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4_李命稙大監

가의대부의병대장겸삼남도육군대도독(嘉義大夫義兵隊長兼三南道陸軍大都督) 남삼도대원수군제사목(南三道大元帥軍制事目) 전 12개 조

忍齋 黃薔 李相遠 2018. 9. 2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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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조부 이명직 대감님이 윤자형(尹滋亨) 장군님에게 전달했던 고종황제의 조칙 문서는 소문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는데 1989년에 후손이 궤짝 밑에 붙여져 있던 걸 발견함에 따라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고종황제의 일제에 대한 무력저항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고종 조칙(高宗詔勅)이 궤짝 밑에 붙여져 있던 사연은 윤자형 장군님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가시기 전에 며느님에게 소중하게 간직하라고 전해주시며 아무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그 며느님이 고종 조칙을 궤짝 밑에 넣고 도배를 하였답니다. 윤자형 장군님은 1930년대 광주 무등산에서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단군 신앙으로 무장하여 원각교(圓覺敎) 활동을 하다 1939년에 충남 예산에서 작고하셨습니다. 며느님도 고종 조칙의 존재 사실을 후손에 전하지 못 한 체 돌아가셨습니다. 

1989년 후손이 집수리를 하다가 궤짝을 문밖에 내어놓았는데 때마침 비가 와서 도배해 놓은 부분이 비에 젖어 축 처져 있길래 뜯어 보니 1908년 7월 7일 자로 옥새가 찍힌 이 고종 조칙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조칙에는 "윤자형을 가의대부 의병대장 겸 삼남도육군대도독(嘉義大夫義兵隊長兼三南道陸軍大都督)으로 삼고 남삼도대원수군제사목(南三道大元帥軍制事目) 전 12개 조를 지어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12개 조의 주 내용은 "삼도의 군량 대사 작전권을 윤자형 의병대장에게 일임하며 윤자형은 단을 쌓아 하늘에 고하고 임진·병자 의병의 순국 정신을 본받아서 석인을 새겨 쓰고 장관(將官)들을 임면하며(인사권 부여), 장병과 백성을 위무하고 상벌을 엄정, 신속하게 하되 태만자, 비협력자, 백성의 권익을 침범하는 자는 바로 참수하며 아울러 특별한 공이 있는 자는 기록, 포상하고 사술(邪術)에 현혹되지 말고 주식(酒食)을 금하라 명령"하였습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이완용과 송병준이 고종에게 자결하라 겁박하며 퇴위당한 지 1년 만에 나라를 되찾고자 이명직 대감님을 통해 윤자형 장군님에게 내린 이 고종 조칙으로 인해 결국 고종과 이명직 대감은 각각 주거가 제한되고 이명직 대감은 종로 계동 자택에서 쫓겨나 동탄 석우리에 칩거하다 1915년 호랑이 사냥꾼으로 위장하여 숙식하던 일제에 독살당하였고 1919년 고종은 병사로 위장한 독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종황제 조칙이 발견된 후 성신여대 이현희 교수에 의해 공적 조서가 만들어져 윤자형 장군님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1996년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등재되었습니다. 

제 고조부 이명직 대감님에 대한 자료는 동탄 석우리에 보관되어 오다가 이명직 대감과 이철규 기수의 죽음 이후 머슴들에 의해 문서들이 불쏘시개로 사용되어 "불을 때도 때도 종이가 남아돌았다"고 했다는 이야기만 전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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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지운 김철수 선생님의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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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충0 00에 사는 윤00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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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떤글을 보다 지운선생님께서 우인송(友人頌) 이라는 시에 대한 말을 하시다 우유삼인(友有三人)은 누구 입니까 ? 
지운선생께서 말씀하시길 누군고 허니 윤자형이하고 박진순이하고 이봉수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감옥에서 고문으로 죽었다 살아나서 깨어보니 아버지와 형제보다 위 세분이 생각나시어 우인송이라는 시를 지으셨다고 하셨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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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선생님께서는 위 세분하고의 우정이 깊어 보이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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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위 세분중 윤자형 이라는 분이 독립운동가 윤자형(1868년) 이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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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형선생께서는 단군사상으로 민족정신을 일깨우시는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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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님도 , 의제 허백련 선생님도 그렇고 단군사상에 심취해 있으신것으로 미루어봐도 제가 찾는 윤자형 선생님이 맞을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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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형선생에 대한 지운선생님께서 가지고 게셨던 사진이나 혹 문집 아무 자료라도 있으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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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자료라도 좋습니다. 이런 자료가 있을까하고 문의 드립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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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뒷편에 잊혀진 독립운동가 자료를 찾으려니 정말 아주 작은 자료가 귀중하게 여겨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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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께 부탁드리고 찾다보니 그래도 아주 작은 성과가 나오네요. 최근에는 면암 최익현 선생님의 문하생일 가능성이 높다는 예산군역사연구소장님의 말씀에 조금씩 퍼즐이 맞추어 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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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형선생님의 자료는 뭐든지 찾아 보고 싶습니다. 이분 사진도 어딘가에 있을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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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장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꼭 사진한장 찾고 싶은게 제 소원인데 참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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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되는것인지 걱정도 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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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료라도 찾으실수 있으면 꼭 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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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0 00에서 윤 0 0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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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RE: 지운 김철수 선생님의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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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00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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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이 답변을 떨리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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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하신 윤자형(1868년) 장군님이 윤00 선생님과 어떤 관계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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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조부는 구한말 마지막 내장원경 겸 궁내부특진관으로 1907년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당할때까지 고종을 옆에서 모셨던 이명직 대감님입니다. 이명직 대감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https://ko.wikipedia.org/wiki/이명직_(문신))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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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https://ko.wikipedia.org/wiki/김철수_(1893년)) 선생님은 당시 제 고조부께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는 길은 선진문물과 학문을 배워오는 길이라며 유학을 독려할때 그 뜻에 감화되어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로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명직 대감님이 1915년 일제에 독살당한 소식을 듣고 독립투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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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문무를 겸비한 윤자신(자형)이라는 분이 고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내셨는데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될때 지리산애서 의병항쟁을 하셨다합니다. 고종황제가 강제퇴위되고 난뒤 윤자신(자형) 장군을 '가의대부의병대장겸삼남도육군대도독(嘉義大夫義兵隊長兼三南道陸軍大都督)'으로 임명하여 하늘에 제사권, 인사권, 상벌권을 주어 일제에 대항하려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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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칙 친서를 윤자형 장군에게 전달한 분이 바로 제 고조부셨다고 합니다. 그 일이 발각되어 이명직 대감님은 사시던 종로 계동에서 쫏겨나 동탄면 돌머루골에 가택연금되어 일제에 독살되던 1915년까지 사셨다고 합니다. 윤자형 장군님은 그일이 무산된후 원각교를 만들어 따르는 사람들을 민족종교로 규합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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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조부 이명직 대감님이 윤자형 장군님에게 전달했던 고종황제의 조칙문서는 소문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는데 후일 후손이 궤짝밑에 붙여져 있던걸 발견함에 따라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고종황제의 일제에 대한 무력저항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사본을 이곳에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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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1915년에 고종의 최측근인 제 고조부 이명직 대감을 독살시키고 이어 1919년 고종황제마저 독살시켰습니다. 그때 농상공부 금광국 기수였던 31살의 그분의 아드님이자 제 증조부인 이철규(http://blog.daum.net/enature/15854836)기수는 고종의 죽음의 진실을 밝키라고 젊은 관원들과 총독부앞에서 부복항의하다 용산에 주둔하던 일제기마헌병들에게 무자비하게 참살을 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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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제 조부님 (이성구, http://blog.daum.net/enature/15854835) 11살때였습니다. 혼자서 서울농대의 전신인 수원농림을 나와 만주국 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만주 농립국 미곡검사관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때, 김철수 선생님은 일제시절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를 오갈때 마다 만주에서 안전한 거처와 여비를 지원하셔서 후일 김철수 선생님이 임실의 민족지사며 동학도 보굉선생의 손녀와 제 아버님(http://blog.daum.net/enature/15854795)의 혼사를 주선하여 제가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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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로만 듣던 것들을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난뒤에 제가 조금씩 퍼즐을 맞추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분들이 살아계셨을때는 사회주의쪽 독립운동은 입을 닫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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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선생이나 제 조부 이성구 미곡검사관이나 제 부친 이성찬 선생 모두 이 하늘이 내렸던 인연 (김철수 선생을 유학하도록 인도하고 독립운동을 하게 했던 분이 독립운동의 도움을 받았던 이성구 미곡검사관이었는지 등을 말이지요)을 모르고 작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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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김철수 선생님의 우인송에 나오는 윤자형은 바로 '자신 윤자형 장군'이 맞습니다. 

이처럼 소식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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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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