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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22_한국역사

1급 공무원은 ‘신의 은총’, 좋아서 ‘죽는 자리’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2. 2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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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공무원은 ‘신의 은총’, 좋아서 ‘죽는 자리’

한겨레 | 기사입력 2008.12.26 08:56 | 최종수정 2008.12.26 09:21


[한겨레] [뉴스 쏙]
공직자 98만명 중 선택받은 200여명
그래서 '신의 은총'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정권 바뀔 때마다 '영혼 없다' 핀잔 듣지만
맘먹으면 장관도 바보 만들 수 있는 이들
MB정권 칼날은 왜 1급을 향해 겨누어졌나


어흠, 저는 '1급'입니다. 1급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물로 치면 1급수는 가장 맑은 물이지요. 신체검사에서 1급을 받으면 가장 건강한 청년이란 뜻입니다. 운전면허도 1급을 따면 태울 수 있는 승객 수가 늡니다. 그런데 전 '1급 공무원'입니다. 그러니 오죽 좋은 자리겠습니까? 마을에서 힘 좀 쓴다는 면서기님들도 급수로 따지면 8급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서기님의 '위의 위의 위의 위의 위의 위의 위'에 있습니다. 까마득하죠. 그런데 요즘 우리 1급 사회에서 칼바람이 세게 붑니다. 제 이야기 좀 들어보실래요?

공직사회에서 1급까지 오르기는 정말 험난합니다.

6월 현재 행정·입법·사법부를 통틀어서 공무원은 모두 97만4830명, 쉽게 말해 100만명입니다. 이 중에서 1·2·3급을 포함한 고위공무원단의 수는 1193명입니다. 공무원 1000명 가운데 1명이 3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이라는 뜻이죠. 그 가운데 1급 공무원은 더욱 귀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행정부에는 '1급'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2006년 이래로 1~3급을 통틀어서 '고위공무원단'으로 관리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최근 언론에서 나오는 '1급 공무원 전원 사표' 등등의 뉴스에서 '1급'은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틀린 말입니다. 사람들이 아직 예전 개념에 익숙해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1~3급은 사라진 대신 고위공무원단은 가·나·다·라·마 등급으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과거 1급에 해당되는 가·나 등급 공무원의 수는 200여명 수준입니다. 그러니 1급은 4000~5000명 공무원 가운데 1명꼴입니다. 부처마다 비율은 다르지만, 행정고시를 합격한 '엘리트' 가운데에서도 1급까지 오르는 비율은 10명에 1~2명꼴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무원들은 '2급은 가문의 영광, 1급은 신의 은총'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합니다.

1급들은 명함이 다양합니다.

행정부처에서는 차관보나 기획관리실장 등 주로 '실장'이라는 직함을 많이 맡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한번 예로 들어 보죠. 유인촌 장관 밑에 차관이 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13개의 실·국이 있습니다. 차관 두 명이 13개의 실·국을 모두 관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1급인 기획조정실장, 문화콘텐츠산업실장, 종무실장이 많은 권한을 쥐고 역할을 맡게 됩니다. 또 본부 밖의 국립국어원, 해외홍보원, 국립도서관의 수장도 1급이 맡습니다. 그러니까, 문화체육관광부에는 6명의 1급 공무원이 장·차관과 일반 공무원들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함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보통 4급인 서기관이나 5급인 사무관들이 주로 하는 문서작업은 거의 안 합니다. 문서를 만들지 않고, 만든 문서에 서명을 합니다. 그나마 결재하는 서류도 별로 없습니다. 아주 중요하면 장차관까지 문서가 올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국장 선에서 끝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운동장만한 사무실에서 우아하게 난초나 키우는 사람들로 오해를 하시곤 합니다. 저희 역할은, 쉽게 말해 정책 외판원입니다. 부처가 세운 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하러 국회를 들락거려야 합니다. 조직 안에서는 정점에 이른 최고위 공무원이지만 국회와 청와대에 가서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문득 한 국회의원이 했다는 조금 저속한 농담이 떠오르네요. "국회의원은 비아그라를 먹으면 뻣뻣해진다. × 같은 놈들이니까. 그런데 공무원들은 비아그라를 먹으면 풀이 죽는다. 공무원들은 ×도 아니니까." 국회에 가면 행정부처 과장·국장은 국회의원을 독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랍니다. 그나마 기획조정실장 정도 되면 의원님들이 만나거나, 통화를 해줍니다. 그것도 목이 뻣뻣하지 않은 '너그러운' 의원님들 정도만요.

다른 부처와 협의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업무입니다. 특히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조직·인사권을 갖고 있는 행정안전부하고 협의할 때면 저희는 또 작아집니다. 그래서 다른 부서의 고시 동기 등과의 인적 연계가 아주 중요합니다.

청와대도 빼놓을 수 없죠. 사무관·서기관 시절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청와대가 어느 순간 코앞에 다가옵니다. 청와대와 국회, 다른 부처 사이에서 이해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것이 우리 몫입니다.

뒤집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는 '부처 이기주의'의 첨병일 수도 있습니다. 소속 부처의 밥줄을 위해서 교섭과 설득을 마다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지연·학연 등을 중요한 무기로 쓰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희가 부처를 떠나 산하단체장으로 가게 되면 조직 관리자가 됩니다. 또한 장차관을 보좌하면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정책컨설턴트'의 구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과장 때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지만 1급쯤 되면 장관과 '농담 따먹기' 하면서 조언을 할 수 있는 내공도 생깁니다.

우리 1급의 세계는 남성의 세계입니다.

2008년 행정안전통계연보를 보면, 행정부 1~3급 일반직 고위공무원단 885명 가운데 여성은 8명뿐입니다. 전체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이 42%인데, 고위공무원단 가운데 여성은 0.9%에 불과한 겁니다. 정현옥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장이나 장옥주 보건복지가족부 아동청소년복지실장 등이 그 드문 예입니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고위공무원단을 보면 34명 가운데 여성은 아예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1급의 세계는 고시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1급의 90% 이상이 행정고시 등 고시 출신입니다. 행정안전부의 비공식 자료를 보면, 고위공무원단 가운데 7급 출신은 80여명, 9급 출신은 50여명 수준입니다. 7급 주사보 출신으로 문화부 차관까지 올랐던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나, 마찬가지로 7급 출신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드물게 1급의 지위까지 올랐던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등은 그래서 '입지전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사실 장차관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외부 인사들이어서 터줏대감인 저희 1급의 목소리를 무시하진 못합니다. 끝없는 경쟁을 헤치고 공직의 정점까지 오른 우리의 입지는 사실 막강합니다. 특히 장관의 업무 장악력이 떨어질 때, 1급들이 뜻만 모으면 장관 한 명 바보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번 정부도 그런 위상 때문에 저희부터 손을 보려 한 모양입니다. 저희 1급 인사란 공직사회의 머리를 쳐내는 상징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저희도 압니다. 1급 인사가 공직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순기능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러나 수뇌부인 우리 1급을 납득할 수 없게 인사하면 공직사회의 사기도 그만큼 크게 저하된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화려한 1급들의 끝은 어디일까요?

1급 가운데 상당수는 옷을 벗으면 부처 산하 기관에 경영자로 갑니다. 1급 정도면 대부분 공직생활 25~30년을 거친 50대 중반쯤 됩니다. 그래서 얼추 60살까지는 봉급쟁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처마다 사정은 다르죠. 산하 기관이 많은 경제부처나 전국 방방곡곡에 대학들이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1급들이 갈 곳이 많지만 비경제부처는 갈 곳이 많지 않습니다.

1급 중에서도 아주 선택받은 극소수는 모두가 꿈꾸는 차관까지 올라서기도 합니다. 가끔 심하게 욕심부려 욕먹는 동료들도 많습니다. 공직 그만두고 바로 관련 업계에 취직해서 다시 로비하러 부처를 드나드는 경우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금융감독원 2급 이상 퇴직자 141명 가운데 83명이 금융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 밖에도 로펌이나 대기업에 들어가 로비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후배 공무원들의 눈총이 좀 따갑겠지만 말입니다.

뭐, 저희라고 애환이 없겠습니까.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을 청와대나 장관이 고집하면 속이 터집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은 몇 년 지나면 바뀌겠죠. 하지만 정책은 계속 남고, 부작용은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1급은 어디 가서 말도 못합니다. 과장은 국장한테 가서 하소연이라도 하지요. 실장쯤 되면 속으로 삭여야 합니다. 1급이 되면 또 국정원과 경찰, 언론의 시선이 늘 느껴집니다. 우리의 한마디가 그 다음날 기사에 나오니까요. 그래서 어디 가나 입조심, 행동조심입니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세요. 장관 지시를 몇번 못 들은 척하며 버티다가도 장관이 "김 실장, 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라고 하면 암담해집니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분명 영혼이 없어 보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청와대나 장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들이 없을 수는 없겠죠.

기업에 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무원 월급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자부심'으로 먹고사는 것은 장담합니다. 정권 바뀌고 세상 변해도 그 자부심 지키며 공직을 떠나기를 바라는 거, 그게 1급 모두의 바람입니다. 말이 길었죠. 이만 줄이겠습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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