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4. ETIC/41_스크랩

[스크랩] 대조영 보다 보면 엉성하게 나오는 돌궐..

忍齋 黃薔 李相遠 2013. 3. 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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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을 즐겨보는편인데 역사왜곡은 그렇다고 치고 보는 편이지만..

가끔 나오던 묵철을 다루던 내용 보면 개인적으로 진짜 안습이었습니다.

오늘도 보니 묵철이 보낸 묵철아들과 돌궐장수가 대조영과 발해를 추켜세우는 장면을 보면서..설마 진짜로? 이런생각마저 들더군요.


솔직히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200년넘게 장수한 이유중의 하나가

묵철의 돌궐이 당군을 막아줘서 당군이 직접 발해를 칠수없게 만들어 그사이에 열심히 힘을 키웠던게 주요했거든요.


역사적인 현실은

드라마 처럼 당시 대조영이나 당나라의 설인귀같은 애들이  묵철을 만만하게 보거나 맞장뜰수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너무 만만한넘으로 나오는거 같아서 좀 아쉽더군요.


(돌궐1제국의 영토)

 

역사상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최초의 유목민제국을 세웠던 돌궐은 한때

서돌궐과 동돌궐로 분리되었지만

그강성한 힘때문에

동방에선 중국의  북주,북제가 열심히 섬겼다고 나옵니다.

당시 기록에 돌궐 칸들이 북주와 북제를 자신들에게 많은조공을 바치는 귀여운넘들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수,당 때도 무시를 못했죠

특히 당제국은 초창기 돌궐의 군사적 지원때문에 커졌던 신속하게 반란을 성공한 국가였습니다.


서방에서도 당시 사산조 페르시아제국과 동로마제국에서 돌궐의 눈치를 봐야했었습니다.

돌궐기마부대가

지금이란의 북부지방을 장악하고

당시 동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지금의 흑해일대까지 쳐들어가는 상황이라 막기에 급급했으니까요


당시 돌궐칸이 동로마제국황제에게 보낸 지금도 남아있는 편지의 제목은

‘전 세계 일곱 인종의 총사령관, 일곱 기후대의 통치자 카간으로부터 로마황제에게.’

입니다. 돌궐그들의 당당했던 자부심이 1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느껴지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고구려보다 좀 빠른 시기에 수나라의 1대황제인 문제의 이간질로 인한 내분으로

붕괴되고 잔존세력은 당제국에 치명적으로 망한후 당에 복속하며 용병으로 이용되다가 

대조영의 발해보다 좀 빠른시기에 독립운동이 성공했죠


드라마 대조영에  묵철(默綴, 투르크어 bak-chor의 전사)로 나오는

카파간 카간(Qapaghan Qaghan)은 동동궐 제국을 부흥시킨..정확히 말하면 당제국에 망한 돌궐제1제국을

형인 쿠틀룩과 함께 다시 일으켜 세운 위대한 전사입니다.

중국역사책에선 변방오랑케우두머리였다며 포악어쩌고 하면서 낮추어 악평만 기록했지만

돌궐인들이 직접세우고 여러나라말로 기록해서 남긴 비문에는

돌궐민족의 위대한 민족영웅으로 나옵니다.

그가 형이 죽은 이후 왕이될때가 692년당시 27살..

대조영이 발해를 세울려고 영주에서 거란과 티격태격할때 나이는 많이잡아야 34~5살이었습니다.

현실의 대조영보다 훨씬 어린 청년군주죠

당시 드라마에선 다늙은 할아부지로 나왔지만..^^;



호쇼 차이담(Khosho Tsaidam)의 비문들


당시 많은 고구려후손들도 이 새로운 돌궐정부에 가세해서 고문간 같은 분들은 카파간의 사위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암튼 위 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당의 수도 장안가까운곳에 저렇게 커다란 제국을 세워 당시 측천무후가 5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쳐도

오히려  지고 패하는 와중에 결국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자기가 왕으로세워다가 끌어낸 중종(中宗)의 아들이

그의 딸을 아내로 맞는 것을 허락하게되었었죠


넓은 영토 막강한 국력 을 갖춘 돌궐제2제국을 완성한

당시 카파간 카간(Qapaghan Qaghan)은 지금도 여러책에서 돌궐의마지막 불꽃이라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저지도에는 안나왔지만 거란의 이진충손만영이  봉기했던 영주지역을

, 역시 드라마에선 좀 이상하게 나왔지만 막강한 군주였던 손만영은 대당제국의 17만대군을 전멸시키고 위력적으로 영토를 넓혀가는

것때문에 돌궐의 경계를 받아 결국  카파간 카간에게 망합니다 . ,

차지하는 덕택에 중국과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당시 중국이 돌궐과전력을 다해싸우느라 정신이없는틈을 이용해 국가가 기반을 다지고

국력을 키워 후에

당이 돌궐이 망한후 만주쪽에 눈을 돌려 찝쩍거릴때

과감하게 장문휴 장군을 동원해 산동반도를 공략하고

발해2대황제가 직접 북경일대까지 쳐들어가

당시 당나라가 북경일대에 400km에 이르는 참호를 파 발해의 기마군단을 기동력을 막아 간신히 발해군의 전면적인 남침을 막아내게

했던 막강한 군사력을 키울수있었죠


ps

후일담이지만

돌궐은 결국 위구르 제국에 망하고

구성원대다수는 서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와중에 이슬람을 받아들여




셀주크투르크제국을 세워

이슬람를 대표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해서

동로마제국군대를 만지케르트 전투 에서

 

(당시 동로마제국의 황제는 훌륭한 왕이었지만 기득권을 침해당해 복수의 칼을 갈던  매국노들이 사사건건 반대하고 방해하더니  

결국 전투에서 열심히 투르크군대와 싸우는 황제뒤쪽에서 반대파들이 황제가 죽었다고 외치면서 병사들이 흩어지게 하는 와중에 전투에서 지고 말았죠. 그매국노들은 동로마제국을 차지한이후 투르크가 풀어준 전황제의 눈알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어 죽입니다.

결국 그들은 권력을 잡는데 성공했지만 나라는 약소국이되어버렸죠)

 

물리치고 당시 동로마제국의 영토의 1/2 인구의 1/2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예루살렘을 차지해서

결국 당시 전유럽이 힘을 모아 십자군원정이란걸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죠

 

유럽인들입장에선 성전운운하지만 우리눈으로 보면 십자군전쟁이란 결국 당시 예루살렘을 차지한

 

투르크(이슬람으로 개종한 돌궐)vs유럽연합군간의 전쟁일뿐이죠




그후 몽고의 세계정복시대와 티무르제국의 시대를 거친후에

이들의 직계인 오스만투르크족이

지금의 아나톨리아반도전체와 발칸반도 흑해연안 아프리카북부 중동등등을 점령하고

그와중에  바예지드 1세라는 훌륭한 대왕이 나와

 

바예지드 1세는 동로마제국수도인 이스탄불을 제외한 전 발칸발도를 재패하고

당시 부르고뉴 왕이 이끌던 서유렵십자군 수십만명을 니코폴리스 전투 에서 전멸시킵니다.

 

하지만

그후 중앙아시아와 북인도를 평정한 일대 영웅인 티무르와 앙카라에서 양쪽 거의 100만명의 군대를 동원해싸운 전투에서 패해

잡혀죽고 20~30년동안 혼란기를 거쳐 동로마제국의 수명이 몇십년 늘어나게되었죠


(이와중에 당시 발칸의 강대국 세르비아제국군 수십만대군이 코소보에서 용감하게 오스만투르크제국군과 싸우다가 전멸당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르비아인들에겐 코소보는 자신들의 조상님들이 유럽기독교권을 지키다 죽은 자랑스런 성전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코소보에는 원주민 세르비아인들보다 알바니아인들이 많아 그게 평소 세르비아의 반미적인태도와

이지역내에서 기득권을 내세우는 세르비아인들과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알바니아인들간의 인종문제와 역어

나토와 미군에게 인권이 국가의 주권보다 우선이라는 지금도 옳고그름에 말많은 해결안된 핑계로

 

세르비아는 대공습을 당해 큰 피해를 입고 나라가 거의 망했죠.)

 

그후 수십년후 다시 재기한 오스만투르크제국은 마침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반도부터 북아프리카 이라크에 이르는

 

큰제국을 세웁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드라큘라백작으로 아는 현 루마니아의 전쟁영웅인 당시 왈라키아 공국의 우두머리인 드라귤라백작이 

이당시 오스만투르크제국군의7번에 걸친 공격을 막아내고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드라큘라백작이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때문에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구하는것에 대해 저항하는 매국노들과

 

당시 이지역을 쥐고 흔들던 이탈리아 상인들의 배반으로 결국 8번째는 장렬하게 전사하고 루마니아도 오스만투르크에 점령당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루마니아에선 조국을 지켰던 위대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있습니다, 드라큘라백작의 성도 잘보존되어 있죠

암튼 유럽동부에 거주한 돌궐...은 오스만투르크라는 이름으로 

중세~근세 유럽최강의 강대국으로 수백년을 보냅니다

 

마키아밸리가 쓴 군주론의 이상적인 모델이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황제였죠

암튼

 

그당시 유럽전체가 일치단결해서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싸웠습니다.

해상에선 레판토해전..

육상에선 1,2차 빈(현 오스트리아 수도)전투에서 간신히 서유럽군대가 이기면서

오스만투르크제국의 14C부터 16C까지 계속되던 오스만투르크의 유럽진출은 17C말부터 중지되었죠.

그러다가 역시 흥망성쇠의 와중에 1차세계대전당시 독일편을 들었다가 망한후에

왕정이 공화제로 바뀌면서 지금의 터키공화국이 되어

6.25때 한국전에서 한군을 도와 군대를 파견해 용맹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미군다음으로 많은 병력이 죽었기때문에 터키도 한국에 대해 나름의 뿌듯한 자부심같은게있고

그런거때문에 형제의나라운운하면서 한국에서 많은 군사무기도 사가는 관계가되었죠..

 

참고로 지금도 중앙아시아일대의 국가중 ~~스탄 이라는 국가들은 터키와 다들 형제국 관계입니다.

같은 돌궐..투르크민족이라서..

 

대조영 보다 보면 엉성하게 나오는 돌궐이 아쉬워서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출처 : mow
글쓴이 : 조광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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