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3. Sciences/34_Hydrology

<석면 공포> ①어쩌다 이 지경까지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1. 12. 13:31
반응형

<석면 공포> ①어쩌다 이 지경까지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9.01.12 11:32 | 최종수정 2009.01.12 11:39

 

 

국내 석면광산 71% 충남에 산재
당시 노동자 안전수칙조차 못들어
< ※편집자註 = '석면공포'가 몰아치고 있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 등 석면광산이 있었던 5개 마을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건강영향조사 결과, 집단으로 폐 질환이 발견되면서 석면피해가 이제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죽음의 섬유'로 불리는 석면은 일단 몸으로 들어가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폐암이나 악성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 따라서 석면피해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연합뉴스는 석면광산 인근 주민들이 석면피해를 보게 된 과정과 석면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마을과 주민들의 표정, 환경부와 충남도의 대책 등을 현지취재를 통해 4차례로 나눠 보도한다 >

(대전=연합뉴스) 이은파 기자 = "언론에 '석면질환' 보도가 나간 이후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불안해서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초조한 마음 때문인지 식사를 잘 못하는 주민들도 있습니다."

석면광산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폐 질환 집단발병 사실이 정부 조사로 확인된 이후 석면광산 피해 마을로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충남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 덕정마을 주민 정지열(66) 씨는 공포에 휩싸인 마을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10대 중반부터 먹고 살기 위해 석면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다는 홍성군 은하면 화봉리 정조훈(61) 씨도 "얼마전 병원으로부터 '재검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사망선고를 받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 연제구의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석면 관련 질환이 잇따라 발병한 데 이어 석면광산이 있었던 충남 5개 마을 주민들의 절반 가량이 폐 질환을 앓는 것으로 정부조사 결과 확인되면서 국내에 '석면공포'가 몰아치고 있다.

1995년 일본 열도를 석면공포로 몰아 넣었던 '구보타 파동'이 국내에서도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구보타 파동'은 석면을 원료로 건축자재를 만드는 회사인 일본 구보타사의 전.현직 직원 79명이 석면 관련 질병에 걸려 숨지고 공장 반경 1.5㎞ 내 주민 100여명이 중피종에 걸린 사실이 확인된 사건으로, 일본이 석면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특히 충남지역의 경우 국내 석면광산(21개)의 71.4%인 15개가 있었고, 이들 광산의 대부분이 얼마 전까지 운영됐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역주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홍성의료원 조사에서 2000년 이후 석면광산 주변 주민 41명이 폐질환 판정을 받아 3명이 폐암으로 숨진 것으로 드러나고 정부 조사에서 충남지역 석면광산 반경 4㎞ 토양에서 석면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초조는 헤아릴 수 없는 만큼 크다.

문제의 석면은 사문석 같은 돌에 들어 있는 섬유질의 광물로, 세계보건기구(WT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0.01㎜의 미세먼지 형태로 공중에 떠다니다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폐에 들어가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흡착해 있다가 10-30년의 잠복기를 거친 뒤 폐암이나 악성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 바로 석면의 이런 특성이 석면광산 인근 마을 주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충남지역에서 석면광산이 개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37년 전후.
일제는 1937년 중.일 전쟁을 전후로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석면광산 개발을 위한 조사에 나서 내포지역(충남 서북부)에 많은 양의 석면이 매장된 것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광산 개발에 나섰다.

환경부에 따르면 1945년 해방 전까지 충남 15개를 포함해 전국 21개 석면광산에서 채굴된 석면은 4천815t에 이른다.

석면광산은 해방 이후 채굴이 주춤하다 1970년대 경제개발로 석면사용이 증가하면서 생산활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해 1984년까지 연간 1만t이 생산됐다.

이번에 집단 폐 질환이 발견된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 석면광산은 한 때 1천여명의 광부가 근무했던 일제 강점기 아시아 최대의 석면광산으로, 1984년 폐광될 때까지 국내 백석면 생산량의 90%인 14만5천t을 생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당시 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석면광산 때문에 먹고 산다"는 말이 돌 정도로 석면광산에서 일하는 게 주민들의 생계유지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근로자들 대부분이 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석면을 채취하는 바람에 석면가루를 고스란히 마실 수 밖에 없었다는 게 당시 광부로 일했던 주민들의 설명이다.

작업을 할 때 어느 누구로부터 안전수칙은 물론 석면의 유해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중노동이었는 데도 건강검진은 커녕 변변한 몸 보신조차 하지 못했다.

작업 후 목에 쌓인 먼지를 씻는다고 돼지고기 몇점 사먹는 게 치료라면 치료였다.
마을 주민들도 석면가루가 집 앞까지 날아와 텃밭 농작물이나 장독대를 뿌옇게 덮쳐도 아무런 조치 없이 생활해야 했다. 그냥 작업장에서 발생한 '먼지'려니 생각했고 콧속으로 들어가도 위험한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석면광산이 지금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석면광산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집단 폐 질환 발병 사실이 정부 조차로 처음 확인된 데 이어 석면광산 인근 주민들의 상당수가 "가족들이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고 사망원인은 폐암 등 석면에 의한 폐 질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석면 관련 소송이 잇따를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조한용 한국석면환경협회 대전.충청본부장은 "일본에선 이미 석면피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특별법'이 제정돼 피해주민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다"며 "국내에서도 석면광산 및 인근 지역 뿐 아니라 석면공장과 석면사업장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고 '석면피해특별법'도 서둘러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sw21@yna.co.kr
(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