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世) 1代孫 이인간 (李仁幹), 정조호장. 금석문 '경선사금구(景禪寺禁口)'에는 '고려국(高麗國) 용령(龍領) 대정(隊正) 이인간(李仁幹)이 동량(棟梁)이 되었다'고 나온다. 슬하에 장남 충진(忠進)과 차남 효진(孝進)을 두었다. 참고자료: 1. 국가의 눈을 피해 국경에서 일어나는 밀무역은 고려 전시대에 걸쳐 변경지대에서 성행되었다. 예를 들면, 1101년(숙종 6) 정주(定州)의 장금남(長今男)이 관가 창고에 있는 철갑옷 네 벌을 훔쳐서 동여진에 판 경우도 있고, 서북면병마사 이지명(李知命)은 용주(龍州) 창고에 있는 저포(紵布)로 거란사(契丹絲) 5백 속(束)을 교역하여 바치라는 왕명에 따라 국법을 어긴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당시 위로는 국왕에서부터 밑으로는 일반 백성까지 밀무역에 관여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