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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5·18진압명령 맞서다 정신질환” 유공자 인정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12. 1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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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압명령 맞서다 정신질환” 유공자 인정

한겨레 | 입력 2009.12.12 09:20

 

[한겨레] 대법 "정통성 없는 공권력 저항 정당" 판결…당시 진압군 김동관씨 승소

 

 

 

 

1980년 5월 광주. 제3공수특전여단 소속으로 투입된 김동관(51)씨는 '폭도'라고 이름 붙은 시민들과 맞섰다. 발포명령이 떨어졌다. 전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하나둘 쓰러질 때 그는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꼈다. 총을 쏘지 않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잠시,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전우들에게 총구를 돌리는 게 진정한 전우애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했다고 한다. 결국은 학살을 멈추라고 요구하다 동료·상관 등과 주먹다짐까지 했다.

전역한 지 4개월 만인 1982년 3월, 김씨는 병원에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김씨가 광주에서 겪었던 정신적 압박이 발병 원인이며, 그날 이후 부대 동료들과의 갈등, 상관의 기합 등이 증세를 악화시켰다고 진단했다. 김씨는 2006년 8월 국가보훈처 수원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지만 "군복무 중 발병했다는 자료가 없다"며 거부당했다.

김씨는 소송을 냈고, '암울한 시대'를 거쳐온 친구들이 발 벗고 나섰다. 전성 변호사 등 김씨의 대학 동기들은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과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김씨의 전우들까지 수소문해 증인으로 불렀다. 친구들은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 "동시대인으로서 함께 겪은 역사적 사건인데 친구의 개인적 불행으로만 돌리고 체념할 순 없다"며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명예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1·2심 법원은 이런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수원지법은 1심 판결문에서 "김씨가 민주화운동 진압 등 부적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렸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정신분열증의 직간접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며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통성 없는 공권력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저항엔 시대적이고 객관적인 정당성이 내재돼 있었다"며 "김씨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동원됐고, 이런 자기모순이 초래한 극도의 갈등은 정신세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도 최근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그사이 김씨의 삶은 황폐해졌다. 1991년 결혼했지만 아들 하나를 둔 뒤 2002년 이혼했고, 지금은 혼자 살며 수원 정신건강보건센터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어머니 김영순(79)씨는 아들 일로 충격을 받은 남편이 세상을 등지자, 아들이 스무 곳 넘는 정신병원을 떠도는 사이 홀로 병수발을 했다. 판결 확정 뒤 김씨가 아들한테서 들은 첫마디는 "어머니, 이제 미친 사람이란 소리는 안 듣겠네요"라고 했다. 그는 "외교관이 되려던 아들이 5·18 직후부터 다른 사람이 됐다"며 "그 시간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느냐"며 목이 메었다.

내년이면 5·18이 30돌을 맞는다. 학살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를 비극으로 몰고간, 영화 < 박하사탕 > 의 주인공 같은 김씨의 삶이 다소나마 치유되기까지는 꼭 그만큼의 세월이 걸렸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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