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반응형

장희진 3

한국기독교장로교 공로목사 장희진

1990년에 발간된 한신대학 50년사 106 페이지 제3편 수유리 캠퍼스 시절의 신장(1958-1980)에 "1957년 2월의 이회 실행위원회는 본관 건물의 설계와 시공책임자로서 본교 제1회 졸업생인 장희진 목사를 임명하였다."고 나옵니다. 한국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한국기독교장로교의 요람 한국신학대학의 본관신축을 서울 조선신학교 (한신대) 1회 졸업생인 장희진 목사님이 총책임을 맡아 캐나다 장로교단의 지원을 받아 건축했습니다..장희진 목사님은 1904년 7월 18일 함경북도 부령군 형제리에서 아버지 장윤식 선생과 어머니 이임칠 여사 사이에서 9남매중 다섯째로 출생하셨습니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만주 용정중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한 후 동생과 함께 만주를 오가며 무역업을 하였으나 적성에..

광주 시민 학살을 중단하고 군사 독재자가 아닌 한국을 지원하십시오. (STOP KILLING KWANGJU CITIZENS, SUPPORT KOREA NOT MILITARY DICTATOR.)

https://youtu.be/ZM19bGHE590 장주암과 지미 카터 .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장주암 선생님의 첫 번째 이야기 . 올초 버섯에 관심있는 하이킹 모임에 참석했다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거주하시는 한국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중 한분이 장주암 선생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공로목사였던 고 장희진 목사님의 자제분으로 형님 장소암 선생님과 더불어 북미주지역 민주화인사로 한국의 군사독재시절 한국의 민주세력을 물심양면 도와주셨던 분입니다. 기회되면 살아오신 여정을 인터뷰해보겠다고 부탁도 드렸습니다.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의 민주화인사 장주암 선생님의 첫 이야기는 1980년 5월 26일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에게 군부독재자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멈추게하고 지원을 중단하라는 전보를 보낸 이야기입니다. 그 전..

후암동 관북학사 신우학사, 캐나다 선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교

1950년 후암동 언덕에 캐나다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관북학사 초대사감을 한신대 3회 졸업생 난곡 조향록 (1920~2010) 목사가 맡아서 했었다. 김형숙 (1893~1961) 목사는 일제말기 함흥에서 캐나다 선교사들을 도와서 협력하셨던 분이고 또 일제말기 캐나다 선교사가 한국에서 일본인들에게 추방되어 간 이후 그 선교부의 모든 재산과 선교사들의 가재도구까지 책임져서 보관하고 지켜 주었던 분이다. 8·15해방이 된 이후 캐나다 선교사들이 북한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김목사도 고당 조만식 (1883~1950) 선생이 이끄셨던 조선민주당 함경남도 도당위원장까지 맡아 반공투쟁을 하다가 결국 남하하고 만 것이다. 서울에서 옛 친구들인 캐나다 선교사들을 맞아 이북에서 남하한 학생들을 도와주려고 캐나다 선교부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