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향기가 남는 결혼식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6. 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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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남는 결혼식
 


제주 한국전력 직원인 김세민씨와 박영옥씨 부부는 지난 4월 둘째 딸 결혼식을 치르면서 축의금 중 일부인 2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르며 절약한 돈으로 딸을 여의는 기쁨을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나누겠다는 뜻이다. 부인 박씨는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딸에게 축의금 일부를 좋은 일에 쓰자고 했더니 흔쾌히 찬성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엔 이런 기부가 심심찮게 들어온다.

▶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됐다가 막판에 탈락한 고산씨도 작년 12월 결혼하면서 하객들 앞에서 "축의금을 기부금으로 쓰겠다"고 해 진정한 축하 박수를 받았다. 그는 한 안과병원에 360만원을 시각장애인 개안수술비로 기부했다. 어느 커플은 결혼식장에 "축의금 1%는 저희와 여러분의 사랑을 담아 소중한 곳에 쓰겠습니다. 나누고 베풀며 예쁘게 살겠습니다"라는 안내판을 붙이기도 했다.


 

▶ 우리 결혼식은 '거품 하객'으로 넘치는 '수금 잔치'가 돼버린 지 오래다. 1999년 해금된 호텔 결혼식이 붐을 이루면서 결혼식은 나날이 호화로워지고 있다. 식장을 장식하는 꽃값만 1억원 가까이 들고 밥값은 1인당 7만~8만원이 예사다. "적어도 밥값은 내야 하지 않느냐"는 부담 때문에 10만원 미만 축의금은 내밀기도 민망스러워진다.

▶ 프랑스는 국가대리인인 시장·구청장이 주례를 서는 결혼식만 법적 효력을 인정한다. 대부분 시청·구청에서 하기 때문에 호텔이나 전문 예식장이 필요없다. 신랑 신부는 생필품 위주로 선물 리스트를 만들어 가게에 맡겨둔다. 그러면 하객들이 가게에 들러 자기 형편에 맞는 선물을 골라 사면 가게측이 신랑 신부에게 보내준다. 일본은 하객을 양가 친척이나 중매인들로 한정해 보통 50~60명만 초대한다. 참석자는 자기 몫 밥값 등을 감안해 축의금을 낸다.

▶ 우리 혼수(婚需)문화는 '혼수(昏睡)상태'라는 비아냥이 있다. 위로부터 호화 결혼식 풍조가 번지면서 서민 혼주(婚主)들 등이 휘고 덩달아 축의금도 치솟는다. 주머니가 가벼운 퇴직자들은 '부조금 도피 이민'이라도 가야겠다고 자조한다. 그래서 65세 넘으면 경조사비를 면제해줘야 한다는 처량한 우스개도 나온다. 치르고 나면 향기가 남는 결혼식이 있다. 예식은 소박하게 올리고 축의금을 떼어 기부하는 결혼식, 식장 주변이 하객들 차로 마비되고 혼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행렬이 수십m씩 늘어서는 결혼식. 둘 중 어느 것이 향기로운 결혼식인지는 자명하다.
                       

 

  •  - 김동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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