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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영희 시집 "즐거운 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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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정 없는 세상 ♣
詩 박 영 희
1980년 4월 그녀는 도주한 남편 대신 붙잡혀 사북탄광 광장에 세워졌다. 광장에는 수 백의 남자와 그들의 아내, 낮술 냄새를 풍기는 사내도 여럿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 여자의 젖꼭지를 잡아당겼다. 자궁에 담배를 집어넣는 남자도 있었고 연탄집게로 쑤셔대는 남자도 있었다. 술에 취한 어떤 사내는 여자의 거웃을 뽑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벌 받을 짓도 지은 죄도 없었다. 남편이 어용노조위원장일 뿐 그녀는 두 자식을 둔 어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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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물상을 지나다♣
저울눈금을 확인한 고물상 주인이 ㎏당 50원 하는 폐지를 부리다 리어카 밑바닥에서 젖은 라면상자 두 개를 발견하고는 이런 일이 벌써 한두 차례 아니라며 남은 이보다 빠지고 없는 이가 더 많은 노인을 다그치자 재생이 가능한 폐지를 주워온 노인네는 요 며칠 궂은 날씨를 탓하여 본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고물상에서는 눈물이 젖어도 폐지가 젖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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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시인
◇196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1985년 문학무크지 「민의」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으로 <조카의 하늘>, <해뜨는 검은 땅>, <팽이는 서고 싶다>가 있으며, 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 평전<김경숙>,르뽀집 <길에서 만난 세상>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등이 있다. 2007년 5월 시집 <즐거운 세탁> 을 애지에서 발간.
◇ 군영 생활을 하고 있던 1980년 어느 날, 내가 근무하는 군 사령부 헌병대 마당에 버스가 들어와 멎자 그 안에서 장화를 신은 성인 남녀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버스에서 내린 성인 남녀들은 장화를 신고 있었다. 군 감옥에선 법을 위반한 사람을 인솔할 땐 장화나 고무신을 신긴다. 그래야 쉽게 도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날 군 영창으로 끌려온 그들은 강원도 사북탄광에서 왔다. 전국으로 뉴스가 전해졌기 때문에 30대 이상의 사람은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군 헌병대까지 끌려온 내막은 대략 이렇다. 광산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노조가 노동자들의 문제를 사측에 알리고 해결하기를 바랐으나 노조위원장은 어용노조 활동으로 광산 노동자들의 불만을 넘어 결국 폭발하게 만든다. 검은 연탄을 캐는 탄광은 그야말로 인간 막장이라고 했다. 다년 간 일을 하고 나면 폐에 탄가루가 쌓여 진폐증을 앓다가 죽게 된다. 그래도 농업이 경제 중추적인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한 후에야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울이나 부산에서 점원이나 배달꾼으로라도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교적 돈벌이가 좋다는 탄광이나 배를 타는 것이었는데, 아니 먹고 사는 일이 그 뿐이었다. 그 시절 연료는 땔나무에서 연탄으로 바뀌는 중이라 연탄 장사가 호황일 때였다. 그때 그곳에선 언제 죽을지 모를 수백 미터 지하 막장에서 검은 탄가루를 마시며 탄을 캐는 광부들을 사용자들이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분노한 광부들이 일어서자 노조위원장은 도망가고 그의 부인이 죄도 없이 분노한 광부들에 의해 끌려나오게 된다. 분노한 사람들은 그 여인을 묶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짓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여인의 사타구니 털을 뽑는 사태까지 갔던 모양이다. 거기에 남자들 뿐 아니라 분노한 남자들의 부인도 합세를 했는데 군 헌병대에 끌려온 여자들이 그들이었다. 어찌 그때의 일을 짧은 글에 다 담을 수 있을까마는 박영희 시인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게 한다. 훗날 박영희 시인은 강원도 광산에 가서 일을 해 보았기 때문에 그곳의 역사를 쉽게 잊을 수 없었으리라.
한 나라의 역사는 부끄러웠건 비참했건 영광스럽건 간에 기록 되어야 하고 기억해야 하며, 선인들은 그 역사의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 고려의 영토를 북방으로 더 늘리지 못하고 반역으로 하여 조선으로 머물며 대국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를 하다 결국 일제에 짓밟힌 것이나,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다 해방이 되어 국군이 되었으나 빨갱이로 체포되었다가 가까스로 살아나 훗날 결국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뒤 유신정독재로 국민을 억압하던 박정희나, 여순사건이나, 6.25나, 4.19나, 군 병영을 이탈하여 지난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을 엄청나게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 일당들이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고 현재의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이 그 학살의 주범을 찾아가는 이 어처구니 없는 역사도 기록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선상에서 박영희의 시를 본다. 박영희 시집에 다른 좋은 작품이 실려 있긴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 많은 사용주들이 노동자를 자기들이 먹여 살린다는 의식의 노비나 노예의 인식을 버리지 않는 경우도 많지 않는가. 그래서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연봉 수천만 원의 대기업 노동자들도 많지만 늘 바닥에서 허덕이는 빈민 노동자는 더 많다. 대통령 선거가 눈앞인데 농민 노동자 대중을 생각한다는 대통령 후보들은 자기 정권욕에 사로잡히거나 여론의 지지가 없고, 반대로 무시무시했던 유신독재정권의 딸이나 그 정권하에서 건설경기의 호혜로 이름을 알리게 된 사람의 여론 지지는 높은 실정인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역사인식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생각들이 도대체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박영희 시인의 시를 읽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리하여 박영희 시인의 시 <고물상을 지나다>에 등장하는 노인 같은 처량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합하기를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이 되는가?
<2007. 9. 8 김기홍> <사진:당시 경찰과 광산노동자들이 대치했던 안경다리. 선율:The Last Note / Sdmuel Re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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