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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평생을 함께 한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
KISTI의 과학향기
2009년 08월 25일
1920년대 미국 코넬대 인근 어느 미장원에서 미용사와 “긴 머리가 좋으냐, 짧은 머리가 좋으냐”를 놓고 장시간 철학적 토론을 나눈 끝에 자기 머리를 바짝 올려 짧게 깎아달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다음날 교정은 발칵 뒤집어 졌다. “여자 머리가 저게 무슨 꼴이냐”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고 난리가 났다.
게다가 다른 여학생들은 모두 치렁치렁한 긴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농과대학에 다니던 그 여학생만은 야외실습 때 치마를 바지로 수선해 고쳐 입고 다녔다. 옥수수 밭에서 일할 때마다 긴 치마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여학생이 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바라 매클린톡이다.
매클린톡은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조금 앞서서 했을 뿐인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마치 그녀가 과학계에서 이룩한 업적에 대한 주변 과학자들의 냉담한 반응과 비슷했다. 왜 그녀의 이야기는 한동안 무시 받고 미친 소리로까지 취급받은 것일까?
1960년대 말까지 과학자들 사이에는 유전자가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열쇠라는 점에 모두들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의 배열 방식에 대해 그녀와 대다수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옥수수 세포 속 유전자 가운데 원래 자리를 이탈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튀는 유전자(jumping genes)’를 발견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차곡차곡 쌓인 벽돌처럼 늘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믿었다. 생명체의 정보는 언제나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흘러가므로 DNA에서 비롯된 정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정된 자리를 지키던 유전자가 갑자기 대열을 이탈해 다른 자리로, 심지어 개별 염색체들 사이로 이리저리 옮겨간다는 매클린톡의 주장은 상식 밖의 발상이었다. 더욱이 매클린톡은 이런 유전자를 스위치에 비교해 다른 유전자의 활동을 끄고 켠다고 설명했다. 유전자를 끄고 켜는 조정능력 때문에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1951년 매클린톡은 유전학 심포지엄에서 자신이 발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참석자들은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를 밝히면서 유전정보는 DNA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된다는 중앙통제론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그녀의 연구 성과는 계속 폄하될 수밖에 없었다.
매클린톡은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매우 놀랐고 크게 실망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을 포기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도달한 결론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이 분야의 해박한 지식이 필요했지만 옥수수 유전학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면서 관련 연구자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매클린톡은 ‘생명의 느낌’에 충실한 과학자로서, 평생을 옥수수 유전연구에만 몰두했다. “싹이 나올 때부터 그 식물을 바라보잖아요? 그러면 나는 그걸 혼자 버려두고 싶지가 않았어요. 싹이 나서 자라는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해야만 나는 정말로 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밭에다 심은 옥수수는 모두 그랬어요. 정말로 친밀하고 지극한 감정이 생겼어요. 식물들과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는 게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지요.”
그 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박테리아의 게놈에서 일부 유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이 별난 유전자의 활동은 틀림없이 매클린톡이 관찰한 유전자의 조정능력을 암시했다. 기존의 중앙통제론으로 복잡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동물에서도 유전자의 일부가 옮겨 다니는 현상이 관측됐다. 쥐의 혈액 가운데 항체를 만드는 DNA는 무수히 다양한 형식으로 유전자가 재배열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항체의 생김새가 다양한 까닭은 유전자의 무한한 재배열 덕분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암의 발생도 염색체의 구조가 바뀐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체의 면역계가 수많은 종류의 항체를 만드는 것도 유전자가 뒤섞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각종 질병 치료에 매클린톡이 발견한 튀는 유전자 개념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어느덧 황당한 여자가 꾸며낸 헛소리로 치부되던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이론으로 정립됐다. 점차 매클린톡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은둔자로서의 그녀의 삶은 깨지기 시작했다.
1978년 미국 브랜다이스대는 “매우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매클린톡 박사는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인정을 받거나 명예를 얻은 적이 없었다”며 그녀에게 로젠스틸상을 수여했다. 또 1979년에는 미국 록펠러대와 하버드대에서 각각 그녀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헌정했다.
마침내 1983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그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바바라 매클린톡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방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노벨상 역사상 여성 단독 수상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의 연구실에는 전화벨이 하루 종일 울렸다. 하지만 그녀는 라디오를 끄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책을 하며 떨어져 있는 호두열매를 주웠다.
오히려 유명인사가 되는 바람에 차분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속상해 했다는 매클린톡은 노벨상 수상식에서도 그녀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평소 입었던 푸른 작업복과 낡은 구두차림으로 들어섰던 것. 평생 독신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여든 한 살의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준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거든요.”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게다가 다른 여학생들은 모두 치렁치렁한 긴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농과대학에 다니던 그 여학생만은 야외실습 때 치마를 바지로 수선해 고쳐 입고 다녔다. 옥수수 밭에서 일할 때마다 긴 치마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여학생이 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바라 매클린톡이다.
매클린톡은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조금 앞서서 했을 뿐인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마치 그녀가 과학계에서 이룩한 업적에 대한 주변 과학자들의 냉담한 반응과 비슷했다. 왜 그녀의 이야기는 한동안 무시 받고 미친 소리로까지 취급받은 것일까?
1960년대 말까지 과학자들 사이에는 유전자가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열쇠라는 점에 모두들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의 배열 방식에 대해 그녀와 대다수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옥수수 세포 속 유전자 가운데 원래 자리를 이탈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튀는 유전자(jumping genes)’를 발견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차곡차곡 쌓인 벽돌처럼 늘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믿었다. 생명체의 정보는 언제나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흘러가므로 DNA에서 비롯된 정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정된 자리를 지키던 유전자가 갑자기 대열을 이탈해 다른 자리로, 심지어 개별 염색체들 사이로 이리저리 옮겨간다는 매클린톡의 주장은 상식 밖의 발상이었다. 더욱이 매클린톡은 이런 유전자를 스위치에 비교해 다른 유전자의 활동을 끄고 켠다고 설명했다. 유전자를 끄고 켜는 조정능력 때문에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1951년 매클린톡은 유전학 심포지엄에서 자신이 발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참석자들은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를 밝히면서 유전정보는 DNA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된다는 중앙통제론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그녀의 연구 성과는 계속 폄하될 수밖에 없었다.
매클린톡은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매우 놀랐고 크게 실망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을 포기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도달한 결론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이 분야의 해박한 지식이 필요했지만 옥수수 유전학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면서 관련 연구자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매클린톡은 ‘생명의 느낌’에 충실한 과학자로서, 평생을 옥수수 유전연구에만 몰두했다. “싹이 나올 때부터 그 식물을 바라보잖아요? 그러면 나는 그걸 혼자 버려두고 싶지가 않았어요. 싹이 나서 자라는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해야만 나는 정말로 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밭에다 심은 옥수수는 모두 그랬어요. 정말로 친밀하고 지극한 감정이 생겼어요. 식물들과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는 게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지요.”
바바라 맥클린 톡 |
동물에서도 유전자의 일부가 옮겨 다니는 현상이 관측됐다. 쥐의 혈액 가운데 항체를 만드는 DNA는 무수히 다양한 형식으로 유전자가 재배열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항체의 생김새가 다양한 까닭은 유전자의 무한한 재배열 덕분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암의 발생도 염색체의 구조가 바뀐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체의 면역계가 수많은 종류의 항체를 만드는 것도 유전자가 뒤섞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각종 질병 치료에 매클린톡이 발견한 튀는 유전자 개념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어느덧 황당한 여자가 꾸며낸 헛소리로 치부되던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이론으로 정립됐다. 점차 매클린톡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은둔자로서의 그녀의 삶은 깨지기 시작했다.
1978년 미국 브랜다이스대는 “매우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매클린톡 박사는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인정을 받거나 명예를 얻은 적이 없었다”며 그녀에게 로젠스틸상을 수여했다. 또 1979년에는 미국 록펠러대와 하버드대에서 각각 그녀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헌정했다.
마침내 1983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그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바바라 매클린톡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방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노벨상 역사상 여성 단독 수상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의 연구실에는 전화벨이 하루 종일 울렸다. 하지만 그녀는 라디오를 끄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책을 하며 떨어져 있는 호두열매를 주웠다.
오히려 유명인사가 되는 바람에 차분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속상해 했다는 매클린톡은 노벨상 수상식에서도 그녀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평소 입었던 푸른 작업복과 낡은 구두차림으로 들어섰던 것. 평생 독신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여든 한 살의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준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거든요.”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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