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
역사의 비극은 1895년 10월8일(음력8월 20일)미명의 새벽에 일어났다.
아래에 있는 글은 이수광의 <나는 조선의 국모다>1권에 나오는 장면으로 명성황후를 일본인들이 살해하고 능욕하는 내용이다.
미야모토 소위는 가쁜 숨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이경직 궁내부대신이 쓰러지자 궁녀들이 방구석으로 몰려가 몸을 떨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 궁내부대신의 시체를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피비린내가 코를 튕기고 있었다. (왕비인가?) 미야모토 소위는 걸음을 멈추었다. 궁녀들 중에 섞여 있던 한 여인이 그를 물처럼 고요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바짝 긴장했다. 여인은 궁녀들과 똑같은 평복을 입고 있었으나 은연중 귀인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검고 윤이 나는 머리카락에 진부분을 사용한 얼굴이 창백했다. 눈은 차고 날카로웠다. (조선의 왕비가 틀림없어!) 여인은 자신의 눈앞에서 궁내부대신이 피를 흘리며 죽었는데도 두려운 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선의 왕비가 여걸(女傑)이라는 말이 한성에 거류하는 일본인들 사이에 파다하게 떠돌던 것을 미야모토 소위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미야모토 소위가 멈칫하고 있는 틈을 노려 여인이 재빨리 마루로 뛰어 나갔다. 궁녀들도 황급히 여인의 뒤를 따라 뛰었다. "여우가 도망간다!" "여우를 잡아라!" 낭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여우는 조선의 왕비 명성황후의 별명이었다. 미우라 공사와 스기무라 일등 서기관이 조선의 왕비 살해계획을 세우면서 방략서에 '여우사냥'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미야모토 소위는 비호처럼 몸을 날려 여인의 어깨를 낚아챘다. 다급했다. 여인은 걸음이 빠르지 못했다. 미야모토 소위가 어깨를 낚아채자 옷자락에 걸려 마룻바닥 위에 쓰러져 뒹굴었다.
그러자 궁녀들이 일제히 여인의 앞을 가로 막았다. "베어라!" 호리구치가 소리를 질렀다. 낭인들이 궁녀들에게 달려들어 일본도를 휘둘렀다.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고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미야모토 소위는 몸을 날려 마룻바닥에 쓰러진 여인의 가슴을 군화발로 밟고 군도를 복부에 힘껏 내려찍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던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두 손으로 미야모토 소위의 군도를 움켜잡았다. "여우를 잡았다! 내가 조선의 왕비를 잡았다!"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를 뽑아들고 맹수처럼 포효했다. 그러자 낭인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여인에게 달려왔다.
"아들아, 내 아들아......" 여인은 군도를 움켜 쥐고 있던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군도에 손이 갈라져 피투성이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다시 한번 여인의 복부를 군도로 힘껏 내려 찍은 다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낭인들이 앞을 다투어 여인에게 난도질을 해댔다. 난도질 하는 낭인들 중엔 테라자키도 보이고 니카무라도 보였다. "어이, 미야모토 소위!" 호리구치 영살보가 미야모토 소위를 불렀다.
"핫!" 미야모토 소위는 재빨리 호리구치 영사보에게 달려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대는 조선 왕비의 얼굴을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저 여인을 여우라고 부르는가?"
미야모토 소위는 대답이 궁해 우물쭈물했다.
여인에게서 풍기던 기품이나 위엄을 호리구치 영사보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제군들, 비켜라!"
호리구치 영사보가 품 속에서 사진을 꺼내며 낭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낭인들이 재빨리 여인의 몸에서 떨어져 양쪽으로 갈라섰다. "횃불을 가져 와라!" 낭인 복장을 한 하리야마가 서둘러 횃불을 들고 달려왔다.
호리구치 영사보가 횃불을 비쳐 가면서 여인의 얼굴과 사진을 대조했다. "여우가 틀림없다!"
드디어 호리구치 영사보가 횃불을 하리야마에게 넘겨 주며 말했다.
낭인들이 또다시 와하고 함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다. 미야모토 소위!"
"핫!" "그대는 곤령합으로 가서 조선 왕세자 척을 끌고 와라!"
"왕세자 척 말입니까?" 미야모토 소위는놀라서 호리구치 영사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선의 왕세자 척은 조선의 대통을 계승할 인물이었다.
그러나 척은 곤령합에서 왕비의 소재를 알려고 혈안이 된 일본인들로부터 상투를 휘어 잡히고 일본도 칼등으로 얻어맞아 혼절을 한 뒤 일본인들에게 연금되어 있었다.
"그렇다! 조선의 왕세자 척에게 왕비의 얼굴을 확인하게 하겠다!" 미야모토 소위는 부동자세를 취하고 나서 몸을 돌렸다. "제군들!" 미야모토 소위는 낭인 복장으로 변장을 한 부하들을 불렀다. "핫!" 그들이 재빨리 미야모토 소위 앞에 달려와 정렬을 했다. "제군들은 나를 따르라!" 미야모토 소위는 하오리 차림의 부하들을 이끌고 곤령합으로 달려갔다.
어느덧 날이 번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가 옥호루의 동쪽 모퉁이를 돌면서 남쪽 하늘을 쳐다보자 조선의 국왕과 대신들이 정사를 보는 근정전(勤正殿)의 지붕이 희미한 새벽빛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근정전 뒷뜰은 일본군과 낭인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었다. 여우사냥에 동원된 일본 수비대 병력은 자그마치 1천 명이나 되었다. 조선의 왕세자 척은 곤령합의 큰 방에 갇혀 있었다.
조선 국왕이 지난 밤에 잠을 잤던 방이었다. 그러나 조선 국왕은 일본인들에 의해 장안당으로 옮겨져 연금되어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부하들을 지휘하여 왕세자 척을 끌어내었다. 왕세자 척은 일본인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수모를 당했기 때문인지 얼굴이 창백했다. 눈빛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옥호루로 갑시다!" 왕세자 척은 모을 부들부들 떨면서 미야모토 소위를 쳐다보았다.
"끌고 가라!" 미야모토 소위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했다. 부하들이 재빨리 조선의 왕세자 척의 어깨를 낚아채 옥호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왕세자 척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비틀대며 옥호루로 끌려왔다.
"이 여인이 조선 왕비가 맞소?" 호리구치 영사보가 조선 왕세자에게 물었다. 조선말이었다.
"이 여자가 조선국 왕비냐고 묻지 않았나?" 호리구치 영사보가 재차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척은 그때서야 비틀대는 걸음으로 여인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옥호루의 넓은 마루는 일본도를 뽑아 든 낭인들에 의해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기저기 궁녀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선혈이 낭자했다.
조선의 왕세자 척은 일본인들의 살벌한 기세에 짓눌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똑똑히 보아라!"
호리구치 영사보가 왕세자 척의 상투를 쥐고 흔들었다. "마, 맞소......"
왕세자 척이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그는 어머니인 조선 왕비의 죽음보다 그 참혹한 시신으로 인해 공포에 질려 있었다.
"틀림없나?" "틀림없소. 이분은 조선국 국모요." "데리고 가라! 조선국 국왕과 함께 있게 하라!"
"핫!" 미야모토 소위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미소를 지었다. 조선의 왕세자 척에 의해 그가 여우사냥 작전의 1등 공을 세운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조선의 왕세자 척을 옥호루에서 끌어내었다. 이제는 미우라 공사의 지시가 있을 때 까지 왕세자 척을 장안당으로 옮겨서 연금해야 했다.
"어마마마!" 그때 왕세자 척이 갑자기 미야모토 소위를 뿌리치고 옥호루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어리둥절하여 왕세자 척을 내려다보았다. "어마마마!" 왕세자 척은 비통한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땅바닥에 이마를 짓찧고 있었다.
그때서야 생모를 잃은 슬픔이 북받치는 모양이었다. 울음소리가 처절했다. "빨리 끌고 가라!" 미야모토 소위는 부하들을 다그쳤다. 그의 부하들이 조선 왕세자 척을 발길로 내지르고 잡아 일으켜 잡아당기고 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리가 요란했다. 미야모토 소위가 왕세자 척을 장안당에 연금시키고 돌아오자 미우라 공사가 도착해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미우라 공사를 향해 부동자세를 취했다. 미우라 공사는 육군 중장 출신이었다.
미야모토 소위에게는 하늘 같은 존재였다. 미우라 공사는 귓속말로 호리구치 영사보에게 무엇인가 지시하고, 호리구치 영사보는 그럴 때마다 하이, 하이...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낭인들도 순사들도 미우라 공사에게 깍듯이 존봉(尊奉)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미우라 공사가 일본군 정장을 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옥호루를 떠나갔다. "하기하라!"
미우라 공사가 떠나가자 호리구치 영사보가 하기하라 경부를 불렀다.
"핫!" "조선 왕비의 옷을 벗기고 시신을 불태운다! 미우라 공사게서도 조선 왕비가 맞다고 확인해 주셨다.
여우사냥의 1등 공은 미야모토 타케타로오 소위가 세웠다.!"
"핫!" "하기하라 경부에게 2등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조선인과 열국 공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왕비의 시신을 불태울 준비를 하라!"
"핫!" 하기하하 경부가 부동자세를 취한 뒤 순사들을 이끌고 옥호루의 정원으로 뛰어나갔다.
"테라자키 무사!" "핫!" "그대에게 3등 공을 세울 기회를 준다.
그대들은 조선 왕비의 국부를 검사해 보도록 하라!
요사스러운 조선 왕비가 조선 국왕을 하문(下門)으로 사로잡아 조선이 일본을 멀리하고 러시아를 가까이 하는 정책을 펴게 하였다고 하니 국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검사해 보도록 하라."
"핫!" 호리구치 영사보의 명령이었다. 테라자키와 낭인들이 일제히 조선 왕비의 시신에 달려들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한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을 반대하는 인물로 조선의 왕비를 첫 손가락에 꼽고 있었다.
조선의 국왕은 아버지인 대원군과 부인인 왕비의 싸움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대원군이 권력쟁탈에서 패배하여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왕비의 재가를 받아서 국사를 결정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조선 국왕의 뒤에는 언제나 발이 쳐져 있었고 왕비는 발 뒤에서 국왕을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조선의 대일본 정책은 왕비로 인해 언제나 불리하게 결정되고 있었다. 일본의 역대 공사들은 왕비가 국사에 참여하지 않도록 조선 국왕에게 건의했으나 그럴수록 조선 왕비의 반일 정책은 오히려 공고해 질뿐이었다. 이에 한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사이엔 조선 왕비를 제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분분하게 나돌았고, 호사가들의 입에서는 조선 왕비의 하문이 명기(名器)라 조선 국왕이 꼼짝을 못한다는 야릇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호리구치 영사보는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내 조선 왕비의 시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호리구치 영사보가 먼저 조선 왕비의 국부를 살핀 뒤 낭인들이 차례로 조선 왕비의 국부를 들여다보며 희롱했다.
"미야모토 소위!" "핫!" "그대는 여우사냥의 1등 공을 세웠다. 그대도 왕비의 국부를 확인하라!"
"핫!" 미야모토 소위는 조선 왕비의 시신으로 가까이 가서 국부에 시선을 떨어트렸다.
"보았나?" 호리구치 영사보가 물었다. "핫!" "어떤가?" 회리구치 영사보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여우의 하문일 뿐입니다!" "여우의 하문이라....좋다." 미야모토 소위는 뒤로 물러섰다.
"여우의 하문을 무사들에게 준다. 화장 준비가 끝날 때까지 무사들이 마음대로 처리해도 좋다!
일본 무사의 진취적인 기상을 보여 주어라!" 호리구치 영사보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낭인 하나가 빠르게 조선 왕비의 시신으로 달려들었다. 테라자키였다.
니카무라를 비롯한 다른 낭인들이 왕비의 시신에 엎드리는 테라자키를 향해 환호성을 질러댔다.
시신에 대한 능욕이었다. "화장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기하라 경부가 뛰어들어와 보고를 한 것은 낭인들이 황비의 시신을 능욕하기 시작한 지 20분이 지났을 때였다.
"어디인가?" "옥호루 동쪽 녹원입니다!" "좋다. 끌고 나가 태워라!" "핫!" 하기하라 경부가 낭인들을 지휘하여 조선 왕비의 시신을 이불에 둘둘 말아서 동쪽 녹원(綠苑)으로 달려갔다.
미야모토 소위는 천천히 옥호루의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침내 조선국 왕비를 살해하는 작전이 성공리에 끝난 것이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일본에 돌아가면 영웅이 된다.
미야모토 무사시(官本武臟)의 후예로서 당당히 이름을 떨칠 것이다. 갑자기 옥호루 동쪽 녹원에서 화광(火光)이 치솟았다. 동시에 낭인들의 함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화광이 치솟고 함성이 진동을 하는 옥호루 동쪽 녹원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조선 왕비의 시신은 이불에 둘둘 말려서 장작단 위에 던져져 있었고 낭인들이 장작단을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먼저 조선왕비의 시신을 말아 싼 이불이 빠르게 타 들어 갔다. 다음은 조선 왕비의 시신이 시뻘건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를 허리에 꽂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에서 도 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비로소 자신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1) 명성황후 시해의 범인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 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으나 당시 사건에 개입했던 일본인들을 조사한 우치다 영사는 '왕비 시해의 범인은 미야모토 타케타로오 소위가 유력해 보인다'고 보고한 일이 있으므로 역시 그가 범인일 것이라는 지적이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그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고, 실질적인 시해자는 일본 장주벌을 대표하는 이노우에와 이토오 내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능욕을 당했다는 기록은 "한일합병사"(야마베 겐타로 저 안병무 역) 150쪽에 기록되어 있다. 능욕은 시간(屍姦)을 의미한다.
3) 명성황후의 '국부를 검사했다.'라는 기록은 일본인 자신들의 기록에도 수없이 등장한다. ("청일전쟁과 조선", 280쪽, 박종근 저, 박영재 역)
4) 일본은 그 당시에 조선을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이에 비교했다. 그것은 그들의 외교문서에까지 기록되어 있다. (상기의 "한일합병사"175쪽 아오키(靑木)외무대신의 북방경영 의견서 '.....언젠가는 열강들 사이에 이 고깃덩이를 놓고 서로 물어뜯는 상황이 발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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