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7_芳園(李盛粲)

다음카페에서 만난 내 부친의 과거흔적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1. 20.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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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에서 만난 내 부친의 과거흔적
번호 : 214   글쓴이 : 이상원
조회 : 20   스크랩 : 0   날짜 : 2007.01.14 18:52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옹은 원예를 전공하셨고 경무대 이화장 조경 화혜 꽃꽃이등을 담당, 원예기술연구원에서 우장춘박사의 조교, 전주농림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창경원 식물원장을 하셨고 말년에는 소사에서 농민들에게 근교농업으로의 원예기술 전수를 하시다 지금은 인천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신데 ...

 

구들연구소 [공개]   주인(카페지기) 無耘(김명환)

 

 

Re:방원선생님과 대화한 한토막이 있어 올립니다.

번호 : 279   글쓴이 : 無耘(김명환)
조회 : 16   스크랩 : 3   날짜 : 2007.01.12 00:16

창경원 식물원 원장과 우장춘박사 비서생활을 하셨던 방원(芳園 )이승찬선생께서 해방정국에 정치에 입문 할려고 하니

그의 선생 지운(제3차 공산당 당수)께서 '이승찬은 꽃당 당수여!, 이승찬은 꽃당 당수나 하지 그런 것 상관 할 것 없어' 라고 하시면서

꽃다울 방(芳), 동산 원(園)이란 호를 지어 받으신 방원선생은 한평생 꽃과 생활하신 분이다.

방원선생께서 15년전에 노란수련 한포기를 무운에게 주신 선물이 이제 제법 늘어나 나도 분양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글은 방원 이승찬선생과 무운이 나눈 이야기 일부이다.

 

'방원선생님!, 선생님께서 주신 노란미니수련 많이 번식되어 분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했구먼!, 귀한 것이니 많이 번식 시키게. '방원선생께서 창경원식물원에 근무하셨다면서요?

그 때 지운선생과 우장춘박사와 함께찍은 사진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 촬영장소가 어딥니까?.'

'부산 원예시험장이였어. 내가 지운선생을 모셔갔지.' '우장춘박사와 지운선생께서는 처음만나셨습니까?.'

'아니여, 옛날부터 친했지. 우장춘박사가 서울 청량리에 원예시험장 분원이 있어서 가끔 오시면 지운선생과 만나곤 했지'

'우장춘박사와 방원선생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내가 우장춘박사 비서로 있었지 우장춘박사가 원예시험장 분원이 서울 청량리에 있어서 그기 왔다 갔다 했지,

우장춘박사는 한국말이 서툴러 웃음으로 대답하고 한국말을 안해 한국말을 하면 대중이 웃으니깐 일본말만 했지

이승만박사도 잘 만나주지 않했어, 국가에서 모셔왔지만 한국말 못한다고 비서들이 만나주지 않했어 면회도 일절 만나주지 않했어,

괄세가 심했지' '우장춘박사 실력이 좋았습니까?.' '좋았지, 세계공인박사여!,

나팔꽃같은 것 겹으로 만들었지. 씨없는 수박은 국내에서 잘 알려졌지만 실지로는 겹으로 피는 나팔꽃이여!'

'저에게 주신 노란수련도 그 분이 만든 것 입니까?' '아니여 내가 일본에서 구했지 하도 예쁘고 해서. 무척 오래전이여'


부산 원예시험장에서, 앞줄가운데우장춘, 우측이 지운,뒷줄가운데 방원 이승찬선생

 

방원 이승찬선생께서 금년 새봄에 무운에게 보내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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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표현하시는데는 무운선생님께서 한소식 하신듯 합니다. 제 부친의 뒤를 이을 생각으로 농대를 갔지만 전두환의 폭압에 항거한 저는 꽃에 머물러 있을수 없었답니다. 중요한 분들의 과거를 엿볼수 있는 증언은 그 자체가 역사인 셈이지요. 귀한 현대사료로 거듭나길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무운선생님 선친에 관한 연구도 이제는 시작해야 할때인듯도 하구요. 07.01.12 09:03
아참, 제 부친의 정확한 함자는 이(李)자 성(盛)자 찬(粲)자를 쓰십니다. 서울 경기 사투리가 성자를 애교로 승자처럼 발음되기도 하는점이 있어 돌아가신 어른들이 제 부친을 호칭하길 승찬아 승찬아 하셨던것이 기억납니다. 정확한 발음은 성찬이십니다. 참고로 올립니다. 무운선생님께서 올리신 그림은 보이지 않는군요. new 07.01.13 04:58
사진 때문에 답글란에 올립니다. new 07.01.13 06:40

 

Re:Re:방원선생님과 대화한 한토막이 있어 올립니다.
번호 : 281   글쓴이 : 無耘(김명환)
조회 : 6   스크랩 : 5   날짜 : 2007.01.13 06:38

저의 실수입니다.

방원선생께서는 항상 한자로 이름을 적어 보내오고 있습니다 붓글씨도 잘 쓰시고요 특히 세필글씨를 잘 쓰시고요

언제 인연이 닿으면 아버님과 지운선생의 만남/ 우장춘선생과의 대화/ 아버님의 전주하숙생활/ 강진에사시는 외조부님과 지운선생의 대화 그리고 중매쓰시고 결혼시키신 일화/ 이승만정권시절 이화장에 꽃꽃이 담당하시던 일화/ 공직은퇴후 윤치영에게 소사에 땅 못받아 지운선생께서 윤치영에게 호통 치신 일/꽃가게 하신 일/청파동 사실 때/ 상계동 사실 때/인천 사실 때/허백련화백과 연진회회원들과의 조우관계....

여러가지를 녹음한 일이 있습니다.




우장춘선생과의 사진이 1장 더 있는데 못 찿았습니다.
함께한 직원들의 신상명세도 녹음한것 찿으면 있습니다.
사진을 2번이나 찍었으나 밤이라 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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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인 저희 3형제보다 더 꼼꼼하게 자료화시키신 무운선생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식물육종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우장춘 박사님은 '육종학의 아버지'로 추앙되고 있고 우박사님의 연구가 육종학의 시작으로 간주하고 있답니다. 저역시 그분의 가치를 미국유학을 하면서 느꼈고 그로인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지운 김철수 선생님을 비롯한 한국 정치 사상가들의 수준도 거의 세계 첨단의 수준임을 알았을때 그분들의 치열했던 삶에 옷깃을 여미게도 했습니다. 수많은 소수민족국가가 소멸한 세계역사를 인식하면서 선진 문화와 정신세계를 영위하는 민족이어야 생존의 끈이 길다는 것도 이해를 했답니다. new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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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의 아버니께서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셔구나.. ^^ 07.01.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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