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7_芳園(李盛粲)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2] 방원 이성찬 선생과 이영노 박사

忍齋 黃薔 李相遠 2011. 6. 9.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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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학자 고 이영노 전 이화여대 교수


작고하신 이영노 박사님은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의 친구분이시기도 하지만 내 모친 이춘연 여사의 전주여고 은사이기도 하다.


[2008.06.23 만물상] 식물학자 이영노 -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입력 : 2008.06.23 22:14 / 수정 : 2008.06.23 23:01

 

남한강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추진되던 영월 동강댐이 2000년 백지화된 이유 중 하나는 인근에 희귀 생물이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호 대상으로 거론된 수십 종의 동식물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에서 이곳에만 사는 '동강할미꽃'이다. 석회암지대 바위 틈에서 보라색, 흰색, 자주색으로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신비로운 이 꽃에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이 '한국 식물학계의 대부(代父)' 이영노 교수였다.

 

▶이화여대에서 30여 년을 가르친 이영노 교수가 세계 식물학계에 처음 소개한 식물은 150여 종에 이른다. 동강에서는 동강할미꽃 외에도 '정선황새풀'이라 불리던 야생화에 '동강고랭이'라는 새 이름을 줬다. 서울 창덕궁에서 '창덕제비꽃', 오대산에서 '노랑무늬붓꽃', 태백산에서 '태백기린초'와 '태백바람꽃'을 각각 발견했다. 이 교수가 찾아낸 식물의 학명(學名)에는 그의 영문 이름 머리글자를 딴 'Y. N. Lee'가 붙는다.

 

▶이런 학문적 업적은 평생을 산과 들에서 산 결과였다. 이영노 교수는 남한의 산은 안 오른 곳이 거의 없고 한라산은 250차례나 찾았다. 백두산도 20여 차례 올랐다. 그의 발길은 남미 아마존 밀림에서 캐나다 북극지대까지 해외에도 닿았다. 6·25 때 10만 점의 식물 표본을 잃어버린 경험을 한 터라 희귀식물을 사진에 담기 위해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이영노 교수가 식물학자가 된 것은 전주사범학교 1학년 생물시간 때 했던 왕벚나무 그림 숙제가 계기가 됐다. 그는 봉오리가 맺혀 꽃이 필 때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담아냈고 선생님은 전교에서 가장 잘됐다며 게시판에 붙였다. 그는 졸업 무렵 1500여 종의 식물 이름을 줄줄 외웠다.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식물 연구의 꿈을 못 잊어 서울대 생물교육과에 진학했다.

 

▶이 교수는 1996년 평생 연구성과를 담아 펴낸 '한국식물도감'에 2006년 800여 종을 추가해 개정판을 냈다. 1800여 쪽에 4157종의 식물 사진과 해설을 담아 한반도에 자라는 거의 모든 식물을 망라했다는 평을 들었다. 얼마 전까지도 일주일에 2~3회 채집을 다니던 그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그제 별세했다. 그는 2년 전 제자들이 출간 축하파티를 열자고 하자 "이제야 식물에 눈을 떴다. 10년 뒤 다음 개정판을 낼 때 하자"고 사양했었다. 평생을 청년처럼 살며 식물학 연구의 외길을 걸은 노(老)학자의 명복을 빈다.

 

식물학자 고 이영노 박사 회고전
내년 2월까지 국립생물자원관 특별전시실에서
[0호] 2009년 10월 07일 (수) 13:58:47 장현숙 기자 zzang3514@latimes.kr
   
▲고 이영노 박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인 ‘고 이영노 박사 추모 특별전’이 9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국립생물자원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추모 특별전에는 이 박사의 자생식물에 대한 70년간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저서와 논문, 친필원고를 비롯해 연구 활동을 담은 사진과 직접 채집한 희귀표본 등 120여점이 전시된다.

특히 금강산과 백두산에서만 자생하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금강인가목, 백두모싯대, 양머리복주머니란 등 희귀한 표본 5점이 일반인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이 박사는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우리나라 전국을 샅샅이 조사해 동강할미꽃, 노랑무늬붓꽃 등 총 242종류의 새로운 식물을 학계에 보고하는 등 자생식물의 분류체계 확립과 식물분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와 한국식물학회장, 한국식물분류학회장, 한국식물연구원장을 지낸 이 박사는 지난해 6월22일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이영노(李永魯)

1920년 10월 25일~2008년 6월 22일. 현대 식물학자.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출신지는 전라북도 군산시(群山市) 옥구읍(沃溝邑)이다.

1942년 전주사범학교 심상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에는 일본 도쿄[東京]대학교 이학부를 졸업하고 195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였다. 1961년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Kansas State University) 대학원 식물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64년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6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조교수로 시작하여 부교수‧교수를 역임하였다. 1961년 미국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대학원 연구원으로 초청되어 연구 활동을 하였으며, 1967년부터 1975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원 원장을 지내면서,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자연사박물관 관장도 겸임하였다.

1972년부터 2년 동안 한국식물학회 회장을 지냈고, 1982년에는 4년 동안 식물분류학회 회장직을 맡았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1991년부터 1995년까지는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6년 한국식물연구원 원장이 되었다.

저서로는 『한국식물도감』(1956)‧『꽃피는식물』(1965)와 영문 출판서 『한국화본과식물지』(1966)가 있다. 또 『한국동식물도감』(1976)‧『백두산의 꽃』(1991)‧『원색한국식물도감』(1996)‧『한국식물연구원보』(2000) 등을 남겼다.

이영노(李永魯)는 전국의 산지를 돌며 수집한 식물 중 250여 종에 자신의 이름을 넣을 만큼 한국 식물분류학계 거목이자 한국식물학계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동식물학의 체계정립 및 발전 등에 이바지한 공으로 1969년 서울시문화상, 1976년 국민훈장동백장, 하은문화상 등을 받았고, 2009년 제14회 환경의 날을 기념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추가: 2017년 5월 5일 미국서부시간


온라인상에 잘찍은 야생화가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문득 한국의 야생화 도감을 만드시러 주말이면 사진기를 질머지고 들과 산으로 다니시던 제 아버님 방원 선생의 친구분 이영노 박사님이 생각납니다. 제가 환경공학을 전공하러 미국에 간다하니 이대 생물학과 교수셨던 이영노 박사님이 칭찬을 해주며 "이대에 훗날 공대를 만들건데 환경공학과를 제일 먼저 만들거니 와서 후학을 양성하면 좋겠구나" 하셨습니다. 유학시절 같은 아파트를 잠시 쓰던 1년후배로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형상기억금속을 전공하던 ㄱㄷㅅ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훗날 이대에 실제로 환경공학과가 만들어 졌는데 금속공학을 전공한 이 친구가 떡하니 환경공학과 교수로 가 있는걸 발견하고 놀란적이 있고 제가 연락을 하여도 어지것 피하면서 살고 있기도 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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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드한 치매끼가 있으신 내 아버지 방원 선생께서는 1990년대까지 작고하신 지인분들의 죽음은 기억하시는데 2000년대 작고하신 지인분들의 죽음은 기억을 하지 못하셔서 가끔 이영노 박사님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 얼마전에도 만났는데 여적 식물도감 만든다고 바쁘게 돌아다녀" 하십니다. 그저 편안하게 방원 선생님 이라도 마저 백수를 넘기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튼 미국유학하고 미국에 산다고 사람구실 참 못하고 살았습니다. 절 아끼고 사랑하고 귀여워 해주셨던 분들을 찾아뵙지 못하고 한세월 흐른 뒤에나 작고하신 소식들을 접하니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한스럽습니다. #살인마전두환 이는 디지지도 않고 외곡된 회고록이나 써대며 분노를 유발시키기나 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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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한송이 처럼 해맑게 웃음짓던 이영노 박사님이 그리워 5월의 첫 주말 잠시 상념에 잠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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