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대학들이 앞선 까닭
홍콩과기대에서 15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김장교(공대 부학장) 교수는 이번 주 내내 한국에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을 돌면서 한국의 우수한 박사과정 학생들을 유치해 오는 것이 그의 임무다. 한국을 다녀온 뒤에는 이란과 터키, 이집트까지 출장을 가 현지 학생들에게 홍보 활동을 할 예정이다.
이번 주에는 홍콩대와 홍콩중문대, 홍콩시립대, 폴리테크대 등 7개 대학교의 외국인 장학생 유치팀이 각각 인도, 싱가포르,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8개 나라로 날아가 김 교수와 똑같은 홍보활동을 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대학장학금위원회(UGC)'의 장학금은 조건이 좋다. UGC의 박사과정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앞으로 3년 동안 매년 24만 홍콩달러(3840만원)의 장학금과 1만 홍콩달러의 여행경비 등을 지원받는다. UGC는 이를 포함해 각종 경비까지 합해 학생 1인당 연간 35만7000홍콩달러(약 5700만원)씩 지원할 계획이다.
롤랜드 친(Chin) UGC 위원장은 "벌써 각 대학 홈페이지 등을 통해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에서 7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지원했다"면서 "연말까지 각국 지원자들을 더 접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UGC 장학금의 출처는 홍콩 정부다. 홍콩 정부는 몇 년간 아껴 쓰고 남은 예산과 별도 예산을 보태 지난해 UGC에 180억 홍콩달러(약 2조8800억원)의 '연구기증기금'을 내놨다. UGC와 각 대학은 이 기금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첫 장학생들을 선발하러 이번 주에 각국을 도는 것이다.
이번에도 UGC는 홍콩과 중국 본토 출신들을 배제하고 제3국 출신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뽑을 계획이다. 홍콩에서는 이 같은 외국 학생 우대 정책 때문에 올 봄에도 시끄러웠다.
홍콩의 8개 대학의 '연구대학원생' 5800여명은 사실상 전원이 홍콩 정부의 장학생들인 셈이다. 대학측은 이들의 교육비로 1인당 연간 51만 홍콩달러(약 8160만원)를 쓴다. 하지만 학생들은 연간 4만 홍콩달러만 낸다. 그럼 90% 이상의 차액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홍콩 정부의 연구대학원생 지원금 20억 홍콩달러(약 3200억원)와 각종 장학금이다.
그런데 홍콩의 야당의원들은 지난 5월 "연간 교육비의 대부분을 지원받는 연구대학원생의 55%가 비(非)홍콩 출신"이란 사실을 공개하고, "교육당국은 홍콩 출신 비율을 더 늘리라"고 요구했다. 왜 홍콩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그렇게나 많은 외국 학생들을 도와주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홍콩의 대학들이 세계수준이 되려면 비홍콩 학생들, 특히 중국 이외의 제3국 출신 학생들을 더 많이 유치해야 한다. 그들도 미래 홍콩의 재산이다"라고 답변했다.
지난 5월 조선일보와 세계적인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의 아시아 대학 경쟁력 조사에서 홍콩대와 홍콩중문대, 홍콩과기대는 차례로 1·2·4위를 차지했다. 일본의 도쿄대가 3위, 한국의 카이스트가 7위, 중국의 베이징대가 10위로 각국의 선두였다. 이처럼 인구 700만에 불과한 도시 국가 홍콩의 대학들이 한·중·일 대학들을 앞선 이유는 ▲영어 수업 ▲외국인 교수와 학생 비율 ▲중국과 세계의 연결 통로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 중 '홍콩 정부'도 빼놓을 수 없다.
홍콩 정부는 1991년 홍콩과기대를 만들 때에도 수년간 아낀 예산으로 이 학교 건립 비용 대부분을 댔고, 불과 18년 만에 아시아 4위의 대학으로 키웠다. 매년 가을마다 추경 예산까지 편성하면서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한국 정부와 일관성 없는 교육 당국은 정말로 홍콩을 배워야 한다.
- 이항수·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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