집안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미련한 늙은이야 꾀도 없고 요령도 없어 몸 써서 일만 한다지만 머리 좋고 젊은 사람들은 몸 써 일하지 않았다. 담뱃가게 할머니마저 떠나고 없다면 당산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될 터였다.


당산나무 몸통에는 금줄이 왼쪽으로 감겨 있었다. 잊혀지는 것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인지도 몰랐다. 당산나무 수심 길이에 따라 다리를 건널지 말지 판단하곤 했다. 당산나무가 물 깊이를 가늠했다.


깊이로 따진다면 영감 마음만큼 깊을까마는 그렇게 속 깊은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자식 먹여 살리려고 그런 짓을 했을까. 아들을 죽인 이후 넋이 빠진 영감은 온정신이 아닌 채 살았다. 그런 영감에게 노파는 가슴을 후비는 말들로 괴롭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같은 힘든 세월이었다. 영감은 노파의 비수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형벌을 감면받는 것 같아서 참고 들어왔을까. 참지 않는다면 또 어쩔 것인가. 영감이 내 아들만 죽였는가. 내 아들과 같은 생떼들은 또 얼마나 죽였는가. 영감은 인두겁이다. 인두겁으로 살 수 없어 넋이 나간 체하지만 속이 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억을 잊어버린 듯 행동하지만 간이에게 쓰는 마음을 보면 온전한 정신임이 분명했다. 간이는 영감을 유독 따랐다. 탱탱하던 볼의 젖살이 내리고 볼이 홀쭉해진 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저렸다. 간이는 두 돌이다. 젖을 급하게 떼고 간이 어미가 가버렸다. 게으른 간이 아비 탓이다. 간이 아비는 필리핀 아내를 몸종 부리듯 했다.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아내를 패거나 의심했다. 노파는 간이 아비를 놓으면 깨질세라 만지면 부서질세라 애지중지 키웠다. 너무 귀하게 자란 나머지, 귀한 생명은 어른이 되어도 몸만 어른이 되었다.


“할머니, 그만 출발할까요?”


기사가 차에 올랐다. 같이 타고 왔던 젊은 부부 승객은 오지 않았다. 노파는 주변을 휘둘렀다.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이 굵은 소리를 냈다. 빗방울이 굵어져서인지 사방이 어두웠다. 어둠이 불안을 몰고 왔다. 버스의 시동 거는 소리와 문 닫는 소리와 와이퍼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버스가 움직였다.


노파는 온기가 있는 찰무리 떡을 가슴에 끌어안으며 기사를 바라봤다. 찰무리 떡 좀 먹어 보구려, 하고 기사에게 건네고 싶지만, 아들이 먼저 먹어야 할 떡이었다. 제사상 맨 앞줄에 아들의 밥과 여대생의 밥을 나란히 놓곤 했다. 떡국은 우측에, 술잔은 좌측에 놓았다. 양쪽 상에 촛대를 세우고 불을 붙였다. 토란국은 두 번째 줄에 놓고 어찬은 동쪽, 육찬은 서쪽에 놓았다. 여대생이 김치 부침개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것은 세 번째 열에 놓았다. 아들의 찰무리 떡은 그 옆에 놓았다. 육탕, 소탕, 간장, 어탕, 포, 삼나물, 삼채, 생채, 식혜. 과일, 밤, 배, 감, 과일, 과자류를 끝줄에 차례대로 놓고 작은 상에는 따로 향불을 피웠다. 이렇게 이십 오년 동안 아들과 여대생의 제사를 지내왔다. 여대생의 부모가 간이 아비를 안고 찾아왔을 때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불에 쌓인 간이 아비는 갈비뼈가 할딱이고 새알보다 작은 성대가 볼록거렸다. 아들은 여대생을 만나기 위해 지방 대학에 내려갔다가 대모 주동자로 붙잡혀 죽엄으로 돌아왔다. 여대생도 일 년 후 아들 따라 간이 아비를 낳다가 갔다.


떠난 자식을 붙들고 산 세월은 혼이었다. 제삿날 아들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을 붙잡고 살았다. 영감이 말없이 향불을 피우고 밥과 국, 나물과 고기를 담은 그릇을 들고 대문 앞에 서서 고수레를 부를 때는 석고대죄의 의식 같았다. 그런 영감이 죄를 면죄 받았다고 여기는 것인지 아들 제삿날인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감은 경찰관이었다. 영감이 지방경찰서로 발령을 받고 내려갔을 때 화염병을 든 대학생들과 철봉을 든 군인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때 영감이 받은 임무는 배후세력을 알아내는 일이었다.


“무조건 밝혀 네.”


영감의 임무를 취조 담당관에게 지시했다. 영감은 아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잔혹한 명령을 내렸던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내릴 수 있는 명령이었던가. 명령의 완수는 출세였다. 부질없음을 알았을 때는 삶을 통째로 잃은 후였다.


배후 세력을 자백하지 않는 청년을, 자백할 것이 없는 청년을, 취조 담당관은 영감 앞에 끌고 와 앉혔다. 영감은 청년을 한동안 바라봐야 했다. 청년의 늘어진 어깨와 머리 두상과 고개 숙인 가름한 얼굴과 긴 팔과 어깨너비와 다리 굵기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취조를 맡은 담당관이 청년의 머리채를 잡고 목을 뒤로 꺾었다.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청년이, 턱을 뒤로 치켜 들린 채 석회처럼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지?”


취조 담당관은 청년의 머리채를 쥐고 책상에 박고 또 박았다. 청년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몸은 공처럼 말려 바닥으로 굴렀다.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


취조 담당관의 목소리가 취조실 벽을 치며 울렸다.


청년이 영감을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영감은 왜 이 청년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고문 때문에 정신이 돌아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청년이 타들어간 입술로 말했다.


“아버지?”


영감의 가느다란 아랫입술만이 달싹일 뿐 놀람은 모든 신경을 굳게 만들었다.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취조 담당관은 청년의 가슴을 구둣발로 짓이겼고 의자를 들어 머리통을 깨부쉈고 발뒤꿈치로 청년의 입을 틀어막았다. 청년은 눈을 부옇게 홉뜨고 영감을 바라봤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노파에게 그런 상황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 노파는 그 상황을 보기라도 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파 옆자리에 영감이 눈을 감고 있다. 노파는 영감을 돌아보며 대거리를 쳤다. 자식 죽이고 잠이 오요. 당신 참 독허요. 미안해서 자는 척하는 거요. 눈을 떠보소. 아들이 오는 날이오. 노파의 말은 목울대에 걸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영감의 모습은 환영이었다. 기사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할머니, 가실 수 있겠어요?”


버스가 다리에 도착했을 때 누런 흙탕물이 다리 위로 차올라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하먼 가야지요.”


마을버스는 진흙물을 튕기며 멀어져 갔다. 노파는 찰무리 떡을 가슴에 보듬고 잰걸음으로 개울로 향했다. 노파의 발이 진흙물에 빠져 발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았다. 당산나무가 물에 잠긴 정도를 보니 서둘러 건너야 했다. 누런 개울물 속으로 다리를 집어넣었다. 노파는 우산을 지팡이삼아 발걸음을 디뎠다. 물이 가슴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우산을 폈다. 떠 있는 것을 붙잡고 의지해야 할 만큼 몸이 밑으로 빠져 들어갔다. 디뎌야 할 다리가 짚이지가 않았다. 노파가 허우적거렸다. 물 위에 떠 있는 몸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노파는 온 힘을 다해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누런 흙탕물이 세차게 밀려왔다. 노파는 휘몰아치는 물살을 거머쥐려 했지만 누런 흙탕물은 입을 벌리고 노파를 삼키려 달려들었다.


“안 된다. 이놈들아.”


노파는 찰무리 떡을 악착같이 끌어안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개울물 속에서 간이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낮과 밤이 지나갔다. 불도 켜지 않는 방안엔 영감과 간이만 있었다. 간이는 영감을 흔들어 깨웠다. 작은 손으로 영감 코와 볼을 꼬집었다. 영감은 한 자세로 누운 채였다. 밤 기온이 차갑고 영감 몸도 차가웠다. 문고리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간이는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 문을 흔들었다. 문은 어둠을 꿀꺽하고 삼킬 듯 무거운 소리를 냈다. 간이는 영감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비볐다. 누워있는 영감마저 없었더라면 더 무서웠을지도 몰랐다. 간이가 울자 개똥이가 문을 발톱으로 긁으며 짖어댔다. 개똥이 짖는 소리는 마을 가득 퍼졌지만 와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이가 개똥이 울음소리를 따라 우엉우엉 했다. 개똥이와 간이는 멍멍하다가 우엉우엉 하다가 그러다 서로 지친 듯 개똥이는 문밖에서 배를 깔고 눕고 간이는 영감 곁에 누웠다. 아침과 저녁이 여러 차례 왔다 갔다. 간이의 뱃속은 물도 들어 있지 않아 꼬르륵 소리도 나지 않았다. 별처럼 총총한 간이의 눈은 느리게 깜박이다 눈을 뜬 채 잤다.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비는 그쳤다. 물결이 칠 때마다 노파의 옷은 꽃잎처럼 팔랑거렸다. 알록달록한 옷은 피로 물들인 것처럼 붉었다. 여러 날 검던 하늘이 붉은 태양빛으로 변해 개울물은 주황색 물감 같았다. 개울물은 빛을 받아 흘렀다. 작은 쪽배 같은 슬리퍼 한 짝이 생솔가지에 걸려 있었다. 또 한 짝의 슬리퍼는 진흙 속에 박혀있었다. 노파의 손엔 찰무리 떡과 몰아 쥔 생솔가지가 한 움큼 쥐여 있었지만, 경찰은 자살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진흙에 파묻혀 있던 신발 한 짝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경찰차와 구급차는 노파를 싣고 멀어져 갔다. 한적한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지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헌 집을 헐어 새집을 짓고 논과 밭 구분 없이 비닐하우스를 둘러 품종 재배에 나섰다.

오로지 당산나무만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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