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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고베의 교훈은 어디로 가고

忍齋 黃薔 李相遠 2011. 3. 19.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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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고베의 교훈은 어디로 가고

 

입력 : 2011.03.17 23:03

정권현 사회부장

일본 대재난 사태를 지켜보면서, 지난 1995년 6436명의 인명피해를 냈던 고베 지진 당시의 기록을 다시 들춰봤다. 당시 무라야마 내각은 미국 정부가 주일미군을 구조작업에 투입하자고 제안하자, "전례가 없다" "미·일안보조약에 그런 규정이 없다"는 등 법령 타령만 늘어놓다가 이틀을 허비했다. 결국 모포와 식수 공급에 한해 지원받기로 했지만, 요코스카 기지에 정박해있던 미군 항공모함을 피해현장으로 급파하자는 제안은 끝내 거부했다. 사회당 좌파와 자민당 비둘기파의 연합정권이었던 무라야마 내각은 미 항모 출동이 미군과 자위대의 공동작전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면서, 인명구조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했던 것이다. '응급환자 2000명 이상의 치료시설을 갖춘 항공모함이 출동해 부상자들을 긴급후송했더라면 인명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성문은 시일이 한참 흐른 뒤 정부 보고서에만 실려 있다.

그런 반성을 통해 얻어냈던 교훈이, 지진 위력만으로도 '고베 지진의 700배' 규모라는 이번 대재난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있다. 외신들은 간 나오토 총리의 일본 정부가 상황을 장악하고 주도하는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본지가 일본 대재난 현장에 파견한 기자들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간 나오토 총리가 사태 발생 후 일주일 동안 한 일은 피해지역을 헬기로 한 번 살펴본 것과, 폭발위기에 처한 후쿠시마 원전을 찾아가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혼을 낸 것뿐이다. 간 총리는 사태 수습을 위해 2명의 여성참모를 임명했는데, 그중 한명은 평양을 왔다 갔다 한 좌파 운동권 출신이고, 다른 한명은 쓰나미에 대비한 대형 방파제 건설을 반대하던 사람이다. 이를 두고 "'마돈나 전략'으로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거냐" "1000년에 한 번 정도인 대재난을 단순히 태풍피해 대책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간 나오토 총리는 당초 피해 지역에 투입할 자위대 병력을 2만명으로 잡았다가 5만명, 10만명으로 계속 늘리더니 동원이 여의치 않자 처음으로 예비역 자위관 6400명을 소집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인프라 시설이 무너진 현장에는 독자적인 통신과 기동수단을 가진 군대조직과 경찰 외에는 제대로 구조활동을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자위대가 "위험지역에는 못 들어간다"고 버티고, 자위대를 지휘하는 방위성 장관이 "무조건 하라"고 명령하는 희한한 일까지 벌어졌다. 군대라면 위험하고 오염된 지역에서, 그리고 악천후 속에서도 작전을 감행해야 하는 조직이 아닌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 국민은 몇 시간씩 줄을 서면서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도쿄 현지에서 소식을 전해준 한 전직 외교관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이렇게 순종적이고 복종적인 국민을 지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 리더십의 문제 아닌가요" "재난을 당한 쪽에 쓴소리를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일본군은 병사와 부사관은 우수한데 장교, 특히 장군들의 판단력과 지휘력에 문제가 있다는 예전의 지적을 다시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최악의 상황이 오는 게 아니냐며 겁을 집어먹은 듯한 모습에서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태 때 우리 정부가 우왕좌왕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만약 우리에게 대재난이나 긴급사태가 닥친다면, 일본 지도층이 고베의 지진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정부와 지도자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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