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카페에서 만난 내 부친의 과거흔적 | |
번호 : 214 글쓴이 : 이상원 |
조회 : 20 스크랩 : 0 날짜 : 2007.01.14 18:52 |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옹은 원예를 전공하셨고 경무대 이화장 조경 화혜 꽃꽃이등을 담당, 원예기술연구원에서 우장춘박사의 조교, 전주농림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창경원 식물원장을 하셨고 말년에는 소사에서 농민들에게 근교농업으로의 원예기술 전수를 하시다 지금은 인천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신데 ...
글로 표현하시는데는 무운선생님께서 한소식 하신듯 합니다. 제 부친의 뒤를 이을 생각으로 농대를 갔지만 전두환의 폭압에 항거한 저는 꽃에 머물러 있을수 없었답니다. 중요한 분들의 과거를 엿볼수 있는 증언은 그 자체가 역사인 셈이지요. 귀한 현대사료로 거듭나길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무운선생님 선친에 관한 연구도 이제는 시작해야 할때인듯도 하구요. 07.01.12 09:03
아참, 제 부친의 정확한 함자는 이(李)자 성(盛)자 찬(粲)자를 쓰십니다. 서울 경기 사투리가 성자를 애교로 승자처럼 발음되기도 하는점이 있어 돌아가신 어른들이 제 부친을 호칭하길 승찬아 승찬아 하셨던것이 기억납니다. 정확한 발음은 성찬이십니다. 참고로 올립니다. 무운선생님께서 올리신 그림은 보이지 않는군요. 07.01.13 04:58
사진 때문에 답글란에 올립니다. 07.01.13 06:40
자식들인 저희 3형제보다 더 꼼꼼하게 자료화시키신 무운선생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식물육종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우장춘 박사님은 '육종학의 아버지'로 추앙되고 있고 우박사님의 연구가 육종학의 시작으로 간주하고 있답니다. 저역시 그분의 가치를 미국유학을 하면서 느꼈고 그로인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지운 김철수 선생님을 비롯한 한국 정치 사상가들의 수준도 거의 세계 첨단의 수준임을 알았을때 그분들의 치열했던 삶에 옷깃을 여미게도 했습니다. 수많은 소수민족국가가 소멸한 세계역사를 인식하면서 선진 문화와 정신세계를 영위하는 민족이어야 생존의 끈이 길다는 것도 이해를 했답니다. 0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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