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촌 이종익 (于村 李鍾翊)
[우촌 선생은 제 부친 방원 선생의 오랜 친구셨습니다. 제 부친께서 신구전문대 원예과와 식물원 건립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기억도 있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퍼온 글입니다.]
우촌 이종익 선생의 생전모습
우촌 이종익 선생은
1923년 계해생(癸亥生) 9월 4일생으로
파주읍봉루리학동(坡州邑鳳樓里鶴洞)에서 한학자 이면규공(李冕圭公)의 차남으로 태어나 타계할 때까지 이 나라 출판과 육영에 헌신했습니다. 우촌 선생은 고성이씨 용헌공파로
시조로부터 이십칠세손이며 사암공파(思菴公波)입니다.
우촌선생은 1933년 문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상업학교를 입학하였습니다. 1942년에는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소압(스카모)상업고등학교(日本巢鴨商業高等學校)를 다니며 일본 학예사라는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며 고학으로 1945년에 졸업을 합니다.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경성경제전문학교 경제과에 입학하고 1947년 홍천논업학교 국어교사로 취직합니다. 1948년에는 일본에서 고학하며 출판사 편집일하던 경험을 살려 박문출판사에 입사합니다. 1951년에는 신구문화사로 독립하여 오늘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1953년애는 원순희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는 이남삼녀를 두었습니다.
종로에 있던 신구문화사
1951년 신구문화사를 창설한 이래 근사십 여년동안 육백여종의 양서를 간행하였습니다. 1970년 성남시 남한산록(南漢山麓)에 신구전문대학을 설립하여 우리 사회가 바라는 전문인을 양성하여 산업일선에 보냄으로써 평소의 지론이던 산학협동을 몸소 실천하였고 오늘날 모두 이십이 학과를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문대학으로 발전시겼습니다.
우촌선생은 생존시 문화출판에 기여한 공으로 서울시문화상, 한국출판문화상, 국무총리상, 문화공보부장관공로상, 경향신문양서출판상 등을 받았으며 교육사업에 끼친 공로로 중화민국문화대학에서 명예철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평소 신의성실과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고 이를 솔선수범했습니다.
그러나 국학관계의 새로운 출판기획과 평생교육사업의 기틀마련을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그 뜻을 미쳐 펴지 못한채 1990년 1월5일 정선(旌善)땅 폭설리(暴雪裡)에 민속자료조사도중 교통사고로 급거하니 항년 육십칠세를 일기로 경기도 파주군 파주읍 백성리 묘소에 고히 잠드셨습니다.
우촌선생의 급거 일주기인 1991년1월5일 유족을 비롯한 관계자 참석리에 묘비제막식을 엄수했고 묘비문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장덕순 문학박사가 짓고 역시 서울대 문학박사 이응백 교수께서 글을 썼습니다. 2000년 1월 5일 신구대학교 강당에서는 20주년 추모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신구전문대학 전경 소재지 : 성남시 단대동
'0. 韓山李氏 > 07_芳園(李盛粲)'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원선생 친구분 시리즈 2] 방원 이성찬 선생과 이영노 박사 (0) | 2011.06.09 |
---|---|
운초 정영호 박사 미망인 박양숙 여사님의 선행 (0) | 2010.12.30 |
다음카페에서 만난 내 부친의 과거흔적 (0) | 2007.01.20 |
[스크랩] Re:Re:방원선생님과 대화한 한토막이 있어 올립니다. (0) | 2007.01.14 |
[스크랩] Re:방원선생님과 대화한 한토막이 있어 올립니다. (0) | 2007.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