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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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 2

'눈물의 왕'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과 노작의 외숙부 성우(性祐) 이명직(李命稙) 선생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에서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고 ‘토월회’와 신극 운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가며 사그라져 가는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던 민족시인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은 1900년 5월 17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였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홍철유(洪哲裕)이며,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홍사용은 생후 100일 만에 서울 ..

[성우(性祐) 이명직 선생과 노작 홍사용]

'눈물의 왕' 홍사용과 화성 “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에서 ● 《백조》 창간과 선비정신 ◀ 휘문의숙 시절의 홍사용 일제 식민치하, 나라가 있어도 내 나라가 아니었고 왕은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이러한 시국에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지조를 지키고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고고하게 외치며 민족혼을 일깨우던 시인.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고 ‘토월회’와 신극운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가며 사그라져 가는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던 민족시인 노작(露雀) 홍사용(1900∼1947). 홍사용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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