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6일 부터 18일까지 서울대에서 아시아 시뮬레이션 2011 학회가 있어 참석허려 가는차에 겸사겸사하여 제각시와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주말에는 고려대에 유학중인 아들과 함께 모처럼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도 가졌고 아들이 지내는 외국인학생 기숙사방도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곤 11월 21일부터는 제각시와 처형을 모시고 남도 맛집 순례를 떠났습니다.
24일 여의도에서 갑작스런 약속이 잡히지 않았다면 돌아오기전까지 넉넉하게 맛기행을 하고 남도 맛집 순례의 하이라이트인 곽재구 시인과의 조우도 느긋하게 했을겁니다.
몇년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곽재구 시인의 '화진포'라는 시를 접한 제각시는 숨이 멋는듯 하였답니다.
" .... 만세교 지나 함흥 여관집 큰아들 기선이 아재 .... "
정확하게 장인어른 함자와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기전까지 이곳의 식구들에게 이골이 나도록 들려준 함흥시 만세리에 있는 함흥여관이 시인의 시에 있었습니다.
제 각시 6살때 돌아가신 장인 어른의 함자가 '기'자 '선'자를 쓰셨습니다. 함흥 만세교지나 함흥여관집 외동아들이셨고 함흥고보를 나온 수재셨답니다.
난리만 피하고 오라는 어른들의 성화에 홀홀단신 바람찬 흥남부두를 뒤로하고 피난선에 몸을 실었답니다.
거제도를 거쳐 속초에 자리를 잡은 어른은 고향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술과 눈물로 뻥뚤린 가슴을 달래다 한 많은 생을 마치셨답니다.
이 시는 장인어른의 삶을 그대로 녹여놓은 한편의 인간드라마이기도 하구요.
제 각시는 시인이 근무하는 순천대학교로 전화를 걸어 안식년으로 인도여행을 하고 있던 시인과 이메일을 주고받을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곤 이번 여행에서 곽재구 시인에게 순천의 별미라는 칼국수와 팥죽을 대접받고 작년 여행했다는 인도에 관한 수필집도 한권 선물 받았답니다.
"
화진포
곽재구
대전차장애물 징검다리처럼 코스모스 꽃길 위에 놓였습니다
만세교 지나 함흥 여관집 큰아들 기선이 아재
이곳 바다에서 사십년 동안 소주병 붙들고 울며 살았습니다
돈은 벌어서 뭐해 고향에 다 있는데 밤이나 낮이나
지나는 사람 붙잡고 소주 한잔씩 권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헌 오징어처럼 파도에 떠밀려 죽었습니다
대전차장애물 구렁이처럼 코스모스 꽃길 휘감았습니다
너두 한잔 해라 이놈 얼룩무늬 콘크리트 장벽 향하여
고래고래 소주 한잔 따르던 기선이 아재 꽃길 속에 설핏 보았습니다.
"
바로 이 '화진포' 시가 장인어른의 삶을 세상에 드러내 주엇고 또 곽재구 시인과 인연을 맺어준거지요.
살다보니 미국에서도 함흥여관을 기억하는 나이드신 함경도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어떤분은 공산당의 검문을 피해 함흥여관 다락방에 숨어 목숨을 부지했다고 하구요.
이시는 곽재구 시인이 세월이 한참지나 1980년대 초반 포구에 관한 연작시를 구상할때 속초지역을 취재여행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날 저녘 여관방에서 쓴 시라고 합니다.
시를 통해 이산의 아픔을 간직하고 떠난 작품 속의 인물의 후손과 시인이 조우하는 일이 2011년 11월 22일 일어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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