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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10. 24.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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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세계 1위 방정식  
2015.10.23 / 홍하상

까만 고무신 신던 이건희, 흰 고무신 생기면 아끼겠다고 구석에 숨겨

이건희와 장난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청년희망펀드에 2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다고 삼성그룹이 밝혔다. 이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 세대를 이어 대한민국 산업계를 이끌어온 2세대 총수들 가운데 얼굴이다. 총수 1세대가 대한민국 경제근대화의 초석을 낳았다면 그가 주도한 2세대는 대한민국 경제를 세계화시켰다. 이 회장의 삶과 업적을 시리즈로 되돌아본다./편집자

먼저 어린 시절의 이건희부터 살펴본다. 이건희 회장은 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진 않다. 이건희는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선친인 이병철은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삼성상회를 경영하고 있었다. 삼성상회는 청과물과 건어물을 취급하는 무역회사로 이병철이 이제 막 사업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였다. 당시 대구에는 이건희 위로도 6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었으므로 그의 어머니는 어린 이건희를 돌보기 어려웠다. 이건희의 어머니인 박두을 여사는 3남인 이건희를 낳은 후 젖을 떼자마자 그를 의령의 시어머니 댁으로 보낸다. 의령의 친가로 보내진 이건희는 갓난 아기때부터 친할머니집에서 친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유모의 손에서 컸다. 유모에게는 이건희 또래의 딸이 있어 그 딸과 함께 오누이처럼 함께 자랐다.

젊은 시절의 이병철 전 삼성회장과 아들 이건희 회장.


그가 엄마를 다시 본 것은 네살이 되어서였다.네살이 되어서 그는 대구의 어머니에게 보내졌던 것이다. 어머니를 처음 보았을 때 이건희는 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때까지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누구냐고 물어보기까지 할 정도였다. 또 형과 누나도 그때 처음 보았다. 누나들을 같은 형제인줄 모르고 ‘네 엄마는 누구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거기서 유치원을 다녔다. 어린 시절의 그는 예상 밖으로 풍족하게 지내지 못했다. 주로 까만 통고무신을 신고 다녔는데, 어쩌다 흰 고무신이 생기면 아낀다고 구석에 숨겨놓고 신을 정도였다. 먹고 살만 한 집안이었지만, 근검절약하는 가풍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증조모 때에 부를 쌓았다. 증조모가 한끼를 덜 먹고 베 한필을 더 짜는데 몰두했다. 안 먹고 안쓰는 것이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시대였다. 증조모 시절에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해서 4백석 지기의 부를 이루었다. 조부는 거기에 1백석을 더 늘려 5백석까지 만들었다. 그 5백석을 이병철의 형인 이병각이 3백석,동생인 이병철이 2백석씩 물려받았다. 대구 시절 그의 집안은 두평짜리 방3개, 세평짜리 방 한 개 등 4개의 방에 모두 열 대여섯식구가 살았다. 이병철 내외와 3남4녀, 그리고 일군들이 함께 살았던 것이다. 방4개에 열대여섯 식구가 살았으니 매우 비좁았다.

유치원 때 이건희가 소풍가는 날, 그의 어머니는 김 다섯장과 삶은 달걀 한개를 다른 형제들보다 더 넣어주었다. 그날이 이건희의 생일날이어서 특별 보너스로 더 준 것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모아온 집안이어서 허풍더풍 쓰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당시 이건희 위로는 이맹희, 이창희 두 형과 인희, 숙희, 순희, 덕희 등 네명이나 되는 누나가 있었다. 이병철은 그 당시 사업 때문에 몹시 바빴고 누나와 형들은 학업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온 가족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 이건희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고 한다. 그날 온가족이 처음으로 만난 것을 기념해서 가족사진을 찍었을 정도였다. 그는 초등학교를 여섯군데나 옮겨다녔다.


비싼 장난감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즐기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던 선친 이병철이 좀더 크게 사업을 하기 위해 1947년 5월 서울로 상경한다. 종로구 혜화동 163-25번지에 60평짜리 집을 사서 자리를 잡고 그 이듬해엔 서울의 종로2가에서 무역회사인 삼성물산공사를 차렸다. 이건희는 종로의 혜화국민학교에 다녔다. 혜화국민학교 2학년 때 6·25가 터졌다.

이병철은 6·25가 일어났을 때 미처 피난가지 못했다. 이병철 일가는 적 치하에서 3개월 동안 상당한 고생을 했다. 자본가여서 인공치하의 내무서에 수시로 불려갔고, 그가 타던 48년형 미국산 시보레 승용차는 징발되어 남로당 총책이었던 박헌영이 타고 다니기도 했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이병철 일가는 9월 28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자 마산으로 내려갔다.

이건희는 거기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마산에 살 땐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대구로 전학을 했다. 대구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부친이 부산의 동광동으로 자리를 옮겨 고철수집업, 설탕과 비료 수입업 등을 했기 때문이다. 그도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되었다. 부산에서는 두 번 전학을 했다.

어린 시절의 이건희 회장.


“건희가 천장에 매달면 끈을 물고 빙빙 돌아가는 비행기, 레일 위를 달리는 모형기차 등 당시로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장난감을 가져와서 함께 놀던 생각은 나는데 말이 없고 장난도 잘 치지 않던 아이라 다른 기억은 거의 없다.”

부산사범부속 초등학교 시절, 4, 5학년을 같이 다녔던 권근술 전 한겨레 신문 사장의 기억이다. 아버지 이병철이 1950년대 피난지 부산에서도 사업에 성공했을 때이니까, 집안은 부유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 비싼 장난감들은 그저 갖고 노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뜯어보고 다시 조립해보는 과학탐구의 대상이었다.

이것은 이건희 뿐만 아니고,그 위의 형들 즉 이맹희와 이창희가 모두 그랬다. 그들 3형제는 신기한 장난감이나 물건이 생기면 갖고 놀다가 결국은 분해해보고 다시 조립하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취미는 줄곧 계속되어 그는 카메라를 뜯어보기도 하고, VTR, 훗날 심지어는 자동차까지 뜯었다가 조립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그의 형 이맹희도 60대에 이르는 나이까지 세계의 명품 AV시스템은 모조리 구입해서 왜 그 성능이 좋은 지 그 구조을 뜯어보고 살펴보는 걸 낙으로 삼을 정도였다.

이건희가 부회장이었던 1980년대초 삼성그룹은 삼성정밀을 설립했다. 삼성이 처음에 카메라 사업에 진출했을 때 그는 삼성정밀 사장을 불러 집에 카메라가 몇대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삼성정밀 사장이 카메라가 한 대밖에 없다고 대답하자 그는 카메라 회사의 사장이면 세계적인 카메라는 다 갖고있으면서 밤낮으로 연구해야한다고 권유한 적도 있었다. 이미 세계 일류 카메라의 구조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이건희는 말은 별로 없고, 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빠지거나 장난감을 뜯어보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이 점은 그의 부친인 이병철도 그랬다. 이병철 회장도 혼자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스타일의 경영인이었다.

“좀체 화를 내는 법도 없었고, 큰 소리와 욕설은 물론 보고 받을 때도 겉으로 좋다,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평생동안 아버지가 큰소리를 내면서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쓴 <묻어둔 이야기>이라는 책에서 그린 아버지의 성격이다.이건희 회장은 수줍어하고,부끄러움을 타며 남 앞에 나서길 싫어하는 체질이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온 것이라고 볼 수있다.


홍하상
작가
E-mail : hasangstory@naver.com
기업인에 관한 책을 많이 써온 작가로 유명하다.

2003년에 국내 최초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을 다룬 책 <이건희, 그의 시선은 10년 후를 바라보고 있다>를 시작으로 <이병철 경영대전>, <정주영 경영정신>,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 <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 등 국내의 기업가를 다룬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그 외에 <일본의 상도>, <중국을 움직이는 10인의 CEO> 등 일본과 중국의 기업인들에 관한 저서가 상당수 있다. 최근에는 <유럽명품기업의 정신>을 출간, 기업과 기업가 정신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1년의 절반 정도를 일본·중국·유럽 등 현장을 누비면서 직접 취재하는, 발로 뛰는 작가이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이후 논픽션 작가로 30여년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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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

[뉴스분석] 쓰러져도 군림하는 실질적 지배자, 이재용 후계구도 준비 안 끝났다
2014-09-28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해 보자. 당장 상속이 개시되고 이재용 부회장 등은 엄청난 규모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미션은 상속세를 합법적으로 다 내고도 아버지의 그룹 지배력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오랫동안 3세 승계에 대비해 왔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 준비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아직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대기업 전문기자인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는 삼성의 후계구도를 왕조 체제에 빗대어 설명한다. 왕조 체제에서는 왕이 죽기 전에는 아들이 왕이 될 수 없다. 왕이 쓰러져 병석에 누워 있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권력은 왕에게 집중돼 있고 왕세자는 왕의 살아생전에 2인자도 될 수 없다. 왕의 존엄과 권위를 탐하는 것은 설령 왕세자라고 하더라도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반역이기 때문이다. 설령 왕이 식물인간이 돼도 왕은 왕이다.

지난 2003년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이 쓰러졌던 때가 있었다. 2주일이 넘도록 병명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했고, 인공호흡기를 차고 의식불명 상태에 들어가자 국민은행 안팎에서는 장례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뒤늦게 비정형성 급성폐렴으로 밝혀졌고 인공호흡을 받은 폐렴환자는 사망률이 100%라는 전례를 깨고 38일만에 회복하고 43일만에 복귀했다. 김 전 행장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 전 행장은 복귀하자마자 부행장 세 명을 전격 경질했다. 김 행장의 입원 기간 중 회사 경영 방침과 어긋나는 조치를 취했다는 게 이유였다. 버젓이 행장이 살아있는데 포스트 김정태를 노리고 움직였다는 데 분노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국민은행이 재벌 체제는 아니지만 역시 왕은 죽기 전까지 왕이고, 왕의 권위에 도전했다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5월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연합뉴스


삼성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66년 사카린 사건으로 이병철 전 회장이 물러나고 이건희 회장의 형 이맹희씨가 경영 전면에 나섰다. 왕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왕세자가 왕위에 올라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맹희씨의 독단적인 행동은 이병철 전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고 엉뚱하게도 청와대 투서 사건에 엮여 누명을 쓰고 쫓겨난다. 투서를 보낸 건 이창희씨였으나 이병철 전 회장은 이맹희씨를 함께 내친다.


설령 왕위를 물려받을 게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왕이 죽기 전까지는 왕이 아니다. 왕세자는 언제라도 축출될 수 있다. 그게 왕조의 운영 원리고, 왕의 권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맹희씨는 왕의 눈 밖에 났고 평생을 세상의 바깥으로 떠돌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 살아생전에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든 권력은 왕에게 집중돼 있고 왕이 죽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권력 승계가 시작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13조원에 육박한다. 삼성전자 지분이 3.4%, 삼성생명 지분이 20.8%, 제일모직(에버랜드) 지분이 3.7%, 그리고 삼성물산과 삼성종합화학 지분이 각각 1.4%와 1.1%씩 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1년 평균 주가로 환산한 결과 이것만 해도 11조7180억원. 여기에 비상장 주식이 4790억원 정도 되고 부동산이 공시가격 기준으로 6780억원 정도 더 있다.

최대 50%의 상속세 세율이 적용되지만 여러 가지 상속세를 줄이는 합법적인 수단이 있다. 때문에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물려 받는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내야 할 상속세는 적게는 3조원에서 많아봐야 5조원 정도가 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보유 지분은 삼성전자 0.6%, 제일모직 25.1%, 삼성SDS 11.3%, 삼성자산운용 7.7% 등 모두 더해도 3조원이 채 안 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상속세를 다 내고 아버지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두 가지 미션을 모두 수행하려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넘겨받아야 한다.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분도 내다 팔 수 없다. 결국 팔 수 있는 지분은 삼성SDS 정도 밖에 없는데 삼성SDS를 상장 시킨 뒤 보유 지분을 모두 내다 팔면 최대 3조원까지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믿는 구석은 삼성전자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0.6%와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3.4%를 더하면 4.0%. 이것만 해도 7조원, 주가가 한창 좋았을 때는 9조원에 육박했을 지분이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 지분을 물려받고 난 뒤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배당으로 상속세를 내려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 동안 배당을 적게 주면서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도 이런 계산에서일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이건희 일가 개인지분 현황 ⓒ하이투자증권 정리.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

이트레이드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이익잉여금은 올해 연말 177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배당 여력이 차고 넘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에는 30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도 배당은 2조원에 그쳤다. 배당 성향은 7% 수준. 지난 5년 평균 배당 성향도 7% 수준에 그쳤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상속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배당을 적게 주고, 주가를 낮게 가져가면서 상속 이후 배당을 최대한 늘리는 게 유리하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떠도는 유력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삼성생명을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 지주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이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 자격을 유지하면서 제일모직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되지 않도록 할 수 있고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이 시나리오의 치명적인 문제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가져간다는 가정에서만 가능하다는 데 있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의 산업자본 소유가 금지된다. 과거에는 은행이 아닌 보험회사나 금융투자회사 같은 지주회사가 일반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하게 된다. 삼성생명이 지주회사가 되면 삼성전자 지분을 내다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이다. 이건희 회장과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을 지배하면서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들의 위탁 자산으로 삼성전자를 우회 지배하고 삼성전자를 통해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구조인데 정작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크지 않다는 게 약점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면 삼성그룹 전체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는 구조다.

이밖에도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이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보험사와 증권사 등이 보유한 일반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을 2017년까지 5%로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보험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계열사 지분을 취득원가가 아니라 시가 기준으로 계산해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대부분을 처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간금융지주회사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도입하자는 논의만 있었을 뿐 아직 허용돼 있지 않은 상태다. 제일모직 밑에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두고 삼성생명이 계열사로 편입되는 방안이지만 결국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을 밀어붙일 수도 없고 그냥 버틸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삼성 특혜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국회에서 금융산업 분리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에는 상속 작업을 시작할 수 없다. 금산분리를 피할 수 없다면 후계 구도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하고, 자칫 상속이 시작된 뒤 금산분리 폭탄이 터질 경우 그룹이 반 토막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끄는 게 최선인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이 지금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보험지주회사나 중간금융지주회사 등이 허용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게 된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생명 지주회사의 지분을 맞교환해 삼성전자의 지분을 최대한 늘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 지분은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을 조금 줄이더라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게 이재용 후계 구도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6.5%까지 늘어나면 삼성전자가 10조원을 배당으로 뿌릴 경우 이 부회장에게는 6500억원이 떨어진다. 이자와 배당소득세 등을 내고도 4500억원. 상속세는 5년 분할 납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삼성SDS 지분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삼성전자에서 배당을 받아 납부하면 상속세 5조원은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닐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삼성SDS의 기업 가치가 충분히 오르는 동시에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가는 충분히 떨어져서 상속세를 손쉽게 털어내는 것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금산분리 규제가 파격적으로 완화돼 손쉽게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아직 상속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야기다. 시간은 과연 이재용 부회장의 편일까.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만약 지주회사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상속이 개시된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떠밀리듯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하고 계열사 상당 부분을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 이재용 후계 구도와 관련한 수많은 시나리오가 나돌지만 어떤 시나리오도 지배력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상속이 시작되는 게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왕조 체제에서는 아들이 왕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 왕이 무능하면 백성들이 고통스럽다. 삼성 같은 재벌 체제에서는 회장이 무능하면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거나 아예 망할 수도 있다. 이병철과 이건희 회장은 평가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집단으로 키워낸 탁월한 경영자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재용 부회장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정도의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검증된 바가 없다.

재벌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다는 관점과 오히려 경제력 집중으로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관점이 충돌하지만 분명한 건 3세 경영으로 들어가면서 삼성이 직면한 위험이 한국 경제의 시스템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대마불사라고 하지만 과거 경험으로 보면 대마가 무너지면 최종 대부자는 국가가 된다. 국가적인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사회적 논의의 영역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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