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군대 가라고 하기엔…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9. 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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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라고 하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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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따라 터진 병역 비리가 또다시 세상을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 멀쩡한 어깨에 칼을 대거나, 상태가 중한 환자의 진단서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피하려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걸린 것이다. 터졌다 하면 '빅 뉴스'가 되는 게 병역비리 사건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부유층 자제가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구마처럼 무더기로 달려나오기 때문에 그 사회적 파장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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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병역 비리사건은 조금 달랐다. 하나는 몸이 아픈 걸 내세워 돈을 받고 자신의 병력(病歷)을 빌려준 환자와 환자로 가장해서라도 군대를 피하려 했던 한심한 청춘들이 얽혀 있다. 다른 하나는 '어깨수술'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초 경찰이 '병역비리'에 칼을 대겠다고 달려든 게 아니었다. 교통사고 보험사기 사건을 조사하던 중 한 병원에서 어깨탈구 수술을 받은 환자가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4∼5등급 판정을 받아 병역 감면 또는 면제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선 아직 연예 스타나 사회지도층 아들이 나오진 않았다. 뉴스로선 비중이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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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로 그런 점들이 이 사건이 갖는 심각성일지도 모른다. 몰염치하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일부 특수층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에 사는 "평범한 청년들" 사이에 병역기피증이 만연해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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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제로 인터넷을 뒤져보니 '입영연기·군대면제'와 관련한 안내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인터넷 카페의 경우 그 회원 수만 7만8000여명에 달했다. "정말 군대 가기 싫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유학을 가야 합니다. 병역문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면 순식간에 답장이 날아온다. 이번에 적발된 브로커들도 이런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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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답한 것은 사회 지도층이 군 입대나 신체검사를 앞둔 청년들에게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거든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하라"고 떳떳하게 충고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바로 전(前) 정권의 국군통수권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년씩 썩히지 말고…"라고 말한 적 있다. 또 고위공직자 '청문회 계절'이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병역기피 의혹이 단골메뉴가 되다시피 했다. 군대 안 가려고 미국시민권을 받은 뒤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는 틀려먹었다"고 들쑤시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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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2005년부터 올 8월 말까지 징병검사에서 병역면제 또는 보충역 판정을 받고도 재신검을 받고 현역으로 자원입대한 '바른 청년'들이 3224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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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973년 당시 정부는 입영 및 소집기피자에 대한 처벌을 '3년 이하의 징역'에서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강화했다. 병역기피자를 고용한 사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1970년에 3만4004명으로 전체 징병대상자의 13.2%였던 병역기피자가 1973년 3월 이후 0.3%(902명), 1974년 0.1%(234명)로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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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역비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병무청이 진료기록부조차 제대로 조회할 수 없는 지금의 시스템도 손볼 필요가 있다.

  • 어느 사이 병역기피자를 용납하는 듯한 우리 사회 분위기도 바꿔야 한다. 병역기피자들이 정치를 하고, 사회 정의를 외치고, 연예계 스타가 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병역비리라는 '독버섯'이 또다시 스멀스멀 피어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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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정훈·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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