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82_五.一八

2차진술서 - [이세종 열사 사망 사건에 대한 참고인 우편 2차진술서]

忍齋 黃薔 李相遠 2023. 10. 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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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선생님께서는 지난 번 회신해 주신 내용은 모두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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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제가 겪었던 당시 상황을 은미희 작가에게 설명해주었고 작가가 소설구성과 문장으로 작품화한 단편소설 '활착'의 일부입니다. 제 진술은 은미희 작가의 소설로 대신합니다. 소설속 내용은 한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내용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한 ‘문학들 2021. 여름 제64호’ 문학잡지에 ‘활착’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단편소설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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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이세종을 처음 목격한 장소(선생님의 지점과 이세종의 지점을 나누어서 표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는 어디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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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1980년 5월 18일 01:30경, 그날도 저는 늘 하던 대로 유인물을 인쇄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저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밖으로 나와 계단 쪽으로 향했습니다. 순간 2층 농성장에서 3층으로 올라오던 이세종 선배와 내 시선이 부딪쳤습니다. 순간, 뭐지? 무슨 소리지? 우리는 불안하게 눈으로 물었습니다. 불안은 이내 공포로 뒤바뀌었습니다. 도망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세종 선배와 나는 옥상으로 도망치려다 3층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잡혔습니다. 제가 이세종 선배를 마주한 지점은 계단 근처로 이세종 선배는 2층에서 3층으로 들어선 상태였습니다. 저는 등사실에서 나와 계단에 근접한 상태로 이세종 선배와의 거리는 불과 2~3미터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도망치는 이세종 선배를 멈추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곧 이어 3층으로 뛰어 오르던 3명의 공수부대원 중 2명은 이세종 선배에게 한명은 제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곳은 바로 3층과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근처로 보내주신 아래 사진속에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곳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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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종 열사가 금마 7공수에 살해된 장소
이세종 열사가 금마 7공수에 살해된 장소
이세종 열사가 금마 7공수에 살해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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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이세종이 신체의 어느 부위를 무엇으로 맞는 장면을 보았는지와 이세종의 반응을 나누어서 좀 더 자세히 표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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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당시 그 계엄군 3명은 단독군장에 한명은 착검한 M16총을 들고 있었고 2명은 박달나무로 만든 일반 곤봉보다 긴 곤봉을 들고 있었고 M16은 어깨에 메고 있었습니다. 이세종 선배는 제 눈앞에서 뒤쪽에 곤봉을 들고 있던 공수부대원과 앞쪽에 착검한 M16을 들고있던 공수부대원등 2명에게 곤봉으로 온몸을 사정없이 내리치며 군화발로 차였고 또 한명은 M16의 개머리판으로 “퍽” 소리가 나게 오른쪽 머리를 맞고는 비명소리도 없이 그 자리에서 꼭꾸라 졌습니다. “퍽”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맞은 이세종 선배는 아마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겁니다. 곤봉을 내리치던 공수부대원은 M16을 메고 있었고 M16의 개머리판으로 내리치던 공수부대원은 곤봉이 없었는지 착검한 M16을 휘둘러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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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선생님과 이세종은 동시에 각각 다른 계엄군으로부터 구타 폭행을 당하셨고 선생님은 2층 농성장으로 연행되셨는데 그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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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저를 때리던 다른 한명의 공수부대원은 M16을 메고 있어서 M16이 아니라 곤봉과 무자비한 군홧발로 저를 때리고 차고 하여, 전 다리 인대가 파열되고 피투성이가 된 채 포승줄에 묶였습니다. 그 와중에 3층 현장으로 올라온 공수부대 지휘관들의 지시에 의해 저는 2층 농성장으로 연행되지 않고 바로 학생회관 앞 잔디밭에 주차된 밀패된 군용무기차에 실려있었습니다. 그 군용무기차에는 저 말고도 3층 서클룸에서 검거된 다른 학생들도 몇 명 더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 군용무기차에 실렸던 다른 학생들을 수소문하여 찾으면 더 많은 기억을 모를수 있을겁니다. 군용무기차...... 그곳은 어두컴컴했고, 공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요. 마치 무덤 속 같았습니다. 그러다 경찰버스가 와서 그곳으로 옮겨져서 전주경찰서로 실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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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선생님이 폭행을 당할 때 이세종도 맞는 모습을 보셨고, 그 후 2층으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이세종을 본 모습을 나누어서 설명해 주십시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본 이세종의 모습도 같이 표현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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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이세종 선배가 폭행 당하는 모습은 제 눈앞에서 2명의 공수부대원에게 한명은 곤봉으로 그리고 또 한명은 M16의 개머리판으로 “퍽” 소리가 나게 머리를 맞고는 비명소리도 없이 그 자리에서 꼭꾸라 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때리던 다른 한명의 공수부대원은 M16을 메고 있어서 M16이 아니라 곤봉과 무자비한 군홧발로 저를 때리고 차고 하여, 전 다리 인대가 파열되고 피투성이가 된 채 포승줄에 묶였습니다. 제가 이세종 선배가 즉사했다고 판단한건 제가 포승줄에 묶여 잡혀갈 때 보니, 이세종 선배는 건딜지도 않고, 이세종 선배를 죽인 공수부대원들이 올라온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것 같았고 또 다른 지휘관 몇 명이 분주하게 3층에서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본 이세종 선배의 모습은 계단 앞에 미동도 없이 꼭구라져 있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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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계엄군은 학생들을 체포할 당시 많은 욕설을 했다는 여러 진술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기억나시는 그 때의 욕설을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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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저도 수많은 욕설을 들었습니다. 그중에 특히 기억나는 것은 “이 전라도 빨갱이 새끼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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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더 말씀하시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자유롭게 기재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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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1차 진술서에서 제가 은미희 작가님에게 진술했던 그분의 단편소설 “활착”을 인용하여 제 마음을 표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 부분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 뒤로 어땠냐구요? 어땠을 것 같습니까? 그들이 저를 배려해줬을까요? 먼저 이세종 선배의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그 선배가 5.18의 첫 희생자였습니다. 광주에서 희생자가 나오기 전, 이세종 선배가 죽었죠. 그날 전북대의 난입과 이세종 선배의 죽음은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의 전주곡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야차들이었고, 두억시니들이었고, 악마였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지요. 눈앞에서 방금까지 눈을 마주치고 온기를 나누던 선배의 죽음은 내 생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건 무척이나 두려운 일입니다. 제가 끌려간 곳은 전주경찰서, 인후공사 보안대, 전주 35사단 헌병대 유치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나를 협박하고 겁박하고 회유했습니다. 그들은 내게 종이 하나를 들이밀고는 적힌 그대로 외우고 자복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들이 작성한 조서였지요. 내용은 이랬습니다. 내가 김대중에게 50만원을 받고 학원소요를 일으키기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전라도 소재의 학교에 위장입학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상에 김대중에게 50만원을 받았다니요. 나는 한 번도 김대중을 만난 적이 없었고 당연히 돈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또 이세종 선배의 죽음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강요했습니다. 아예 기억자체를 지우라고 협박했습니다. 꽁트였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시키고,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라니요. 하지만 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제가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고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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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정의가 존재할까요? 제 삶을 그렇게 내놓았는데, 이세종 선배는 목숨을 바쳤는데, 제가 정의를 이야기하고, 그 날의 진실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지겨워합니다. 또야? 또 시작이야? 그만해. 제발 그만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지요. 그 피로 세상의 의를 이루시려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의와 선은 구현되었을까요? 이세종 선배가 목숨을 바쳤는데, 저 역시 피를 흘렸는데, 세상이 달라졌을까요? 제 삶은 이렇듯 송두리째 뽑히고 위태롭게 흔들리는데, 가해자는 죽을때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사과하면 받아줄 용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끝내 우리를 조롱하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용서의 성립은 가해자가 용서를 구했을 때만 성립이 됩니다. 그 악마들이 언제쯤이나 진정으로 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올까요.”
이상은 제가 임의로 진술한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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