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만 '스폰서 문화'가 있는 이유
요즘 검찰이 '스폰서(후원자)'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검찰 말고도 힘 좀 쓴다는 기관이 많다. 법원도 있고 경찰·국세청·감사원·국정원도 있다. 그런데도 유독 검찰에만 공공연히 스폰서 문화라는 게 있다. 왜 그럴까.
검사들은 평소 철저한 상명하복(上命下服) 원칙과 엄격한 위계질서에 따라 근무한다. 이런 근무 자세가 몸에 배 근무 외의 회식 같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상사(上司)나 사법시험 기수(期數)가 가장 앞선 선배 검사 중심으로 움직인다. 검사끼리 회식을 할 때 소속 부서의 부장검사나 그 자리의 최고참 검사가 돈을 내는 관행이 그런 예다. 이 회식비를 뒤에서 대주는 사람이 바로 스폰서다. 검찰이 큰 사건을 수사할 때는 경찰이나 국세청 등에서 직원들을 파견받는다. 공식적으로 나오는 수사비만으론 이들의 야근비·교통비·출장비를 댈 수 없을 때 부족한 수사비를 부장검사나 검사장이 마련해 주곤 했다. 이때도 스폰서의 도움을 받는 관행이 있었다.
후배 검사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폰서 관행에 물들게 된다. 최근 스폰서 추문을 폭로한 부산의 전직 건설업자도 "한번은 부장검사를 통해 회식을 했던 평검사들이 '이번엔 우리끼리 따로 해보자'고 해서 함께 술을 마시고 계산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만 갖고 검찰의 스폰서 문화를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아무리 스폰서가 주는 돈의 명목이 '회식비'이고 '수사비'라지만 일반 공무원 같으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접대와 촌지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검찰 스폰서 문화의 또 다른 비밀이 있다. 바로 법률 전문가인 검사들의 '눈 가리고 아옹' 식 자기 합리화이다.
검사들이 뇌물 사건을 수사할 때 돈이 실제로 오갔는지 아닌지와 함께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또 하나 있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돈을 받은 대가로 자기의 직무(職務)와 관련해 상대방을 봐 준 게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른바 대가성(代價性) 문제다. 아무리 돈을 받았어도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이 없으면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사에 오른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어떤 이유든 갖다 붙여 대가성을 적용하려는 검사들이 정작 자기들이 스폰서로부터 받는 향응이나 촌지에 대해선 대가성을 아주 엄격하게 해석해 대가성의 그물에서 빠져나가려 한다는 점이다. 스폰서의 청탁(請託)을 들어줬다고 해도 그 직접적인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다면 과거에 받은 접대와 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얼마 전 한 건설업자의 법인카드를 받아 3년간 백화점·술집·골프장 등에서 9700여만원을 쓴 검사가 있었다. 이 검사는 "건설업자와 각별한 친분관계에 있었을 뿐 직무상 청탁은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 검사도 "(스폰서 문화는)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냐"고 했다.
이런 자기 합리화가 향응 접대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을 가져왔고, 그 불감증이 스폰서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보통 사람들은 다 안다. 검사들만 '공짜도 있다'고 대가성 이론 운운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검사들이 스폰서 문화에서 벗어나려면 법에 앞서 상식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부터 배워야 할 일이다.
- 김낭기 논설위원 ng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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