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Ⅰ] 문학 24. 귄터 그라스/ 양철북/ 1959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5. 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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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bP-3slb3X8

[Ⅰ] 문학 24. 귄터 그라스/ 양철북/ 1959 

 

 

 

 

 

024.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양철북(Die Blechtrommel, The Tin Drum,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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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스물 네번째 ,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양철북(Die Blechtrommel, The Tin Drum, 1959)’ 시작합니다. 14살에 히틀러 소년단에 가담해 17살에 히틀러의 나치 무장친위대 10 SS기갑사단에 자원하여 참전했고 미군의 포로가 되었던 작가의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담긴 의미심장한 작품입니다. 그러면,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그의 작품 양철북(Die Blechtrommel, The Tin Drum, 1959)속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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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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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 (Günter Grass, 1927 10 16 ~ 2015 4 13) 독일제국 단치히(Danzig) 자유시로 현재 폴란드의 그단스크(Gdańsk)에서 1927 10 16일에 식료품 상인이었던 독일계 루터교 신자인 아버지 빌헬름 그라스(Wilhelm Grass, 1899-1979) 슬라브계 소수민족 카슈비아인 카톨릭교도 어머니 헬레네 그라스(Helene Grass, 1898-1954)사이에서 11녀중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여동생 월트라드는 1930년에 태어났습니다. 14살이던 1941 2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 소년단인 독일 제국노동봉사대에서 참여하여 활동하던 , 17살살때인 1944년에 해군 잠수함 부대에 지원했지만 탈락하고, 히틀러의 나치 무장친위대에 자원입대하여 10 SS기갑사단 프른즈베르크로 발령받아 참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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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후에는 부상당한 미군 포로로 잡혀 1946년까지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석방된 1946년부터 1947년까지 광산에서 일하며 석공 기술 과정을 마쳤습니다. 1948년부터 1952년까지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그래픽과 조각을 공부했고, 1953년부터 1956년까지는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조각을 배웠습니다. 1954 스위스 댄서출신인 안나 마가렛 슐츠(Anna Margareta Schwarz) 결혼하여 1960년까지 베를린에 살기 시작했지만, 1972 별거에 들어가 1978년에 이혼했습니다. 슐츠와 사이에서 1957년생 프란츠(Franz), 1957년생 라울(Raoul), 1961년생 로라(Laura), 1965년생 브루노(Bruno) 4명의 자녀를 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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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베로니카 슈로터(Veronika Schröter) 관계를 시작하여 1974년에 헬레네(Helene) 낳았습니다. 1979년에는 잉그리드 크루거(Ingrid Kruger) 사이에서 낼리(Nele) 생산했습니다. 1979 그라스는 오르가니스트인 우테 그루너트(Ute Grunert) 결혼하여 여생을 함께 하며 몰타(Malte) 한스(Hans)라는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라스가 죽을 18명의 손주를 두었습니다. 그라스는 1955 슈투트가르트 방송국의 서정시 경연대회에 입상한 , 1956년부터 1958년까지는 예술 작품 전시와 별도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여 단문, , 희곡 등을 발표했습니다. 1959년에 매우 묘사적인 언어로 나중에 영화화 되기까지 양철북(Die Blechtrommel, The Tin Drum)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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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그라스는 2 세계 대전 처음으로 세계 문학계에 이름을 날린 독일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어 고양이와 , 개의 에서도 전쟁 전과 전쟁 후에 걸친 시대의 과오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작품의 무대는 모두 고향인 단치히(Danzig) 배경으로 하고 맀습니다. 이밖의 작품으로는 달팽이의 일기에서, 넙치 등이 있습니다. 1996년에는 유럽문화공로상을 받았습니다. 그라스는 소설가로 활약하는 한편, 부조리극적인 소품(小品) 요리사, 홍수, 버팔로까지 앞으로 10등을 발표한 있습니다. 1965년에는 현대정치에도 직접 행동으로 참가하여 · 독일의 분열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 대담하게 도전한 천민의 폭동연습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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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폭동이 일어난 1953년의 브레히트를 모델로 하여 예술과 정치의 관련을 추구한 작품인 독일의 비극 발표했습니다. 그라스는 전후 독일 사회민주당의 주요 지지자가 되어 외국인 혐오증, 신나치주의 등에 반대하는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라스 문학의 주요 주제는 2 세계 대전과 나치의 이데올로기가 독일과 독일 국민에게 미친 영향과 그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라스 작품의 배경인 독일제국 시대의 단치히(Danzig) 폴란드의 그단스크(Gdańsk) 시의 위치와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모호한 역사적 지위는 종종 인종 그룹 간의 모호함의 상징으로 있습니다. 그라스의 작품에서는 전쟁의 반대편에서 싸운 독일인과 슬라브 족을 포함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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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의 작품은 불결하고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우생학적인 대량 학살의 대상이 사람들과 같이, 주변적이고 소외된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줍니다. 그라스의 문학 스타일은 현실적 자전적 요소와 신뢰할 없는 화자, 아이러니를 만들거나 사건을 풍자하여 사회적 비판을 형성하는 사건과 혼합하여 독자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복잡한 질문을 던지는 사실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라스는 1960 독일사회민주당에 가입하며 핵무기에 반대하는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가담해 비판적 지성으로 불렸습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 재선을 위한 시민운동을 이끌기도 했으며 헬무트 낙선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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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평생 동안 열렬한 파이프 흡연자였던 그라스는 2015 4 13 뤼베크 병원에서 87세의 나이로 폐질환으로 사망 했습니다. 2015 4 25, 1995년부터 그가 살았던 뤼벡(Lübeck)에서 남쪽으로 15마일 떨어진 벨렌도르프(Behlendorf) 가족묘지에 묻혔습니다. 2015 5 10 뤼벡 극장 에서 열린 그라스 추도식에는 미국에서 방문한 소설가 어빙이 추도사를 했습니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모니카 그뤼터스 연방 문화 국장, 영화 감독 볼커 슐뢴도르프, 그단스크 시장 파베우 보그단 아다모비치( Paweł Bogdan Adamowicz, 1965~2019) 저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애도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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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자들은 그라스가 저술 작업을 통해 예술가와 예술 자체의 독립을 옹호했다고 언급했습니다. 파베우 아다모비치 시장은 애도사에서 그라스가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틈을 메웠다" 말하면서 소설가로서 어떤 정치적 "타협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칭송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라스는 독일 전후 역사를 보듬고 주조하는 예술적으로, 사회·정치적으로 헌신했다 추모했습니다.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인이 숨졌다 애도했습니다. 그에게 글은 삶의 일부이자 자신을 담아놓는 곳이었습니다. 그라스는 오늘의 독일이 나치즘이 남긴 정신적 물질적 폐허 속에서 성숙한 민주공화국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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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는 선거 때마다 자원봉사자들로 유권자연합을 결성하여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던 위대한 시민이었습니다. 1969 선거에서는 190, 1972 선거에서는 130 이상의 유세를 직접 펼쳤습니다. 1999 노벨상을 받고 나서도 바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회 선거에 지원유세를 나설 정도였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로 맥주잔을 앞에 놓고 대중들과 토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정치 참여의 이유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의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독일 현대사의 정치적 굽이마다 그라스의 자취가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1966 나치 전력을 가진 쿠르트 키징거가 총리로 내정되자, 그라스는 취임 전날 사임을 촉구하는 공개편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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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전력을 가진 당신이 총리 자리에 앉게 된다면, 학생들에게 역사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당신은 책임만 감수하면 되지만, 우리는 결과와 치욕을 감수해야 합니다.1989 통일공간에서는 아우슈비츠가 있는 독일통일의 도덕적 정당성은 없다 민족통일보다 유럽통합이 우선한다 주장을 펼쳐 독일인들을 경악하게 했고, 불안해하던 유럽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부채탕감론으로 서독인들의 통일세 논란을 잠재운 것도 그라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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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는 이런 거침없는 터부 파괴로 둥지를 더럽히는 , 조국이 없는 이라는 온갖 비난을 몸에 받았지만, 동시에 독일이 나치즘에 의해 실추된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고 유럽연합의 중심국으로 도약하는 정신적인 토대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니 그라스가 독일 정체성의 생산공장, 독일 민주주의의 교사, 독일의 비공식적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독일이 유럽으로부터 존경 받는 국가가 것은 과거 청산을 문학의 중심 주제로 삼았던 그라스의 덕으로 오늘의 독일은 귄터 그라스의 정신에서 탄생한 나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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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Die Blechtrommel, The Tin Drum, 1959)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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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귄터 그라스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입니다. 2 대전 당시 나치 휘하의 독일을 배경으로 성장을 거부하는 소년의 모습을 통한 전체주의적 파시즘에 대한 비판을 보여줍니다. 소설은 1,2,3부로 나뉘어져 있고 시대배경은 1899년부터 1953년까지 양차대전과 나치 시대, 전후 복구기간까지 포괄합니다. 혼란했던 시대 상황과 함께 굴절되고 일그러진 인간의 초상을 그려냈습니다. 영화 '양철북'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에 의해 1979 만들어졌습니다. 소설이 독특한 상상력을 토대로 세상의 위선을 반어적인 형태로 꼬집기 때문에 영화는 그로테스크하고 호러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를, 일종의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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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 현실을 도드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논란도 컸습니다. 특히 당시 오스카 역의 아역배우에게 야한 장면을 촬영케했다는 것으로, 지나친 외설논란이 일어, 미국의 주에서는 상영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원작에서는 성적인 묘사를 반어와 풍자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스카가 자신을 예수라 주장하는 신성모독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양철북 주요 배경이 단치히(Danzig) 독일과 폴란드 사람들이 공존하는 독일과 폴란드의 접경지대로,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의 제일목표가 되었던 곳이자 그라스가 태어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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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전 중에는 독일이 단치히를 독일화시켰으나, 2차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완전히 폴란드령이 되어 오히려 대대로 살던 독일인들이 쫓겨나, 지금은 완전한 폴란드 도시가 그단스크(Gdańsk)입니다. 바웬사가 중심이 폴란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라스는 그곳에서 궁핍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 청년기에 2 세계대전을 겪으며 현대사를 통과했습니다. 단치히를 무대로 독일의 파행적인 20세기 ·중반의 역사를 통렬한 반어와 역설과 풍자로 담아내 전후 세계문단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나치스 치하에서 성장해 전쟁에서 살아남은 독일 전후 세대를 대변하는 탁월한 작품 『양철북』은 1959 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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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대 독일 문단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영원할 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밝고도 어두운 우화로 역사의 잃어버린 단면을 그려냈다 평가를 받아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유럽은 다민족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단치히만 해도 독일인, 폴란드인, 카슈바이인 등이 공존했습니다. 국경도 자주 바뀌어 분쟁이 끓이지 않았습니다. 유고내전이 대표적인 여러민족의 분쟁을 알려준 곳입니다. 그라스는 '저항' '다른 시각'이라는 말로 '양철북' 대해 설명했습니다. 1950년대 독일에서 사람들은 모두 어둠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둠에 저항하고 반항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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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주인공 오스카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관점이 아니라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고 평을 합니다. 그라스 역시 오스카처럼 어렸을 때부터 다른 관점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봤던 사람입니다. 말년까지도 정치와 역사에 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온 사회참여적 작가인 그라스는 알지도 못한 무작정 비난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을 쏟아부었습니다. 2 세계대전 기간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17 히틀러의 나치 친위기갑부대에 자원하여 복무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얻은 죄의식은 훗날 그라스의 문학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양철북』은 1952년에서 1954년에 걸쳐 정신병원에 수감된 오스카라는 나이 서른이 되어도 키가 120cm 머무르는 난쟁이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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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의 이야기는 오스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시작합니다. 외할머니 안나는 항상 겹의 치마를 입고 다닙니다. 겹의 치마 속에 외할아버지 요셉을 숨겨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요셉은 방화범이라 불리는, 실은 폴란드 독립운동을 일으키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이에서 태어난 아그네스는 요리를 잘하는 식료품가게 주인 마체라트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실은, 사촌인 브론스키와 사랑하던 사이였습니다. 아그네스는 결혼 이후에도 브론스키와 관계를 이어갑니다. 오스카에겐 명목상 아버지 마체라트와 진짜 아버지 브론스키, 이렇게 명의 아버지가 있는 셈입니다. 마체라트는 독일을, 브론스키는 폴란드를 상징합니다. 마치 단치히가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서 정체성이 갈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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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체라트와 브론스키는 어머니 아그네스와 함께 우정을 나눕니다. 그러한 삼각관계 사이에서 오스카가 태어납니다. 주인공인 오스카 마체라트 1924 단치히라는 도시에서 태어납니다. 살이 오스카는 어머니와 외사촌 얀의 불륜적인 관계를 목격하고 기존 체제에 대한 반항과 거부로 지하실 계단에서 떨어져 스스로 성장을 멈추어 버립니다. 이는 독일이 나치 집권기로 들어가던 시절과 맥을 같이 합니다. 오스카의 성장이 멈춘 것은 더이상 독일의 시민의식이 성장하지 못하고 암흑시대를 들어간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스카는 이미 태어날때부터 정신이 성숙돼있는 걸로 설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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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철북을 두드리며 누군가 그의 양철북을 떼어놓으려 , 괴성을 질러 유리를 깨뜨리는 초능력으로 그의 반항의식을 드러냅니다. 훗날 마체라트는 나치당원으로, 브론스키는 폴란드 우체국 공무원으로 각자의 길을 가게됩니다. 나치스 독재정권의 지배와 2 대전의 발발로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떠돌아다닙니다. 브론스키는 1939 폴란드 패망과 함께 죽고, 마체라트는 1945 독일의 패망 나치 배지를 삼키고 죽습니다. 오스카는 1945 독일의 패배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99cm에서 120cm 성장하기 시작해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키작은 난쟁이고, 게다가 등에 혹까지 생겨나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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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인사건에 연루돼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맙니다. 이는 전후 독일 사회가 과거로부터 나아가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내게는 아직 북이 있었다. 거기에다 목소리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오스카의 소리야말로 이상으로 나의 존재를 실증하는 영원히 신선한 증거물이었다. 내가 노래로 유리를 산산이 가루로 만드는 나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며, 내가 겨눈 호흡이 유리의 숨통을 끊는 속에는 생명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철북을 두드리며 높은 목소리로 유리를 깨는 오스카의 모습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나치 독일의 모습입니다. 오스카의 유아적 혹은 불구적 모습은 역사의식과 책임감이 결여된 독일 소시민 계층의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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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치즘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전후 독일의 모습이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나옵니다.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와 브론스키의 위험한 줄타기같은 사랑을 시작으로, 오스카와 마리아의 어린아이같은 사랑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오스카와 동갑으로 정상적으로 성장한, 오스카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그녀는 오스카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마체라트와 결혼함으로써 동갑내기 오스카의 계모가 됩니다. 오스카는 마리아가 낳은 아들 쿠르트를 마체라트가 아닌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의 이른 첫사랑은 깨지고, 그는 그후 여러 여자들과 만나지만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책에서의 성적 묘사는 강렬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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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오스카이지만, 다른 주인공은 오스카가 성장을 멈춘 1927년에 단치히에서 태어난 귄터 그라스 자신이기도 합니다. 유럽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시대를 관통하는 난쟁이의 여정을 통해 귄터 그라스가 묻고자 하는 것은 독일의 도덕적 과거청산과 건전한 정체성 회복이었습니다. 시대의 진정한 거인 귄터 그라스가 『양철북』 후속 작품으로 19 61 발표한 『고양이와 쥐』, 1963년『개들의 시절』은 『양철북』과 함께단치히 3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치히 3부작의 핵심은 독일인이 2 세계대전을 어떻게 경험했는가입니다. 당시 그라스는 작가적 양심에 따라 나치스 치하의 상황과 원인, 파생된 문제들을 다뤄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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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인 혹은 비판적인 지성인으로도 불린 그라스는 1960 베를린으로 돌아와 독일 사회민주당에 가입해 핵무기 반대, 인종차별 철폐 등을 주장했습니다. 그라스는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동독이 서독에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에 줄곧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2002 한국을 방문했을때도 한국이 물리적이 아닌 화학적 통일을 이룰 것을 조언했습니다. 그의 거대한 삶이 담긴 책을 읽으며 이해와 난해를 반복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 통해 자신의 나치 전력에 면죄부를 주도 있기도 합니다. 작고하기 직전까지도 독일 사회민주당의 추종자로서 신나치주의에 반대하고, 외국인 혐오증을 비판하며 건전한 시민사회를 위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보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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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귄터 빌헬름 그라스(Günter Wilhelm Grass, 1927 10 16 ~ 2015 4 13) 양철북(Die Blechtrommel, 1959)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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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스물 다섯번째 , 조셉 헬러(Joseph Heller, 1923 5 1 ~ 1999 12 12) 캐치-22(Catch-22, 1961)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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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100806.pdf

 

 Grass, Günter ''The Tin Drum''-Xx-En-Sp.pdf

 

 Guenter_Grass.pdf

 

 Infantilization of Evil.pdf

 

 tindrumpressnote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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