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여행스케치

미국에서 기구한 삶을 살다가 20년 전 에반스톤에서 죽은 양경종

忍齋 黃薔 李相遠 2011. 2. 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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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이 열권의 책으로 모자라는 역사도 있고 한 사람의 삶이 20여권 분량의 내용이 있어도 책으로 쓰이지 못한 역사도 있을 것이다.

  양경종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후자의 경우 일 것이다. 지금부터 20년 전 우리가 사는 곳에 가까운 에반스톤에 노스웨스턴 대학 부근에 살다가 사망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이 본인에 의해 확인된 것도 아니다. 추측일 뿐이요 숨겨진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얼마 전 영국에서 공개한 2차 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있었던 사진들이 공개되면서다. Image Gallery 22번으로 나온 사진이다. 미군 한 사람이 무엇을 쓰고 있고 다른 한 미군이 주시하는 가운데 포로 한 사람을 신문하는 사진이다. 그 포로가 독일군이 아닌 동양 사람이다. 사진 설명에는 영어로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가 1939년 만주국경 분쟁 시 소련군에 잡혀 적군(Red Army)에 편입되었는데 그는 독일의 소련 침공 때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 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가 노르망의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중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다.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진술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의 Utah 해안에서”

  그 후 이 포로는 미국으로 올 수 있었고 미국에서 기구한 삶을 살다가 20년 전 에반스톤에서 죽은 양경종 바로 그 사람이란다. 결코 가족들에게는 자신의 전쟁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하나 사람들은 그의 이력서까지 작성했다.

  1920년 3월 3일 신의주 출생, 1938년 관동군 입대 소련과 전투에서 소련군에 포로, 1943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1947년 미국으로 이주, 1992년 4월 7일 노스웨스턴 대학 부근에서 거주하다 사망, 슬하에 2남 1녀 등이 그의 이력서다.

  한 인간의 삶이 삼국지 10권 분량이 없는 사람 누구겠는가 마는 이 사람의 기구한 인생길이 바로 한국 민초들의 아픔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기막힌 인생살이가 짓밟힌 민초들의 한이요 억울함 아니겠는가.

  18세에 일본 관동군 병사로 징집 혹은 지원했을 것이다. 일본군은 만주의 만소 국경에서 소련군과 전투하다 소련군에 포로가 된 것이다. 살기 위해 소련군 Red Army(적군) 소속이 된 것이다. 스무 살 때다. 고향 친척 떠나 혈혈단신 가까운 일본도 아닌 소련으로 말이다. 어떻게 생존했을까 얼마만한 수모를 당했을까 얼마나 많은 한으로 쌓였을까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 중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1941년이다. 모스크바 근교에서 싸우다가 이번에는 독일군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리하여 노르망의 해안선 방어병으로 투입된 것이다. 단순 노무자인 줄 모른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을 터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의 노르망의 상륙작전을 감행하고 또다시 미군의 포로가 된다. 그때 포로들은 영국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다시 영국으로 간 것이다. 1944년의 일이다.

  실은 이런 유의 한인이 네 명이 있었단다. 영국포로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 말이다. 그 중 어떤 이는 포로 석방 후 고향 이북으로 돌아갔을지 모른다. 또 다시 6.25 사변이 나자 인민군에 들어가 미국과 싸웠는지 모른다. 어느 이름 없는 땅에서 전사 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경종씨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기록은 없단다. 좌우간 미국에 도착하고 72세 된 해 파란 만장한 인생을 종지부 찍었단다. 기구한 운명이 이런 사람 아니겠는가. 역사의 변덕 속에 가장 아픔을 당한 자 일 것이고 역사의 변덕에 의해 가장 시달림을 당한 사람 아니겠는가.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어쩜 영영 가족 한번 재회도 못했을 것 같은 삶일 것 같아 기가 막히는 것이다.

양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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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종(1920년 3월 3일 ~ 1992년 4월 7일)은 일제시대에 일본군에 징집되어 나치 독일군 병사가 된 사람이다.

 

생애 [편집]

양경종은 1920년에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그 후 1938년에 일제의 강제 징용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 관동군 병사가 되었다. 그러나 양경종은 노몬한 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소련군에 의해 포로로 붙잡혔다.

 

포로로 붙잡힌 양경종은 소련군에게 자신이 사실은 자원입대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징집당해서 관동군이 된 것이라고 설명하자 소련군에서 양경종을 병사로 받아들였다. 양경종은 그 이후 계속 소련군으로 복무하다가 1943년 여름에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나치 독일군에 의해 또다시 포로로 붙잡혔다.

 

양경종은 같은 설명을 반복하였는데 나치 독일군 장교가 양경종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으로 때 양경종이 "딴것은 다 필요없고 밥만 배불리 먹으면 됩니다. 그게 제 소원입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치 독일에서 역시 양경종을 병사로 받아들여줬다.

 

그렇게 양경종은 독일군 병사가 되었다. 그 후 양경종은 노르망디의 경비병의 보직을 받아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경종은 노르망디의 경비병으로서 복무하는 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는데 이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양경종은 또다시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해변에서 미군에 의해 포로로 체포되었다. 양경종은 체포되자마자 이러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미군들에게 설명했다. 미군은 일단 양경종을 영국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감금시켰다.

 

1945년에 나치가 패망하자 그 해 5월에 양경종은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으며 양경종은 영국에서 살다가 1947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이후 양경종은 미국 여자와 결혼해서 45년 동안 평범한 시민으로 살다가 1992년 4월 7일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 부근에서 사망했다.

 

양경종은 슬하에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일화 [편집]

  • 양경종은 결코 가족들에게는 자신의 전쟁경험을 이야기 한적 없다고 전해진다.

 

참고 [편집]

http://ko.wikipedia.org/wiki/%EC%96%91%EA%B2%BD%EC%A2%85

Yang Kyoungjong en 1944, después de haber sido hecho prisionero en Normandía por los paracaidistas norteamericanos

 

이름 : 양 경종
생년월일 : 1920년 3월 3일
본적 : 신의주
관동군 입대 : 1938년
노몬한 전투 참전때 소련군 포로
1943년 여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독일군 포로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해변에서 미군 포로
1945년 5월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1947년 미국으로 이주
1992년 4월 7일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 부근 거주하다 사망

 

http://vimeo.com/17088018

 

http://vimeo.com/17090031

 

 


▲ 또다른 독일군복을 입은 한국인(?)들의 사진.


들은 일본강점기때.. 일본군에 강제징집되어 만주지역에서 공병으로 활동하던 중 러일전쟁 때  러시아군 포로로 잡혔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때..또 다시 소련군 공병으로 전선에 강제 투입되었고...독일군에 포로가 되었다. 이후 독일군에 의해 노르망디 해안지역에 배치되었으나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인해 미군에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 모든 것을 조사한 후, 고국으로 송환하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미국 뉴올리언스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정년퇴직한 스티븐 엠브로스 아이젠하워센터 명예관장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전후의 미군의 활약을 담은 군사 역사서를 여러 권 썼다. 브루어는 101공수사단으로 노르망디 해변 후면 셍 마리 에글리즈에 낙하해 해안벙커를 방어하고 있는 독일군을 공격했다.
이때 부루어소대는 독일말조차 못하는 4명의 동양인을 포로로 잡았다. 한국 출신이라는 그들은 1941년 소비에트 적군(赤軍)으로 모스크바 근교에서 싸우다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고 그 후 독일군의 노르망디 해안선 방어병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적군이 된 이유도 설명했다.
1938년 한국에서 일본군에 징집되어 39년 만주의 소련 국경에서 전투 중 포로가 되어 적군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브루어는 그러나 “4명의 한국인은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반도로 돌아갔겠죠. 그리고 1950년에 그곳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을 위해 싸웠거나 미국에 반대해 싸웠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20세기 ‘역사의 변덕’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이들과 관계된 저술로는 

2005.09.30 에 출간된 '노르망디의 조선인" 장웅진  저 /피와 눈물사 출판/이 있고

2005년 12월 11일 SBS 스페셜로 '노르망디의 한국인'이 방영되었고

2007년 3월 26일 조정래의  소설 '오 하느님'(문학동네 출판) 등이 있다.

 

 

최초로 인터넷에 앰브로서의 책에서 이 사진을 베껴와

실은 곳은 미국인 Jason McDonald 가 운영하는 사이트였습니다.

http://www.worldwar2database.com/photos/wwii438.jpg

 

아래 사이트에서는 이 사람을 일본출신 독일군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http://www.ww2incolor.com/gallery/black_and_white/japanese_dday

 

SBS 스페셜(21회) 방영일 : 2005-12-11

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1_review_detail.jsp?vVodId=V0000311936&vProgId=1000126&vMenuId=1002036&vVodCnt1=00021&vVodCnt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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