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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26_北韓과中國

탈북 15년, 김일성 종신 권력의 恥部를 파헤치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11. 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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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해외 박사 1호 최경희씨] / 2015.11.26

도쿄대서 김일성 연구로 학위 받아… 北의 권력 유지 과정 실증적 분석
"故 박태준·황장엽 선생님 큰 도움"

탈북자 출신인 최경희(44)씨가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씨는 구소련 몰락기인 1986~1994년 김일성이 종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을 연구해 '북한 수령 권력의 생성과 그 메커니즘'이란 제목의 논문을 제출해 지난 3일 학위를 취득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자가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최씨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논문 지도교수인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54) 도쿄대 교수는 "최씨가 이번 논문을 통해 과거 김일성이 어떻게 권력을 유지했고, 그것이 이후 북한 체제의 견고함으로 이어졌는지를 면밀한 실증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김일성은 자신이 늙어갈수록 모든 생살여탈권이 장악되도록 시스템을 강화했고, 김정일도 충성해야만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김정일의 역할이 강화될수록 김일성 독재 권력이 더 안정되도록 체제를 바꾸어갔다"고 말했다. 이 논문은 북한 연구에서 핵심인 '김일성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북한 체제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난해한 '수령론'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의 관계를 알기 쉽게 해석했고, 향후 김일성뿐 아니라 김정일과 김정은 체제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출신 해외 박사 1호인 최경희씨. 논문도 말년의 김일성이 종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 권력 구조를 재편한 과정에 대한 연구서이다. /이태경 기자


최씨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청진경제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북도 도당에서 서기로 일하며 가정을 꾸려 아들도 낳았다. 비교적 순탄했던 최씨의 생활은 1998년 최씨의 남동생이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듣다가 보위부로 끌려갈 처지가 되면서 일대 위기에 처했다. 최씨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1998년 먼저 탈북했고, 최씨도 2001년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을 데리고 탈북해 국내로 들어왔다.

한국에 온 최씨는 한양대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학했다. 이때 한양대 교수였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강의를 들으며 연구 의지를 키웠고, 2005년 그의 추천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최씨는 "일본은 냉전 시기부터 사회주의 국가와 왕래하면서 북한 연구 성과를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연구에 유리한 곳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2009년 일본 시즈오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같은 해 4월 도쿄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는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섬세하고 정교한 일본 문화에 적응해야 했던 것"이라며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일본 학자들의 세밀함이 때로 나를 지치게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도쿄대 펠로십 장학생에 발탁돼 3년 동안 등록금과 학비를 지원받았다. 생활비는 시즈오카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벌었다고 한다.

최씨는 2012년 잠시 학업을 중단했다. 같이 탈북한 아들이 그 무렵 대원외국어고에 입학하면서 그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이 기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설상가상으로 2013년 어머니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병원에서 간호하면서 논문을 썼다"고 했다. 최씨는 "내게 학문적으로 도움을 준 분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이고,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준 분은 고(故) 박태준 전 총리"라고 했다. 최씨는 김일주 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의 소개로 박 전 총리를 만나 애린복지재단(이사장 이대공) 장학금 등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 최씨는 "나를 키워준 고마운 한국 사회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김명성 기자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6/2015112600284.html?pm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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