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1980년 5월… 당시 언론은 광주를 이렇게 평가했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5. 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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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당시 언론은 광주를 이렇게 평가했다


[데일리서프라이즈 박정민 기자] 올해로 27주년을 맞이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의 상처이자 시민들 스스로가 봉기해 ‘민주화’를 외쳤던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민중항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5·18민중항쟁에 대한 평가는 80년 5월 당시에도 그랬고 4반세기가 지난 지금(2007년)까지도 ‘민주화 운동’ vs ‘폭동’이라는 상이함을 보이고 있다.

2007년 5월, 5·18기념재단이 ‘5·18을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확연히 보여준다. 전국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1.9%가 5·18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34.2%는 ‘민중항쟁’으로 각각 답한 반면 10.2%는 ‘폭동’으로, 6.7%는 ‘사태’로 각각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폭동 10.2%, 사태 10.1%를 기록했던 지난해 말 조사와 비슷한 수치다.

이러한 상반된 인식은 1980년 5월 당시 언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당시 22, 23, 24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광주 관련 기사의 제목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광주 일원 소요사태’, ‘전남대생 시위 때 군경과 충돌하며 과격화… 무기고 습격’, ‘기관총-장갑차-실탄 등 다수 탈취’, ‘교통·통신 두절상태’, ‘간첩 용의자 3명, 시민이 잡아 인계’, ‘북괴도발대비’ 이와 같이 조선일보는 탈취, 간첩 등의 다소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의 제목들을 사용해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내용 또한 부정적이었다. 이러한 선정적인 제목을 사용한 것은 당시 우익언론으로 평가받던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전 대한매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2일자 서울신문에서는 ‘안보적 중대 사태’, ‘학생소요 조정, 민중봉기 기도’라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이어서 24일자 신문에서는 ‘북괴는 대남도발 말라’, ‘광주… 생필품 끊겨 시민들 큰 불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또한 ‘군용트럭 뺏어 타고…’라는 제목으로 학생들이 총기를 들고 트럭에 앉아있는 사진을 담기도 했다.

23, 24일자 경향신문의 제목도 위 두 신문과 비슷하다. ‘광주사태 극도로 악화’, ‘혼란 가중은 북괴만 이롭게 할 뿐’ 등의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달았다.

또한 경향신문은 ‘학생 시민 모두가 본연의 자세로’, ‘일부 폭도들이 탈취했던 중기관총 등 각종무기들을 자진반납하고 있다’ 등의 제목을 달아 신군부세력에 무력화되는 광주시민의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극혈분자와 일부폭도들이 탈취한 시내버스 등을 타고 중심가를 누비고 있다’는 사진을 통해서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기도 했다.

조선, 서울, 경향신문은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중립적인 입장에서 광주민중항쟁을 알리기보다는 신군부세력의 편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보도했다. 세 신문들은 공통적으로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지칭했고 ‘북괴 대남도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마치 학생들의 시위가 북한의 지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했다. 즉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군과 경찰에 대항해 혼란과 무질서를 조성하고 있다는 일방적인 논리만을 제시했다.

반면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5·18민중항쟁을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22, 23일자 동아일보 제목을 보면 이렇다.

‘광주데모사태 닷새째’, ‘인접시군 번져… 군경, 시민 사상자 발생’, ‘기관총, 수류탄, 장갑차 등 다수 탈취’, ‘광주 시외전화 불통, 교통두절’, ‘열차 이리(裡里, 현 익산)까지만 운행… 환불조치’, ‘시민대표 협상안’, ‘총기대량회수 일단 자제 기미’, ‘수습대책안 회의결과 지켜봐’, ‘헌혈운동 부상자 돕기 모금’, ‘대학생들도 중심가 오물청소’, ‘오열 광주 새 질서 찾기 진통.’

22, 23일자 한국일보의 기사제목은 ‘광주에 소요… 학생, 시민 18일부터’, ‘대책강구… 군경, 민간인 사망’, ‘광주사태 돌파구 기미’, ‘대표들이 총기회수 시작’ 등의 제목을 사용했다.

위의 기사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신군부의 입장에 서서 소위 ‘편파적인 보도’를 하지는 않았다. 물론 당시는 정부에 의해 언론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중립적 보도는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두 신문은 조선, 경향, 서울신문과는 달리 ‘폭도’나 ‘북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특히 23일자 한국일보의 ‘광주일원의 비극적 사태, 불사조민족의 화합정신 되찾아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은 “슬프다, 불안하다, 답답하다, 안타깝다”라는 말로 시작하며 광주민중항쟁을 ‘비극’이라고 표현해 눈길을 끈다.

이처럼 광주의 비극을 ‘민주화운동’ vs ‘폭동’으로 바라보는 언론의 상반된 시각은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게 진보진영의 중론이다.

한 현직기자는 “다만 5·18 당시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동아일보는 보수언론으로, ‘신군부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경향신문은 진보적으로 그 위치를 맞바꾸었을 따름”이라며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5월 18일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27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론의 자기반성’을 올해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정민 (jmp79@paran.com) 기자 if(document.getElementById("news_content") && txtSize){document.getElementById("news_content").style.fontSize=txtSize;} if( document.getElementById("status_info") ) { document.getElementById("status_info").inn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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