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참을 수 없는 섹스의 가벼움
박해현 논설위원 hhpark@chosun.com
입력 : 2011.06.02 22:08
▲ 박해현 논설위원
'에로 문학'이 프랑스 혁명에 기여했고
68혁명 세대가 性해방 일으켰지만
90년대 문학 대표작은 쾌락주의 비판했고
공직사회에서도 성희롱 고발이 늘어나
1866년 프랑스 해군 함정이 강화도에 나타났다. 프랑스인 선교사가 처형되자 항의하러 왔다. 프랑스 해군은 중국인 통역사를 데리고 왔다. 조선정부는 격문을 보내 준엄하게 꾸짖었다. '온 천하가 우리를 예의지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만약 우리 사람들을 인연(夤緣)하여 몰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의 옷으로 바꿔 입고 우리말을 배워서 우리 백성과 나라를 속인다든지 예의와 풍속을 어지럽힌다면 나라에 상벌(賞罰)이 있는 만큼 발각되면 죽인다.' 프랑스인을 오랑캐로 낮춰본 조선 정부의 기개는 대단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함포 사격에 혼쭐이 났다. '우리가 너그럽게 대해줬거늘 이렇게 포악무도하다니…'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해온 한국인의 눈에 프랑스인은 여전히 오랑캐로 보일 때가 있다. 프랑스인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쾌락주의자란 명성을 세계적으로 누려왔다.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감이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IMF 총재가 뉴욕에서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스트로스 칸이 평소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몇 차례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정치인의 사생활에 관대한 언론 풍토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왔다. 스트로스 칸은 여성들에겐 개인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따로 건네면서 유혹했다. 여기자들에겐 "특종하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했단다. 워낙 여자를 밝히니까 측근들은 그를 가리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불렀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소설이다. 여성 편력이 화려한 의사(醫師) 토마스가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등장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바람둥이를 두 유형으로 나눴다. 여러 여성들과 접촉하는 바람둥이라도 그 여성들의 외모가 비슷비슷하다면, 마음속에서 동일한 유형의 여성만을 추구하기에 '서정적 바람둥이'가 된다. 그런가 하면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유혹하는 남자는 '서사적 바람둥이'가 된다. 인종을 가리지 않는 스트로스 칸은 당연히 서사적 바람둥이가 된다.
프랑스인에게 섹스는 숨 쉬게 하는 공기와 같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에로 문학'이 성행했다. 입에 담기 민망한 표현이 난무하는 소설이 널리 읽혔다. 문학의 에로티시즘은 정치적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지배층의 예의범절을 조롱하면서 허위의식을 까발렸다. 금서가 됐지만 은밀히 읽힌 에로 문학은 권력에 대한 저항심을 키우고 전복(顚覆)의 상상력을 부추겼다. 섹스는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보였지만 에로티시즘은 개인의 자유주의를 대변하면서 혁명의 중화기(重火器) 노릇을 했다.
현대 프랑스에선 68혁명 세대가 성(性)해방을 만끽했다. 1970년대 이후 간통죄가 폐지됐고, 임신중절수술도 허용됐다. 개인주의와 프리섹스는 최첨단 유행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프랑스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미셸 우엘벡은 1998년 장편 '소립자'를 통해 68혁명 세대가 일으킨 성해방의 축제를 비판했다. 아버지가 다르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주인공인 '소립자'는 바로 그 어머니가 상징하는 성해방주의자들로 인해 서구 사회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잃었다고 봤다. 작가는 '사랑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잔인한 게임이 있을 뿐이며 그대들은 이 게임의 희생자다/ 사랑은 전문가들의 게임일 뿐'이란 시도 썼다. 성해방은 일어났지만, 돈과 시간이 없어서 그 혁명 대열에 참여할 수없는 성적(性的)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한 것이다.
스트로스 칸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자 프랑스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여론 조사에선 59%가 음모론이라고 했다. 수갑을 찬 사진이 언론에 나오자 유명인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누려야 한다고 반발했다. 르 몽드는 사설에서 '누구나 법 앞에선 평등하지만 언론 앞에선 평등하지 않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참을 수 없는 섹스의 가벼움은 점차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여기는 마초(macho)문화가 자유·평등·박애를 표방한 나라를 지배해왔다는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남성 상사의 성희롱을 고발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섹스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스트로스 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덕분에 소설 '소립자'가 제기한 성 풍속도의 변화가 일어나는 셈이다. 역시 인간은 섹스를 통해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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