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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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천명에서의 회고(2) : 우리세대 남자들의 인생

忍齋 黃薔 李相遠 2012. 12. 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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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세대 남자들의 인생

 

 

 

이제 대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갈수록 심해지는 네거티브 공세는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더하게 되었다는 탄식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지역갈등은 둔화되는 추세지만 세대간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0~30세대와 50이후 세대의 지지 대상에서 갈수록 정반대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대부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있는 우리 세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쩌면 샌드위치 세대인 우리들이 자식들 세대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가.

그런 마음에서 우리들이 살아 왔던 지난 시대 상황과 현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샌드위치 세대들 중에서도 80년도에 고교를 졸업한 우리들은 그 정중앙에 위치한 세대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은 박통이 등장하면서부터 태어나서 그 체제하에서 고교를 다녔던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우리들은 권위주의적인 윗세대와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는 민주화된 시대에 자란 아랫세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까지 윗세대를 섬기며 살아야 했지만, 아랫세대에게는 그들의 사고를 이해하며 솔선수범하며 살아야만 우리세대의 권위를 존중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세대의 도리라는 생각으로 승화시켜 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입시제 하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6년 위 세대(중학교 입시 세대)와 4년 위 세대(고교 입시 세대) 보다는 행복한 중고교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입시제 하에 다녔던 선배들은 이미 중학교나 고교 시절부터 학벌이 나뉘어져 서로의 정서가 구분될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들 세대에는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도 고1 겨울방학 2달을 호떡사업을 하며 보냈는데도 3과목 만으로 대학을 갈수 있었던 입시제도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괜찮다는 대학을 가게 되었던 것이니.^^)

 

우리가 졸업하고 나니 전통이 갑자기 등장하여 대학입시제를 확 바꾸어버려 재수했던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했고, 이어서 통금해제ㆍ교복/두발 자율화 등으로 그전의 풍습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통제가 완화된 시절에 고교를 다녔던 세대들과 박통 체제하에서 막강한 군사훈련을 받으며 고교를 마친 우리들과는 적지 않은 의식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우리들 윗세대들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우리 아래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실리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시대 변화가 가장 컸던 시점에 우리들이 살아왔기에 우리가 위~아래 세대를 모두 이해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던 우리는 80년도에 고교를 졸업 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사회의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우리가 어린시절 싫어했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어른으로 대접받는 것을 쫒아가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님들은 유교시대 문화가 지배했던 대가족 시대상황에서 아버지라는 직함 만으로 권위가 유지될 수 있었으나, 핵가족화 되며 아내들의 목소리가 커져버린 현 시대에서 우리들에게 아버지라는 권위는 없어진 채 오로지 의무만을 요구받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갈수록 아버지의 아들들은 엄마의 딸들 보다 뒤처지게 되었고, 젊은이들의 부부관도 우리 때와는 정반대로 남필종부 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고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우리들 각자는 부모와 지인들로부터 어느 대학을 갔는가, 어느 직장에 갔는가로

평가되어졌고 배우자가 생기고는 그 차이를 더욱 실감하며 살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40대가 되어서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등으로 삶의 점수가 매겨진 것으로 알고 스스로 보이지 않는 굴레를 만들어 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자식이 어느 대학에 갔느냐에 따라 미래에 대한 가치를 두게 되었고, 50을 넘어서는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노후에 대한 걱정을 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래도 자식들에게 어느 정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우리들은 더 이상 자식들에게 기대며 살 생각을 꿈도 꾸지 않은 채 그저 자식들이 앞가림 제대로 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지금껏 우리가 잘 살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회상해 본다.

 

그것은 남자로 인생을 살면서 세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자식으로서,남편으로서,아버지로서.

먼저 자식으로서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일게다.

그래서 어릴적에는 공부 잘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제대로 된 직장을 들어가서 괜찮은 색시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나서는 손자를 낳아 대를 이어주는 것이었고 살아가면서 때 되면 부모님께 성의를 표시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현재 되돌아보니 이 모두를 제대로 혼자서 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어릴적에는 혼자서의 책임이었으나, 결혼 한 이후에는 아내란 존재가 해주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보니 어쩌면 우리들 맘과 달리 부모님들께서는 서운함이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한 이후에는 며느리의 언행이 아들의 생각으로 간주당하는 것이기에.

그런데도 우리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그런 부모님들의 생각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미 아내의 삶의 방식대로 길들어져 버린 지도 모르고.

본인은 홀로 40년 살다 떠나신 아버지가 계셨다.

그러나 정작 내가 돌싱이 되어 1년반을 지내보고서야 내 아버지의 처절한 고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나니 내가 효도라고 했던 것들이 아버지의 기대에 얼마나 못 미쳤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도 떠나시기 전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나 같은 자식은 세상에 없다고 말해주셨던 것이다.

 

되돌아보니, 우리들 부모님들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아들이 가장으로서 존중 받고 당신들께 행하는 효라는 행동들도 아들이 주도하여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크고 작건 간에 상관없이 아들이 자신의 형편에 맞게 진심으로 성의를 표시하면 부모님은 그것으로 뿌듯함을 느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떠나신지 5년이 지나고서야.

그래서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신 친구들에게 감히 제언을 해본다. 부모님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해보라고. 그리고 결혼 전의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잊지 말라고. 그렇게 직접 부모님과 진실된 소통을 한다면 그 자체 만으로 당신들을 잊지 않는 아들을 고맙게 생각하시리라 생각된다. 아내들에게는 말 할 필요 없이.

 

두 번째는 아내가 만족하는 남편 노릇을 잘 하는 것일게다.

결혼을 해서는 그전까지 함께 살았던 부모ㆍ형제와 떨어져 아내란 사람과 평생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갈수록 아내들의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시대상황에 따라 우리들도 어느덧 아내들의 요구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 어릴적 부터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각자 결혼한 지 20년 이상 지나버린 지금에는 나와 상당히 다른 사고를 갖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고교 동창회에 나가보니 어릴적에는 잘 몰랐으나 40대에 만난 친구들 중에 나와 상당히 공감대가 통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각자 자신들의 현실에 맞는 부부의 형태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건 현재 우리들은 아내와 더불어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자식들이란 어차피 결혼하게 되면 떠나가게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몇가지 유형별 방법을 제시해 본다.

 

아내 경제력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경우는 아내의 능력을 인정해주며 아내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며 살아가되, 가장으로서의 권위에 대해 몇가지 사항을 지켜달라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남들에게는 자신의 아내 생각이 어떻다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면 주변사람들은 자신을 이미 아내 말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버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정 아내 얘기를 하려면 자신의 아내가 남들에게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만 얘기하면 될 것이다.

고집이 센 아내와 사는 경우에는 그 고집을 꺾으려 하면 가정이 깨지게 된다. 그러니 가정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고집을 주관이 뚜렷하다고 덕담을 해주며 자신이 해야 할 도리는 아내가 알 필요 없이 해야 한다. 그리고 남들에게는 아내 덕이라고 하여 나중에 아내가 남들에게 좋은 얘기를 들으면 조금씩 남편이 알아서 하는 것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니 아내를 설득하려 하면 갈등만 더하니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기 존중감이 강한 경우에는 무조건 아내가 최고라는 말을 해주어야 한다. 특히 자식들 앞에서.

그리고 아내가 도리를 제대로 했을 때는 그 공을 널리 알려 남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하면 더욱 잘하려 할 것이다. 그런 아내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여인의 훌륭한 점을 말하면 안 된다. 어머니의 얘기는 물론.

단순한 아내에게는 그때 그때마다 아버지나 오빠처럼 자상하게 알려주면 된다. 그리고 잘못한 경우에는 지적하기 보다는 감싸안아주는 모습을 보이면 남편의 말을 무조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공통적으로는 아내에게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는 말, 착하다는 말을 주문 외우듯 신념을 갖고 계속 읊어대면 점점 더 이쁘고 착한 행동을 하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가 해대는 잔소리는 성의껏 들어주는 태도를 보이면서. ^^

 

마지막으로 자식들이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에는 대가족하에서 부모님들께서 조부모님께 행하는 것들을 보면서 부모님을 대하는 도리를 배우며 자랐고, 많은 형제들 속에서는 자신이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체험하며 자랐기에 저절로 자식의 도리와 사회성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핵가족화 되면서 자란 우리의 자식들은 오로지 엄마의 가르침 속에서 사춘기가 되는 중학교 때까지 거의 여선생님으로 편성된 학교 교육을 받고 자라게 된 것이다. 게다가 우리 때와 달리 IT기술의 발달로 부모가 모르는 지네덜 끼리의 소통공간을 갖고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보니 부모의 말 보다 지네덜의 통신수단의 정보를 더 신뢰하게 되었고, 나꼼수 같은 언론의 얘기에 솔깃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과거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 바뀐 교과서에서 배운 가치관이 우리 때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또한 역사는 거의 배우지 않기에 역사의식은 상대적으로 거의 무지한 상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젊은이들은 박통시절의 공과를 냉철히 보기 보다는 독재의 단점만 인식하고 있고, 참여정부시절의 실정보다는 엄청난 집회 등을 보며 자유방임적인 모습만을 제대로 된 민주주의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시대 변화로 인해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젊은이들과 부모세대가 정반대 지지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 같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된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먼저 이제는 더 이상 자식들이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 알아서 대우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시대에 맞는 아버지의 도리를 하고 살면 될 것 같다.

자식들이 사춘기 즈음이 되면 말로써가 아니라 나날이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자식들을 지적하기 보다는 자식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아버지의 의견을 말해주는 정도로 해야 소통이 될 것이다. 그때부터는 부모니까 무조건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으니.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는 최대한의 자유를 주되, 지켜야 할 것들을 옵션 식으로 상의해서 정하는 정도로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래놓고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정해진 룰에 의해 이성적으로 이해를 시키고 스스로 감수하도록 해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으니.

 

더 커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완전히 품을 떠나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웃집 처럼 생각해야 서운함이 없을 것이다. 찾아오면 좋고, 안 와도 서운할 것 없는 것 처럼.

 

어느덧 이제 우리 친구들도 대략 10년 후에는 거의 다 자식들 떠나보내고 부부만이 살게 되겠지.

그러나 아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은 우리 세대의 경우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노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함께 할 수 없을테니.

그래도 아내와 둘이서만 보내기에는 우리의 미래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런 미래가 훤히 보여선지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임들이 다시금 소중하게 여겨진다.

아내가 함께 해주지 않는 경우에 만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우리 친구들이니까. ^^

출처 : 장훈고일사회
글쓴이 : 신 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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