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라고 하기엔…
잇따라 터진 병역 비리가 또다시 세상을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 멀쩡한 어깨에 칼을 대거나, 상태가 중한 환자의 진단서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피하려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걸린 것이다. 터졌다 하면 '빅 뉴스'가 되는 게 병역비리 사건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부유층 자제가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구마처럼 무더기로 달려나오기 때문에 그 사회적 파장은 엄청나다.
이번 병역 비리사건은 조금 달랐다. 하나는 몸이 아픈 걸 내세워 돈을 받고 자신의 병력(病歷)을 빌려준 환자와 환자로 가장해서라도 군대를 피하려 했던 한심한 청춘들이 얽혀 있다. 다른 하나는 '어깨수술'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초 경찰이 '병역비리'에 칼을 대겠다고 달려든 게 아니었다. 교통사고 보험사기 사건을 조사하던 중 한 병원에서 어깨탈구 수술을 받은 환자가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4∼5등급 판정을 받아 병역 감면 또는 면제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선 아직 연예 스타나 사회지도층 아들이 나오진 않았다. 뉴스로선 비중이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로 그런 점들이 이 사건이 갖는 심각성일지도 모른다. 몰염치하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일부 특수층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에 사는 "평범한 청년들" 사이에 병역기피증이 만연해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뒤져보니 '입영연기·군대면제'와 관련한 안내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인터넷 카페의 경우 그 회원 수만 7만8000여명에 달했다. "정말 군대 가기 싫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유학을 가야 합니다. 병역문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면 순식간에 답장이 날아온다. 이번에 적발된 브로커들도 이런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접근했다.
답답한 것은 사회 지도층이 군 입대나 신체검사를 앞둔 청년들에게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거든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하라"고 떳떳하게 충고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바로 전(前) 정권의 국군통수권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년씩 썩히지 말고…"라고 말한 적 있다. 또 고위공직자 '청문회 계절'이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병역기피 의혹이 단골메뉴가 되다시피 했다. 군대 안 가려고 미국시민권을 받은 뒤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는 틀려먹었다"고 들쑤시는 이들도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2005년부터 올 8월 말까지 징병검사에서 병역면제 또는 보충역 판정을 받고도 재신검을 받고 현역으로 자원입대한 '바른 청년'들이 3224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73년 당시 정부는 입영 및 소집기피자에 대한 처벌을 '3년 이하의 징역'에서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강화했다. 병역기피자를 고용한 사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1970년에 3만4004명으로 전체 징병대상자의 13.2%였던 병역기피자가 1973년 3월 이후 0.3%(902명), 1974년 0.1%(234명)로 줄어든 것이다.
병역비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병무청이 진료기록부조차 제대로 조회할 수 없는 지금의 시스템도 손볼 필요가 있다.
어느 사이 병역기피자를 용납하는 듯한 우리 사회 분위기도 바꿔야 한다. 병역기피자들이 정치를 하고, 사회 정의를 외치고, 연예계 스타가 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병역비리라는 '독버섯'이 또다시 스멀스멀 피어날 게 뻔하다.
- 조정훈·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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