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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ciences/33_Energy

2000년대 이후 新자원민족주의

忍齋 黃薔 李相遠 2010. 12. 28.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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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新자원민족주의 
<연재> 민경우의 ‘1980년 이후 한국경제사’ (15) 
 
 2009년 09월 03일 (목) 10:58:09

민경우 tongil@tongilnews.com 
 
 
1970년대를 경계로 세계경제를 1945~1970년대 초반 포디즘 시기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나눌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신자유주의는 금융의 팽창과 자산버블에 기초한 가수요에 의해 성장했다. 한편 미국 등 글로벌 금융자본의 팽창은 중국.인도 등 신흥개도국의 제조업과 SOC에 투자되어 자원 가격의 급등을 불러왔다. 아래에서는 이 과정을 자원민족주의의 관점을 포함해 검토해 보겠다.

 

1960년대 후반기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1970년대 중동을 중심으로 자원민족주의가 발흥한다. 1973년 4차 중동전과 1979년 이란혁명을 배경으로 중동 산유국들은 한꺼번에 원유가를 인상하였다. 원유값은 1973년 배럴당 3달러이던 것이 1974년에는 11달러 수준으로, 2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1980년 11월 24일 42.25달러(이를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90달러 수준)로 폭등하여 고점에 이른다.

 

과거 식민지 침탈의 주요 목적이 식민지 자원의 약탈에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국가들은 정치적 자주권을 찾음과 동시에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이 시기 자원민족주의가 정치적 자주권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수단의 확보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복잡했던 세계질서는 1990년대 초반 냉전이 붕괴되면서 미국의 일극질서가 확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소련과 동유럽은 사회주의를 포기했고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를 선호했던 제 3세계는 차례차례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 편입되었다.

 

미국은 1991년 1차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초토화시켜 중동 원유에 대한 통제력을 확고히 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1980년~2000년까지 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를 확립하여 여기에 편입된 나라들에게 원유.식량.원자재 등을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했다.(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를 거부했던 나라들 중 하나가 북한으로 사회주의권 붕괴로 에너지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 과정을 구체적인 숫치를 통해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주요 자원의 실질 가격(=국제 자원가격지수/글로벌 소비자물가지수)은 1980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07년 원유는 60.9, 곡물은 37.6, 금속은 92.6”(“글로벌 자원위기의 의미와 영향”, 경제연구실, LG경제연구원 2008.5.14)이었고 1980.11.24 42.25달러로 최고점에 이르렀던 유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1990년대까지 10~2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유가가 하락한데는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서비스 산업 및 첨단 산업으로의 산업구조 재편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연평균 석유 수요: 5.3% 성장, 1980~1990년대 0.8% 성장, 2000년대엔 2.8% 성장, “한겨레 21”, 2006.5.18)

 

1990년대 금융과 IT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세계경제는 2000년대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개도국이 산업화에 뛰어 들면서 새로운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개도국이 투자를 중심으로 고성장하면서 투자에 필요한 에너지와 각종 자원의 수요가 크게 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곡물에 대한 소비수요도 빠르게 늘었다. 이 과정에서 자원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수요증가가 자원가격 상승의 부정적인 효과를 대부분 상쇄해 주었다”. 1990년대 세계경제성장률이 2.9%인 반면 2000년대는 4.1%로 1.2%나 상승하고 2003~2007년의 성장률은 4.5%에 달한다. 미국 등 서방금융자본은 신흥 개도국에서 새로운 투자처를 발견했고 한국 등 수출 주도형 국가는 신흥 개도국의 발전 과정에서 새로운 수입수요를 찾았던 것이다.

 

신흥개도국의 산업화에 따른 자원 수요 급증과 함께 신자원민족주의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신자원민족주의는 중남미.중동.아프리카.러시아 등 자원공급국과 중국 등 자원수입국으로 나눌 수 있다.

 

공급국 중 러시아.베네주엘라.이란 등은 원유 수출을 통해 확보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하고 있고, 중국은 미국의 에너지 봉쇄망을 피해 사활적인 에너지 확보 과정에서 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에 파열구를 내고 있다.

 

전 세계 원유 소비의 10%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우 “석유수급을 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정부로부터 막대한 재정지원과 외교적 지원을 받은 국영석유기업들이 해외유전 개발 프로젝트에서 낮은 수익성을 감수하거나 시장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유전을 인수하는 등 해외 유전개발에 전념”(밑줄 필자, 이광우, “고유가 시대의 신자원민족주의”, LG경제연구원, 2008.1.23)하고 있다. 또 “중국의 경우 해외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부채탕감, 원조자금 제공, 복지 인프라 구축 등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기술 전수와 인프라 제공 등을 약속하면서 아프리카와 남미로 해외 유전개발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위 LG경제연구원, 2008.1.23) 이에 따라 중국의 에너지 도입선을 따라 탈미친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자원 수급 균형의 괴리, 신자원 민족주의의 성장에 따라 원유.곡물.원자재 가격 인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동 두바이산 원유 가격의 경우 2003년 이전에는 월 평균 0.9%씩 성장하다가 2004년 이후에는 월 평균 3%씩 성장”(“신자원민족주의의 확산과 한국의 자원안보 현황”, 현대경제연구원, 2008.7.21)하고 2008년 7월 4일에는 140.7불로 최고점에 이른다. “상품가격지수의 경우, 1992~2002년 연평균 전년 대비증가율은 -0.3%인데 반해 2003년 이후에는 연평균 28.5%에 이른다.(위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

 

그렇다면 위와 같은 급격한 자원 가격 상승이 한국경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첫째, 1980~199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은 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신 자원민족주의의 등장은 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에 편승하여 성장했던 한국의 위상 변화를 강제할 것이다. 신자원민족주의를 선도하는 나라들이 대체로 한국의 기존 동맹국과 배치되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둘째, 식량자급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1980~2000년 미국 주도의 자원 질서하에서 한국은 곡물 수입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향후에는 달러가 있어도 곡물을 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으므로 한국의 농업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셋째, 에너지 효율성의 제고와 산업구조의 재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원단위(1차 에너지총량:TOE/국내총생산:1000US 달러)가 1980년 0.34에서 2005년 0.34로 변화가 없는 반면 위 기간 미국은 0.35에서 0.21, 일본은 0.12에서 0.11로, OECD 평균은 0.28에서 0.20으로 떨어진다. 위 숫치는 198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편 한국의 에너지 사용 분포를 보면 제조업에서 52.5%(특히 화학.철강.시멘트에서 40.1% 사용), 수송용 21.0% 등 산업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구조를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향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넷째,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중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자원 절감산업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을 보면 유럽이 60.7%로 주도하고 있고 미국 18.4%, 일본 10.1%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는 1.4%에 지나지 않는다. (위 LG보고서, 2008.5.14) 아마도 현 경제위기가 끝나면 세계경제는 지금과는 다른 에너지 패러다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경제 또한 새로운 변화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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