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6_北韓과中國

종중(宗中) 재산 남녀 균등분배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10. 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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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중(宗中) 재산 남녀 균등분배
 


13세기 고려 고종 때 1남1녀를 두고 처를 일찍 사별한 사람이 죽기 전 유서를 남겼다. "장성한 딸에게 전 재산을 주고 나이 어린 아들에겐 검은 옷과 관(冠) 한 벌, 짚신 한 켤레와 종이 한 권만 주라." 아들이 다 자라 재산을 나눠달라는 소송을 냈다. 경상도 안찰부사 손변은 "딸에게만 재산을 준 것은 동생을 성심껏 길러달라는 뜻이고, 누이가 훗날 재산을 나눠주지 않으면 관청에 갈 때 입는 검은 옷에 관을 쓰고 소송을 해 찾으라는 뜻일 것"이라며 남동생 몫을 주라고 판결했다.

▶조선 세종 때 사헌부 감찰 이효근의 아내 안씨가 오빠 안구경이 죽은 뒤 오빠 집에 찾아가 재산을 나눠달라고 요구하다 올케에게 맞고 쫓겨나 소송을 냈다. 오빠가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고도 여동생 몫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아들이든 딸이든, 결혼했든 안 했든 재산을 똑같이 나눠주는 자녀균분(子女均分) 상속이 법으로 보장됐다. 아들에게만 물려주는 중국의 중자(衆子) 상속, 일본의 장자(長子) 독점 상속과 달리 우리만의 제도였다.


▶18세기 중엽까지 출가한 딸을 포함한 모든 자식들이 남녀 구분없이 돌아가며 집안 모든 제사를 받드는 제사윤행(祭祀輪行) 관습이 있었다. 재산을 나눠주면서 봉(奉)제사 의무도 함께 지운 것이다. 그 뒤로 유교 윤리가 강화되면서 제사와 상속에서 맏아들을 중시하게 됐고 여성의 재산 상속상 지위는 크게 축소됐다. 불평등은 계속 이어져 1990년대에야 아들딸 구별없는 균분 상속이 법에 정해졌다.

▶그럼에도 종중(宗中) 여성의 권리는 실질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2005년 대법에서 여성도 종중 회원이 될 수 있다는 '딸들의 반란' 판결이 나왔지만 재산분배에선 차별이 계속됐다. 남성 회원보다 적게 나눠받은 여성 회원들 소송이 그간 네 차례나 있었다. 법원은 그때마다 "여성 회원에게도 분배는 해야 하지만 다른 집안으로 출가한 여성 회원에게 차등 지급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수원지법이 어제 정반대 판결을 했다. 성주 이씨 한 분파 종친회의 여성 회원 71명이 낸 소송에서 "여성 회원에게 남성 회원의 40%만 종중 재산을 분배한 것은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획기적 판결이지만 2·3심에서 그대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딸들의 반란이 계속 성과를 거두며 가족제도에 마지막 남은 차별까지 없앨지, 계속 밀리기만 해온 유교적 가치가 더 버틸지 지켜볼 일이다.


                     

  •  - 김홍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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