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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22_한국역사

아파트 제국주의 필패론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10. 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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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제국주의 필패론
 


서울 곳곳에서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멀쩡한 주택들이 헐려나가고 있다. 1970~80년대 재개발만 해도 어느 정도의 필요성과 명분이 있었다. 화장실과 수도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판잣집으로 이뤄진 달동네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뉴타운'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은 아파트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멀쩡한 동네와 주택을 헐어내고 있다. 전체 주택공급의 80%가 아파트여서 외국인들로부터 '아파트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이젠 그것도 부족한 모양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주택을 아파트 일색으로 바꾸려는 '아파트 제국주의(帝國主義)'를 추구하는 듯하다.

 

대규모 재개발의 부작용은 너무 많다. 한꺼번에 수백 가구 수천 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를 일시에 헐어내다 보니 전세난, 집값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록 개발 과정은 부작용이 있지만, 아파트가 완공되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도 허상이다. 중대형 위주로 재개발되다 보니 오히려 주택 수는 줄어든다. 또 초고층으로 짓다 보니 공사비가 비싸져 아무리 많이 지어도 서민들과 젊은 층의 주거지 역할을 했던 저렴한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대신할 수 없다.

 

재개발 아파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시대도 지났다. 오히려 거액의 공사비를 부담하면서 자신이 살던 집보다 더 좁은 새 아파트로 이주해야 하는 경우도 상당수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개발된다는 것이다. "멀쩡한 내 집을 왜 헐어내느냐"는 소송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정비율 이상 주민이 동의하면, 반대해도 소용이 없다.

 

지주들이 양모생산을 늘리기 위해 소작농을 내쫓고 농지를 양 사육지로 바꾼 산업화 초기 영국의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수익성 높은 양모를 얻겠다는 지주들의 욕심으로 농촌에서 추방된 농민들의 처지를 동정한 토머스 모어는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비판했다. 21세기 한국은 모든 주택을 아파트로 만들겠다는 식의 황당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도시를 온통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아파트에 집착하는 것은 아파트는 경제성장의 상징이고, 초고층아파트가 한국을 알리는 랜드마크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다. 몇 년 전에 체코를 여행하다 시골에서 대규모 아파트촌을 만나 깜짝 놀란 적이 있다. 1960~70년대 사회주의 발전을 자랑하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촌을 지었다고 한다. 체코뿐만 아니라 옛소련과 북한도 대규모 아파트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이 아파트들은 낡고 쇠락한 사회주의의 상징물일 뿐이다.

 

정부가 중점정책으로 내세우는 디자인·관광도시라는 명분에도 역행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스페인 빌바오, 일본 요코하마와 같은 도시 어디도 아파트를 짓겠다고 도시를 대규모로 밀어내는 재개발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낡고 허름한 주택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을 잘 보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재개발을 하더라도 대규모로 철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건물의 외관을 보존하면서 개보수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아파트 재개발은 한국 사회 최대의 화두로 등장한 고령화 대책에도 부정적이다. 일본의 경우,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노인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 동네에 수십년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웃사촌이 되고 홀로 사는 노인들이 서로를 돌보는 복지공동체를 형성한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 노인들에게 동네만 한 복지시설이 없다고 평가하지만, 우리는 동네 공동체를 강제 해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재개발을 무조건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한 동네를 몽땅 불도저로 밀어붙이는 식의 사업방식에 대해 더 늦기 전에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 차학봉·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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