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예술,기타
6.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1947
아넬리스 "아네" 마리 프랑크(Annelies "Anne" Marie Frank, 아널리스 "아너" 마리 프랑크, 1929년 6월 12일 ~ 1945년 3월 12일)는 독일의 유대인 소녀로 나치가 네덜란드를 지배한 시기에 쓴 일기로 유명하다. 그 일기는 한국어로는 《안네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안네는 5세까지 부모님과 언니, 마고(Margot)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외곽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1933년, 나치가 세력을 잡자 오토 프랑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도피하여 사업을 하였다. 막내 안네와 함께 다른 가족들도 1934년 조부모가 살던 아헨을 떠나 아버지와 합류하였다.
1940년 5월, 독일은 암스테르담을 점령하였다. 1942년 7월, 독일 정부와 그의 네덜란드 협력자들은 네덜란드 전역의 유태인들을 독일 접경 도시 아센 부근의 웨스터보크에 위치한 임시 수용소로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독일 간부들은 웨스터보크의 유태인들을 폴란드의 독일 점령지에 세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와 소비버 집단 학살 수용소로 수송하였다.
7월의 초반 안네와 그녀의 가족들은 은신처로 거처를 옮겼다. 나중에 이 은신처에는 헤르만(Hermann), 아우구스테(Auguste), 그리고 페터 반 펠츠(Peter van Pels)와 프리츠 페퍼(Fritz Pfeffer)가 합류하였다. 이후 2년 동안 그들은 가족이 운영하던 263 Prinsengracht Street의 사무실 뒤의 숨겨진 비밀 다락방 아파트에서 생활하였는데 안네는 일기에서 이를 비밀의 별채(Secret Annex)라고 불렀다. 오토 프랑크의 친구와 협력자들인 요하네스 클라이만(Johannes Kleiman), 빅토르 쿠글러(Victor Kugler), 얀 기스(Jan Gies)와 미프 기스(Miep Gies)는 목숨을 걸고 사전에 이 은신처를 준비하고 음식과 의복을 몰래 제공하는 등 이들 가족들을 도와주었다. 1944년 8월 4일, 케슈타포(독일 비밀 경찰)는 익명의 네덜란드인의 밀고를 받은 후 이 은신처를 급습하였다.
같은 날, 게슈타포 간부이자 SS 하사관인 칼 실베르바우어(Karl Silberbauer)와 다른 두 명의 네덜란드 협력자는 프랑크 일가를 체포하였다. 8월 8일 게슈타포는 그들을 웨스터보크에 보냈고, 한 달 후인 1944년 9월, SS와 경찰 당국은 프랑크 가족 및 프랑크 가족과 숨어있던 다른 4명을 기차를 통해 독일점령 폴란드의 집단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이송하였다. 1944년 10월 하순, 안네와 언니 마고는 노동 인력으로 차출되어 독일 북부 첼례 부근에 위치한 베르겐-벨젠 집단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5년 3월 두 자매는 모두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이는 영국군이 베르겐-벨젠 수용소를 해방시키는 1945년 4월 15일로부터 불과 몇 주 전에 불과했다. SS 장교들은 안네의 부모 역시 노동 인력으로 차출하였다. 안네의 어머니인 에디트는 1945년 1월 초에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하였고 오직 아버지인 오토만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함에 따라 오토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은신처에서 거주하는 동안 안네는 자신의 공포와 희망 그리고 은신처에서의 경험을 일기에 기록하였다. 이 일기는 프랑크 가족을 숨겨주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인 미프 기스가 프랑크 가족이 체포된 후 은신처에서 발견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이 끝난 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과 미국 전역의 수천 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읽히고 있다. 안네 프랑크는 희망을 잃고 홀로코스트에서 사망한 유태인 어린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안네의 일기 (The Diary of a Young Girl)/1947] 의 내용소개 - 《안네의 일기》(Het Achterhuis)는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국외 탈출에 실패한 아버지의 결단으로 2년간 은신 생활을 하면서 남긴 일기이며, 일기장을 '키티'라고 부르며 친구에게 말하듯이 써내려간 독특한 양식이 특징이다. 일부내용은 은신 생활에 들어가기전의 내용(독일과 네덜란드에서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지만, 대다수 내용은 은신생활을 주제로 하고 있다. 1942년 6월 12일부터 1944년 8월 1일까지 썼고, 네덜란드어 판은 1947년 아버지 오토 프랑크의 일부 원고 편집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1995년 한국어판으로 무삭제 원고를 완역되어, 문학사상사에서 출판되었다. 1944년 8월 4일 독일 비밀경찰이 안네 일행이 살던 곳을 알아내 그 일행은 모두 붙잡혔고 그 뒤 안네는 다음해 3월 수용소에서 16살의 나이로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말았다.
안네의 일기에 따르면 안네는 1929년 독일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랑크(Otto Frank)와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Edith Holländer)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디트는 독실한 개혁파 유대교 신자여서-현대 유대교는 토라의 엄격한 준수를 주장하는 정통주의 유대교, 토라의 느슨한 준수를 주장하는 개혁파 유대교로 구분된다. 큰 딸 마르고트와 작은 딸 안네도 어려서부터 시나고그에서의 유대교 예배에 참여하여 유대교 신앙을 배웠다.
1933년에 나치당의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교육, 교통, 거주지 등에서의 인종차별이 실시되고, 1938년 17세 소년 헤어쉘 그린츠판이 거주의 자유 박탈에 항의하다 파리주재 독일대사관 3등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를 살해한 사건을 구실로 유대인들에 대한 집단 테러를 가한 범죄인 수정의 밤 사건을 시작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홀로코스트)가 일어나자, 삼촌들은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안네 프랑크의 가족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다. 당시 대다수의 유럽국가들은 히틀러가 유대인 정책을 강제 추방에서 강제수용소 수용 및 학살로 바꿀만큼 유대인들의 망명을 좋아하지 않았고 영국의 경우 재정후원이 있는 경우에만 어린이의 망명을 허락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홀로코스트를 묵인한 공범이라는 비평을 받았다.
몬테소리 학교에서 개별 자유 수업을 받았으며, 중학교는 유대인 중학교에 진학하였다. 그 이유는 1938년 이후 유대인들을 유럽사회에서 소외시키려는 나치의 인종차별 실시로, 학교 진학에서도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13살생일에 (후에 《안네의 일기》라고 불리게 된) 붉은 체크 무늬 일기장을 선물로 받았다. 안네는 일기장에게 '키티(Kitty)'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은 서부 유럽으로 확대되어 나치 독일은 중립국가임에도 네덜란드를 점령하였고 곧 네덜란드 내의 모든 유대인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Otto Frank)가 나치의 네덜란드 점령에 대해 그리 위험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7년 1월 26일자 《타임》에서 공개한 편지에 따르면, 오토 프랑크는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한 사건이 가족들을 해외로 망명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만큼 위험한 사건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미국 대사관이 나치 독일의 네덜란드 점령으로 폐쇄되어 미국으로 망명할 수 없게 되자, 고육지책으로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암스테르담의 프린선흐라흐트(Prinsengracht) 263번지에 있는 펙틴(과일잼에 들어가는 식재료) 공장 사무실에 있는 창고를 책장으로 위장해서 교묘하게 막고 1942년 7월 5일에 자신의 가족을 그곳으로 피신시킬 준비를 하였다.
은신 계획은 비밀리에 진행되어서, 안네가 일기장에 아빠가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몰랐다고 적었을 정도였으며, 안네의 일기에 따르면 이웃들도 안네 자매가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다느니, 안네 일가가 나치에게 끌려갔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만큼 보안도 완벽했다.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자 안네 일가는 새벽에 일어나 옷가지같은 생필품만 챙긴 채 은신처에 갔다. 안네는 은신처에 가던 날의 모습을, 나치의 인종차별 때문에 자동차나 전차를 타지도 못하고 비를 맞으면서 걸어간,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을 불쌍하다고 쳐다보는 것을 알면서도 참아야 했던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적었다. 이때부터 비밀 저택이라고 이름붙인 은신처에서 2년간 숨어 살면서 안네는 일기장 키티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안네의 일기》를 적어 갔다.
은신처에서 산 이들은 안네의 가족과 그의 이웃 유대인들(오토 프랑크의 사업을 돕던 판 단과 그의 가족, 치과 의사 뒤셀) 들을 포함한 총 8명이며, 약 2년 동안 생존을 위해 투쟁하였다. 식료품(주로 감자)와 생활용품)은 당시 오토의 공장에 종사했던 3명의 사무직원이 담당하였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미프 기스(Miep Gies)라는 처녀가 심부름을 해 주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안네의 표현을 빌면 쉴 틈이 없었을 정도로 행동의 자유가 없는 은신처 사람들의 심부름을 해 주었다.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압수과정에서 안네의 일기와 그가 습작한 글들을 몰래 빼돌린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은신처에서 안네 일가와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안네의 일기에 따르면 부친의 먹거리 장사로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누리던 은신생활이전의 삶과는 달리 먹을 것, 속옷등의 생활에 있어야 할 것들이 부족했고, 같이 살기전에는 몰랐던 서로의 결점이 눈에 띄면서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지만, 나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죽지 않기 위해 불만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하지만 일기에는 자그마한 행복들도 보인다. 지하경제로 산 고기와 양념으로 소시지를 만들어서 사우어크라우트(양배추를 발효한 음식)와 같이 먹은 이야기,불어,영어,지리,역사등을 공부한 이야기,독후감,딸기를 사서 먹은 이야기 등의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행복들이 일기에 담겨 있다.
1944년 8월 4일 밤, 익명의 밀고를 받은 나치의 게슈타포는 이 은신처를 급습하여 8명 전원을 체포하고 안네의 가족을 나치 강제 수용소로 이송했다. 그래서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4일로부터 불과 3일 전인 8월 1일에서 끝나 있다.
범우사에서 번역한 안네의 일기 해설에 의하면, 안네의 가족을 잡아간 나치의 게슈타포 카를 실베르바우어는 훗날 검거되었다. 안네의 가족을 고발한 밀고자의 신분에 관해서 지금까지 서너 가지 추측이 있었다. 이를테면 창고지기가 한 사람당 5길더를 받고 밀고를 했다는 설이 있는데, 모두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안네는 16세의 나이로 1945년 3월에 유대인 강제수용소 베르겐 벨젠(Bergen-Belsen)에서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죽었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기 2달 전이었다. 어머니는 정신이상으로 죽었다. 언니 마르고트도 장티푸스로 죽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본 안네가 상심이 커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네의 가족 가운데 아버지 오토만이 옛 소련군의 수용소 해방으로 생명을 건졌는데,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이제 두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안네의 일기를 책으로 출판했다. 그외 은신처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에서 병이나 가스실에서의 학살로 죽었는데, 판단 씨 가족의 경우 부인은 안네와 마르고트와 같은 수용소에서 지내면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독일이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죽었고, 판단 씨는 가스실에서 학살되었으며, 안네의 남자친구였던 페터는 독일군의 수용자 강제이주로 어디론가 끌려간 뒤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도 하고 수용소에서 죽었다고도 전해진다.
안네가 쓴 일기는 1947년에 아버지 오토의 편집(안네의 성(性)에 대한 사춘기적 관심이 드러나는 부분, 부모와 은신처의 다른 가족을 비난하는 부분이 삭제되었다.)을 거쳐 출판되었으며, 이 일기는 약 60개 국어로 번역되어 약 3천 2백만 권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한국어판은 안네 아버지가 편집한 원고를 출판해오다가, 원고를 모두 번역한 무삭제판이 안네가 습작한 단편소설들과 함께 출판되었다. 안네의 가족이 피신하여 살던 집은 현재 안네 프랑크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_The Diary of a Young Girl.pdf
AFC-Readers-Companion-Diary-of-AnneFrank.pdf
Anne-Frank-The-Diary-Of-A-Young-Gir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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