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3. Sciences/34_Hydrology

얼룩진 논문, 돋보인 반성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3. 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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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논문, 돋보인 반성 


영업사원은 실적으로 말하고, 정치인은 정책으로 말한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말한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무엇으로 말할까?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는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성과의 검증이다. 특히 실생활에 곧바로 사용할 수 없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가치에 대한 평가는 ‘논문’을 통해 이뤄진다. 다시 말해 과학자는 논문으로 말하는 셈이다.  

KAIST발(發) ‘논문 조작’ 

2004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발표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이 논문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권위있는 편집자들이 검토를 했음에도 게재 당시 밝혀내지 못할 정도로 치밀한 조작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만 개에 달하는 과학저널이 있다. 과학저널의 영향력은 ‘임팩트 팩터’(IF·피인용지수)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줄기세포와 관련된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발표되면, 이후 연구자들은 이 논문을 참조하는 경우가 많고, 논문이 참조될 때마다 인용지수는 올라가게 된다. 

전통과 인용지수 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과학저널로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을 들 수 있다. 이 세 개의 저널에 논문을 실는 것은 과학자들의 꿈이자 영광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대부분의 과학 성과 역시 논문을 통해서다. 논문이 없이 말로만 떠드는 성과는 일반인을 호도할 수는 있어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 과학계가 연구윤리와 관련된 교육을 실시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논문 작성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과학계는 끊임없는 자정노력을 펼쳐왔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이미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연구윤리를 달성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KAIST에서 터져나온 사건은 이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 KAIST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김태국 교수의 논문이 허위로작성됐다고 발표했다.
KAIST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위원회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생명공학과 김태국 교수가 2005년과 2006년 각각 사이언스지와 네이처 케미컬바이올로지에 게재한 ‘노화억제 신약 개발기술’ 관련 논문이 허위로 작성됐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가 2005년 당시 발표한 ‘매직기술’이란 살아 있는 세포 안에 자성을 띤 나노입자를 넣어 생체반응 과정을 추적하는 새로운 신약개발 기술의 영어 첫 글자를 따 붙인 이름이다. 연구팀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그 원리를 입증했으며, 2006년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 논문에선 이런 원리를 이용해 노화억제물질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매직기술’은 산업적 응용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기술로 평가를 받았고 과학계에서도 큰 기대를 모아왔다. 그러나 위원회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발표한 MAGIC 기술은 연구결과를 반복·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일부 실험결과는 심각한 조작과 변조가 이뤄졌다.”며 “2006년에 네이처지에 발표된 신약 후보물질 CGK733도 실험에 근거하지 않은 조작된 결과”라고 밝혔다.  

이같은 논문 조작이 세상에 공개된 배경에는 ‘특허’를 둘러싼 벤처기업의 내부갈등이 1차적인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KAIST측은 “김 교수가 2004년 벤처기업 CGK를 세웠고, 특허출원을 마쳤지만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부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CGK측이 논문 조작 의혹을 KAIST에 제보해 사태가 불거졌다.”고 밝혔다.  

‘치부 공개’ 감내한 KAIST 높이 평가할 만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소속 교수의 논문 조작에 대처하는 KAIST의 대응 태도다.  

KAIST측은 제보 이후 곧바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검토에 들어갔고, 2주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최종 결과가 아닌 중간 결과를 발표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특허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문제’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KAIST측의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KAIST 임용택 홍보국제처장은 “과학자를 판단하는 가장 우선적인 근거는 연구윤리여야 하고, 다른 부분보다 이 문제를 철저히 검증해야 된다.”면서 “논문의 잘잘못을 밝히는 것이 과학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밝혔다. 소속 교수의 잘못이 학교 이미지에 문제가 되는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대학의 자세라는 것이 임 처장의 설명이다.  

학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한국 과학계가 선진국에 비해 논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논문을 작성해 과학저널에 발표하는 것보다 언론을 통한 공개로 주목받기를 원하는 과학자가 많다는 얘기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서도 논문과 관련된 연구윤리는 끊임없는 이슈다. ‘네이처’는 지난 6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린다 버크 박사의 2001년 논문에 중대 결함이 있다며 논문을 취소했다.  

버크 박사가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이 논문이 일정 부분 그의 업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희대의 선례’로 남을 만한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은 ‘과학자와 논문’ 간의 관계는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끊임없는 유혹이 될 수 있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연구 환경과, 감시시스템이 있어도 악용하려는 사람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과학계에서 영원한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명성에 눈이 멀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최근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기준 과총 회장은 논문 표절과 조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학 시절 리포트를 베껴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특별한 가책 없이 반복하는 행동이 점차 커질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주장이다.  

과학 관련 게시판에는 논문과 관련된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젊은 과학도들의 분노에 찬 글이 넘쳐난다. 부디 이들이 이 같은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박건형 서울신문 미래생활부 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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