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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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시절 '가짜 이강석 사건'을 아십니까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2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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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시절 '가짜 이강석 사건'을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연일 학력 위조 파문이 일파만파로 꼬리를 물고 있다. 그 꼬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종잡을 수 없다. 산골 얼치기처사가 더 이상 팔짱 끼고 구경만 할 수 없어서 한 마디 쓴소리를 한다.

한 시인(장용철)은 이 시대를 '가짜시대'라고 풍자하고 있다.

가짜가 판을 친다.

가짜가 세상을 설치고 다닌다.

가짜가 진짜의 멱살을 잡고

가짜가 진짜에게 발길질을 하고

가짜가 진짜에게 각목을 휘두른다.

가짜가 헛기침을 하고

가짜가 먼저 악수를 청하고

가짜가 먼저 저녁을 산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오래 마이크를 잡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는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온통 가짜가 범람했다. 참기름도, 꿀도, 보석도, 화장품도, 골동품도, 그림도, 휘발유도…… 가짜 아닌 것이 없을 만큼 가짜천국이었다.

러시아의 극작가 고골리의 <검찰관>은 1820년대 제정 러시아 시대 지방관리들의 비리를 폭로한 통렬한 풍자극이다. 한 시골마을에 검찰관이 암행감찰을 나올 것이라는 편지가 도착한다.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관리들은 마침 도박으로 여비를 몽땅 날린 한 건달청년을 검찰관으로 오인해 뇌물을 바치고 온갖 향응을 베푼다. 이 청년은 주지사의 딸과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주지사와 관리들을 조롱하는 편지를 남기고 마을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가짜 이강석 사건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1957년 자유당 시대에 있었던 가짜 이강석(李康石) 사건이다. 1957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83세 생일에 맞추어 당시 국회의장 이기붕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하였다.

대구에 사는 강아무개라는 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져 집을 뛰쳐나와 서울 등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의 용모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1957년 8월 30일, 경주 경찰서장을 찾아가 "아버지의 명을 받고 경주 지방 수해 상황을 살펴보러 왔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 말에 깜짝 놀란 경주 경찰서장은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에게 "귀하신 몸이…"라고 말하며, 그 즉시로 그를 경주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극진히 모셨다. 그 다음날 서장은 그에게 경주 일대의 유적지 관광을 시켜 주면서 많은 선물을 주고 기념 촬영을 한 뒤 다음 행선지까지 자기 차를 빌려주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가짜 이강석은 그 차를 타고 영천으로 가서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영천 경찰서장의 환대를 받고, 그 경찰서 경무과장의 경호를 받으며 안동으로 갔다. 안동에서는 지방 유지들로부터 다시 융숭한 접대를 받고, 이들이 여비 및 수재의연금에 보태어 달라고 내어놓은 거금을 받은 후 의성을 거쳐 대구로 향했다.

가짜 이강석이 대구로 가는 동안 육군 모 사단장은 지프를 몰고 달려와 노상에서 이강석이 육사 생도로 있을 때, 자신이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있었다면서 그냥 가느냐고 하면서 인사를 청하기도 했다.

대구에서는 경북 경찰국 사찰과장이 칠곡까지 나와 안내를 했다. 그날 저녁 가짜 이강석은 도지사 관사에서 묵게 됐다. 그런데 경북 도지사는 아무래도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이강석과 동기 동창인 자기 아들을 내세워 얼굴을 확인한 결과, 이강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서울에 확인 전화를 한 뒤 경찰에 연락해서 그를 체포하여 그 사기극의 막이 내렸다. 이 사건으로 한때 '귀하신 몸'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부패한 사회는 가짜가 활개치기 마련

우리 사회의 학력 위조 뿌리는 매우 깊고 널리 퍼져있다. 그 진원지는 일부 사학에서 조장하기도 했다. 일부 사학은 문교부(교육부 전신)에서 허가된 정원보다 몇 배나 부정입학을 시켜 졸업장을 마구 남발하기도 했고, 어떤 사학은 강의는커녕 돈만 받고 졸업장을 팔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때 문교부가 학사고시를 시행하기도 했고 대학정원 등록제까지 시행하면서 법으로, 행정력으로 규제했으나 끈질기고 집요한 사학의 비리와 떡고물에 끝내 손들고 말았다.

온갖 비리가 판치는 부패한 사회는 가짜들이 활개치기 마련이다.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민족반역의 무리가 해방 후 갑자기 가짜 애국자로 둔갑하여 다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기에 치솟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혀를 깨문 이도, 월북을 한 이도 있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지도층 가운데는 가짜들의 찌꺼기가 많다. 자기가 대단한 애국자인 양 큰소리치다가 민족반역자 후손임이 탄로돼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직도 금배지를 달고 애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실이다.

요즘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일부 인사들을 두둔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쩌면 이들은 피라미에 불과하다. 가짜가 진짜인 양 권력을 잡고 금력까지 차지했던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현대사가 아닌가.

이왕에 불거진 학력위조 파문에 즈음하여, 아주 이 기회에 정치계 교육계 문화계 등 우리 사회 모든 기관과 단체에서는 시일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대대적인 학력 조회로 가짜들을 대청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사회에 가짜들이 발붙일 수 없는 명실상부한 정직하고 양심이 살아있는 선진사회로 발돋움한다면 이번 학력 위조 파문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전화위복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짜가 걸어간다.

가짜가 기도를 하고

가짜가 사랑을 하고

가짜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진짜보다도 배가 더 나온 가짜

진짜보다 화장이 더 진한 가짜

진짜보다 더 표준어를 구사하는 가짜.

- 장용철의 '가짜시대'


/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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