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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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초미니 정부/문화일보 [2009-04-09]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4. 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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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초미니 정부’

 

일본에 다녀왔다. 내가 아끼는 책 ‘바람의 노래’ 일본어 출판과 관련해 준비 없이 급하게 다녀온 길이었다. 목적지는 교토(京都)였는데, 오사카(大阪) 간사이공항까지 비행기로 한시간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시간반. 그 짧은 거리가 주는 감상이 참으로 복잡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 대한 얄궂은 부러움과 과거 역사에 대한 불편한 심정까지, 그 비행기 안에서 시·공간을 무시로 넘나들며 이날의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한데 내 좌석 옆 통로, 건너편에 앉은 3명의 미녀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들은 한국의 처녀들이었다. 첫눈에 감탄사가 나올 만큼 미모가 빼어났고, 키가 컸으며, 귀티가 흘렀다. 어디에 저런 미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들은 일본 여행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게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까. 공연한 오지랖이었고 쓸데없는 관심이었지만 마음 한편에서 삐죽이 솟아나는, 가시돋친 마뜩찮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한 지인이 그랬다. 오사카에는 밤의 꽃으로 살아가는 한국의 미녀가 많다고. 혹시 그들도 그러지 않나, 위험한 혐의가 덧씌워졌다. 예쁜 처녀들, 순결해야 할 이 나라 미래의 어머니들이 이역 땅, 어둠침침한 불빛 아래서 취흥을 돋우는 꽃으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내가 자꾸만 부끄럽고, 껄끄러웠던 이유는. 굳이 일본어 출판을 해야 할까, 회의가 든 것도 그때였다. 아무리 한국어가 소수 민족의 힘없는 언어라 하더라도 나는 그 언어를 쓰는 한 나라의 작가였다. 작가라는 직업이 어떤 직업이던가. 그 나라의 영혼과 정신을 지키는 일을 하지 않던가. 아무리 사람들이 외국어를 자국어처럼 사용하고, 모국어를 홀대한다 하더라도 작가는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유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말과 글은 그 나라의 영혼과 정신일 터. 그 영혼과 정신을 지켜내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고 본분이었다. 작가가 정신을 저버리는 날, 그 나라의 정체성과 존재는 위협받으리라.

일제 강점기에는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려고 한국어부터 없애고 한국말을 쓰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던가.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 어떤 바람에도 꿋꿋하게 자기를 지켜낼 수 있다. 나는 작가적 양심을 지켜야 했고, 한글을 올곧게 지켜야 했다. 작가가 모국어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는가. 비장한 책임감도 일었다. 굶어 죽더라도 비굴해지지는 말자. 내심 내게 주의를 주었다.

가난한 나라, 티베트를 함부로 하지 못함은 아직 티베트의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 인도에 세계인이 몰리는 것은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그들을 가난하다 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우리의 정신을 한글로 올곧게 지켜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그 어떤 상황에도 당당해지자, 내심 다짐했다. 하긴 한글로 쓰인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 그들 땅에서 재출간하는 일은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알리고 새로운 이해를 이끌어내는 좋은 기회일 터였다. 그 또한 값진 일일 것이다. 하지만, 왠지 이번 일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얼치기 애국자가 돼 있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한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니 섣불리 행동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나를 살리는 길이었고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이었다. 나는 지극히 작은 정부였고, 외교관이었다. 하긴 어디 그게 나뿐이겠는가. 그 미녀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처녀들이고, 오사카 시내에서 만났던 30대의 아이엄마 역시 초미니의 대한민국 정부인 것을.

제발, 좋은 일로든 궂은 일로든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내 마음 같았으면 좋겠다. 싫든 좋든,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국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조금만 조심한다면 한국인이 무례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자긍심과 자존감을 잃지 않고 예의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는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유념하기를.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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