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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2차 외출, 가을 단비 우안화백의 산막골일기
지난 목요일[19일] 산방 관사 사현재에 와있는 용철씨 친구 두분이 서울서 용철씨를 보러 차로 들어왔기에 그들이 나올 때 얻어타고 시낼 나왔습니다. 원래는 오후 배를 타고 나갈 생각이었지요. 가뭄 때문에 부귀리의 그 많은 단풍나무도 때깔이 별로 곱지 않았지만 그 중에 몇 그루는 홈염의 선연한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줘 위로가 되더군요. 어떤 경우에도 남다른 것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자연은 해마다 같은 듯 싶지만 되풀이란 없습니다. 그 해 기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6시 반에 하중도 뱃터 부근에 있는 '콩밭'이란 식당에서 문소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식당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두부전문점입니다. 십여명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요.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왔는데 회원들의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저 한 주를 앞당긴 겁니다. 금요일엔 시화의 격조전 마지막 날이라 전시장에 들렸었습니다. 한아름님이 3시경 와서 보는 중에 시화 액자들을 떼어 포장하는 작업을 하는 조금은 황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름님한테 미안해 시화집을 구해 주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찾아와 함께 창작관에 들렸습니다. 지난번 새겨준 낙관중에 이름을 잘못 넣은게 있어서 갈고 새로 팠습니다. 그 바람에 아름님이나 친구한테 커피 한잔 대접을 못하였지요. 6시 반, 명계남님과 약속한 별당막국수에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조반마 사전 모임에 불청객으로 참석해 명짱과 식사하며 간간히 이야길 나누고 중간에 먼저 나왔습니다. 돌아오다가 광장서적에 습관처럼 들려 새로나왔거나 꽂혀있는 책들을 들쳐 보았지요. 미술서적 코너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건 직업 탓이겠지요. 토요일, 집사람도 같이 가고 싶어해 서울가는데 동행을 하였습니다. 오전 11시 5분 기차를 탔어요. 이상하게도 나들이를 하게되는 전날엔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서너시간도 채 잠을 못 잔 상태였지요. 전철 종로 3가역에서 내려 청계천의 복구[?]된 모습을 봤습니다. 종로 1가까지 걷다가 인사동에 들려 집사람은 식당에서 쓸 작은 접시 10여개를 사고 나는 영보재에 들려 그림 재료 몇가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시 55분이었습니다. 서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옥산 김옥진화백 회고전에 3시까지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거든요. 마음이 바쁘니까 종각역을 통해 길을 건너다가 출구를 반대편으로 나오는 허둥거림도 생기고 묵직한 배낭을 메고 걷자니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3시 20분에 도착하니 옥산화백님은 조금전에 귀가를 하셨다는 겁니다. 81세의 노령이시니 연일 찾아오는 사람 만나시고 지치셨을 겁니다. 조무하님이 전시장에서 대신 기다리고 계셨고 옥산선생님께 전화연결을 해주셔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화집도 받았지요. 몇몇 현대한국화협회 회원들과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분들도 70대에 들어서셨더군요. 무사님이 3시 반에 전시장 도착했고 초당님이 4시경 왔습니다. 조금 뒤져서 화담님과도 만났습니다. 가까운 무교동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며 화담님이 최근 프랑스와 터키 다녀온 이야기며 노하우21의 무브온21로 변환과 전망을 초당님한테 듣기도 했지요. 결국은 찬들의 소모임이었습니다. 화담님이 터키에서 가져온 술 라키 맛도 보았습니다. 원액에 물을 부으면 우유빛으로 변하는게 신기하더군요. 다음날 아침 일찍 춘천에 같이 가기로 하고 시청역에서 헤어졌습니다. 집사람과 함께 무사님댁으로 갔습니다. 386님이 안동댁과 함께 무사님댁으로 안성에서 왔고 진수라는 젊은이도 우안이 왔다는 말을 듣고 인사차 왔어요. 봄에 무사님 부부와 함께 산막골을 다녀갔었지요. 우리예리님도 우정 우안을 보러 무사님댁엘 오셨습니다. 무사님, 386님과는 이야기나누다가 밤을 꼽빡 새고 말았지요. 뭔 이야기가 해도 해도 그렇게 많은지 이야기 못하고 죽은 귀신이 같이 씌운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떠올라 혼자 웃었습니다. 무사님 부부가 소양강 부부를 위해 신방을 알뜰하게 꾸며놓았고 몰래카메라까지 설치를 했다는데 그만 곱게 여민 침대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말았답니다. 소양강이 서울을 가면 여러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맙니다. 이것 참 어찌해야 할지요. 아침 7시 회기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초당님, 화담님, 다알리아님, 느티나무님과 만났습니다. 무사님 부부와는 여기서 작별인사, 차안에는 이미 우리 부부와 386님, 안동댁이 타고 있었으니 승차인원이 8명이었습니다. 막힘없이 경쾌하게 경춘가도를 달렸습니다. 청평검문소 부근의 가마솥설렁탕집에서 몇 사람만 급하게 아침 식사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초당님이 조반마 출발 시간전에 도착하자면 마음이 급해서지요. 송암동 야구장까지 가까운 길을 놔두고 늦게 장소를 말하는 바람에 멀리 돌아서 다행히 늦지않게 닿았습니다. 명짱과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일행을 소개도 시켰구요. 얼추 헤아리니 7~8백명이 모인듯 했어요. 마라톤 출발을 본 후 초당님은 거기 있고 의암호 건너 방동리에 사는 현산네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이미 약속을 해놨거든요. 화담님과 함께 볼 일도 있었구요. 화담님이 우안의 소나무 그림 만으로 내년 달력을 만들려 하고 있기에 현산컴에 저장된 그림들을 보고 선별작업을 하려는게 목적이었습니다. 현산,이담 부부가 대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착하자 그림 선별작업부터 해놓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초당님과 한아름님도 행사 끝내고 와서 같이 식사를 했지요. 이담도 점심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지요. 오랜 가뭄끝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단비를 맞으며 산막골로 출발을 했지요. 대부분 배를 타고 싶어해 소양댐 선착장에 내려주고 안동댁이 운전해 우리 부부만 먼너 차로 들어왔습니다. 승호대의 운무는 지금까지 보아온 어느 것 보다도 변화가 풍부하게 이뤄지며 아름다웠습니다. 도착해 십분도 안되서 배 타고온 일행들도 산방에 올라왔습니다. 3시 반경입니다. 6시가 조금 안되서 떠나기 까지 빈약한 안주를 놓고 술판을 현관에 벌렸습니다. 집사람이 장떡을 부쳐내 겨우 술판의 구색을 갖추었지요. 운무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산막골, 좋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우중[雨中]에 우주[雨酎]를 마셨다고나 할까요. 떠나보낸 후 곧바로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2시간 가량 자고나니 깨어지더군요. 이렇게 시월의 2차 외출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며칠 밤을 지새워도 초저녁에 자면 애벌잠이 됩니다. 평소의 취침 시간이 되야 제대로 푹 잠을 자게 됩니다. 가을 단비는 촉촉히 계속 잘 내리고 있습니다. 내리는 것으로 봐서 어느 정도 해갈이 될듯 합니다. 뒤늦게라도 비 덕분에 고운 단풍을 감상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겨납니다. 가을가뭄이 오래되고 좀 심했었습니다. 김장밭에 물주시는 주민들 모습을 흔하게 봤으니까요.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기원했던 옛어른들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가를 나이들어 가는 증표인지 체감하게 됩니다. 2006. 10.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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