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
1966년 7월 영국 북동부 미들즈브러에서 열린 잉글랜드 월드컵 경기에서 북한이 이탈리아에 1대0으로 이기자 영국 신문은 "재앙, 승리, 드라마, 그리고 동화(童話)"라고 썼다. 후진 아시아 축구가 유럽 축구를 상대로 일궈낸, 축구사(史)에 남을 이변이었다. 평균 키 165㎝의 미니 군단이 서양 선수를 상대로 발빠른 축구를 하면서 3명이 차례로 엉덩이를 떠받친 '사다리 전법'으로 헤딩해 이겨내는 모습은 그림 같은 드라마였다.
▶ 북한 경기에 매료된 미들즈브러 시민들은 북한팀 숙소에 맥주통을 갖다 놓고 함께 축하했다. 시민 3000명은 북한이 리버풀에서 포르투갈과 치른 8강전에 원정 응원까지 갔다. 북한은 3대0으로 리드하다 후반에 체력이 달려 3대5로 역전패당했다. 축구계에선 경기 전날 북한 선수들이 '8강도 대단하다'며 들떠 리버풀 뒷골목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4강에 올랐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 당시 북한이 8강에 오른 데는 독특한 훈련법이 힘이 됐다. 재일교포 축구선수 출신인 체육과학연구소 이동규 축구연구사가 개발한 '통계학적 분석자료에 의한 원형도표법'이었다. 후방 선수가 전방이나 중앙의 동료들에게 패스할 때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공이 많이 가는 방향에 그물코처럼 선수들을 배치해 공이 빠질 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북한은 이렇게 패스 정확도를 높여 빠른 축구를 할 수 있었다.
▶ 그때부터 북한엔 축구 붐이 일어 성인 축구팀이 130개를 넘고 축구 꿈나무가 10만명에 이른다. 1980년대까지 아시아 강자였던 북한은 1990년대 경제난 속에 국제무대에 모습을 비치지 않으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4년엔 한국에 0대3으로 져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1990년대 말부터는 기지개를 펴 최근 옛 명성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해외파를 기르며 꾸준한 투자를 기울여 요즘엔 경기를 할수록 조직력이 살아나 전력이 세진다는 평을 듣는다.
▶ 북한 축구가 어제 사우디아라비아와 0대0으로 비기면서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우리도 예선 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 남·북한이 월드컵 본선에 동시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제 박지성이 이란전에서 동점 골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본선 진출 티켓은 이란 차지였다. 그럴 경우 북한은 한 장 남은 와일드카드를 놓고 험난한 경기를 더 치러야 했다. 북한이 월드컵 한(恨)을 푸는 데 한국이 단단히 한몫 한 셈이다. 내년 본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김홍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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