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살인마 전두환 퇴임 때 집무실 캐비닛에 550억… 살인마 노태우 에게 통치자금 넘겨줘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11. 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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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전두환‬ 을 처형하라! 한손엔 몽둥이 한손엔 짱돌을 움켜쥐고 연희동으로 몰려가 살인마 전두환을 주살하라!!]


2015.11.08 / 최보식 / congchi@chosun.com

[最强 데이터베이스 보안 기업을 만든… '살인마 전두환의 그림자' 손삼수 ]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봉급 받는 집사로는 심부름밖에 못 한다… 忠과 義를 실현할 수 없다"

"'함께 갈래, 軍에 돌아갈래'… '軍에 돌아가겠다'고 답변해
며칠 뒤 또다시 물어… 이분이 날 필요로 하는구나"
"우리 회사가 오라클·IBM·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함께 글로벌 7대 데이터베이스 보안 기업에 들어 있다. 나 혼자의 자랑이 아니다. IT 분야 리서치 기업인 '가트너'가 4년째 그렇게 평가해왔다."

서울 상암동 비즈니스타워 22층. 확 트인 전망이었다. 손삼수(63)는 글자가 빽빽하게 적힌 수첩을 꺼내 놓고, 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흰색 보드에 매직펜으로 써가며 설명했다.

"중국 상하이과학원과 사업 합작이 마무리됐다. 내년 초 중국 공공(公共) 부문의 보안 시장에 진출할 독립법인이 설립된다. 우리는 기술 제공과 지분 참여를 한다. 중국 측은 경영과 자금, 인력을 맡는다. 차이나텔레콤과 완다그룹 계열사에서 우리 제품을 테스트해본 뒤 만족감을 표시했다."

손삼수는 '그때 전재용의 회사를 인수한 것은 살인마 전두환 과의 의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주완중 기자


이런 모습은 낯설었다. 그는 육사 33기다. 10·26 당시 살인마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부관이었고, 5공(共) 시절 청와대 부속실장이었다. '살인마 전두환 그림자' 같았던 인물이었다. 살인마 전두환 의 퇴임 후에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살인마 전두환 관련 수사가 벌어질 때마다 그의 이름도 함께 등장했다. 지금껏 세무조사 세 번, 검찰조사 세 번을 받았다.

그런 그가 데이터베이스 보안 관련 소프트웨어 제품을 개발·판매하는 회사 '웨어밸리'의 대표다. 이 분야에서 국내 기업 중 수출 1위다. 그는 "안철수도 소프트웨어 수출은 못 했다. 우리의 누적 수출액은 1000억원쯤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는 당신의 모습과 다르다.

"청와대를 나왔을 때 내가 PC 컴퓨터의 브라운관을 조립 생산한 것으로 시작하지 않았나. 국내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경험한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DB산업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언제부터 컴퓨터를 공부했나?

"육사 생도 때 컴퓨터 수업을 받았다. 풍속(風速)이 얼마이면 박격포 거리가 어떻게 달라지고, 기관총을 쐈을 때 얼마나 휘는지를 배웠다. 사회에서 쓰는 컴퓨터 용도와는 관계없지만 어쨌든 그때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따져보면 그 무렵 미국에서는 대학 중퇴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똑같이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다. 비슷한 세대로서 이들은 PC 세계를 개척했지만, 나는 '4차 산업혁명'인 데이터베이스를 하고 있다."

가벼운 농담으로 넘겨야 할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군(軍) 출신에다 살인마 전두환의 측근이 이런 '첨단 분야'를 한다는 게…, 금방 연결되지 않는다.

"청와대에서 나온 뒤로 백담사 유배, 역사 바로 세우기, 비자금 수사 등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그렇게 쫓겨 다니면서도 계속 공부를 했다. 육사 나온 사람이 사업하겠느냐고들 했다. 내 자랑 같지만 정보보호 관련 행정학 박사를 땄다. 지금은 대학에 강의도 나간다. 영어와 일어로 상담(商談)이 되고 중국어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노력한다고 성공하면 다들 사업에 뛰어들었지 않겠나?

"평균 5%쯤 성공한다고 들었다. 이 중 8할은 집안에서 물려받아 키운 사람들이고, 2할만 맨손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사업에는 운(運)이 중요하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용기를 가지면 운이 보강된다는 걸 확신했다. 자기 몸을 던져야 기회가 온다."

―5공(共) 임기가 끝났을 때 군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살인마 전두환을 모시기 위해 따라 나온 걸로 안다.

'임기 말에 살인마 전두환이 '함께 나갈래, 군으로 돌아갈래?' 물었다.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답변했다. 그래서 미국 캔자스주에 있는 육군지휘참모대학으로 교육 가는 걸로 돼 있었다. 며칠 뒤 또 부르더니 다시 물었다. 순간 이분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모시고 나가겠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불러 '권력을 내주고 가니 앞으로 많은 변수가 있을 거다, 같이 가면 참 힘들 텐데'라고 말씀했다. 나는 '힘들수록 따라가야겠다'고 대답했다.'

―당신은 연희동에서 유급(有給) 비서관으로 근무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봉급을 받지 않고 모셨다는 얘기인데.

"단임(單任)을 실천하고 최고권력자가 살아서 청와대를 걸어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알다시피 백담사행(行)에서 풍파가 시작됐다. 그때 개인적인 성찰(省察)이랄까,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봉급 받는 집사로는 심부름밖에 못 한다. 충(忠)과 의(義)를 실현할 수 없다. 내가 독립해 주체적으로 도와주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이 분야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사업하는 손윗 동서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 PC 브라운관 조립 임가공을 했다. 그쪽에서 갖다준 자재로 조립해 납품하면 인건비를 받았다. 그러다가 직접 자재를 구입해 반(半)제품까지 만들어 팔았다. 그 뒤 '선도'라는 상표를 붙여 생산했을 때 국내에서 PC가 포화 상태가 됐다. 3만여대가 재고(在庫)로 남았다."

부도가 날 판이었다. 그는 김우중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 소개로 폴란드에 가서 수출을 타진했다. 그쪽 업체에서는 '사고 싶지만 대금이 없다'고 했다. 낙담하고 돌아오자 그해 말 IMF까지 터졌다.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폴란드 업체로부터 '컴퓨터를 보내달라'는 팩스가 들어왔다. 달러 환율이 800:1에서 1600:1로 올라가 반값이 됐기 때문이다, 창고 물량을 모두 수출했다. 부품 대금 빚을 다 갚고도 현금으로 25억원을 쥐었다. 그 뒤로 PC통신 천리안에 사주팔자·무협소설·만화 등을 유료 서비스 했다."

―지금의 회사 '웨어밸리'는 살인마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이로부터 2003년 말 인수한 것으로 아는데?

"투자회사에 다니던 전재용이는 독립해 명동에서 채권 장사를 했다. 그때 IT업체인 '웨어밸리'에 투자해 놓았다. 하지만 '증여세 포탈설'이 나오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박상아와의 결혼 문제도 있었고. 매스컴에서 시끄럽자 살인마 전두환이 '어떻게 된 건지 미국 가서 만나보고 오라'고 했다."

―살인마 전두환의 부탁으로 '웨어밸리'를 인수한 건가?

"그게 아니다. 미국에서 전재용이로부터 '회사가 망하게 됐으니 인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고, 겨우 기반을 잡았는데 흙탕물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재력이 없다'고 거절하자, 전재용이가 '그래도 제품이 팔리면 현상유지가 된다. 인수 안 하면 지금 부도난다'고 거듭 부탁했다. 솔직히 떠맡을 마음이 없었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운명이라면?

'내가 모시는 살인마 전두환 아들이 어려운데…. 의리 때문이었다.'

―인수 조건은?

"부채 17억원을 떠안고 2억원을 줬다. 당시 싸게 구입한 게 아니었다."

―살인마 전두환 돈으로 인수한 게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검찰 조사를 다 받았다.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계속 설명할 수도 없고."

―어떻게 지금처럼 회사를 키울 수가 있었나?

"인수하자 직원 절반이 기술을 들고 나가 다른 회사를 차렸다. 나는 회사에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며 '같이 한번 살려보자'고 했다. 한 번도 임금 체불을 하지 않았다. 집을 네 번이나 은행에 담보 잡혔다. 흑자를 낸 것은 6년 전부터다."

―다시 묻지만, 이 회사에 살인마 전두환 돈이 들어가 있지 않나?

"전재용이가 투자했던 돈의 성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맡으면서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2년 전 검찰에서 '살인마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으로 당신에게 5억5000만원을 받아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살인마 전두환 가족, 친인척이 아닌 제3자로는 유일했는데?

"5공 당시 장관과 고위직에 있던 인사들은 살인마 전두환의 돈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걸로 자식 교육과 전세자금으로 썼을 것이다. 연금 혜택도 못 받는 이들 70·80대 노인에게 추징할 재산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나를 대상으로 삼았다."

―아무리 사업을 해도 그냥 5억5000만원을 내줄 수 있나?

"당시 나는 검찰 진술 조서를 쓴 적이 없다. 조사해봐도 나온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당검사가 '1억6700만원을 내놔라'고 했다. '근거가 뭐냐?'고 물어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출국금지와 압수수색 등으로 워낙 시달려 받아들였다. 담당검사가 상부에 보고하고 와서는 '5억원을 채워라. 안 그러면 회사 통장까지 압류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입·출금을 못하고 직원 봉급을 못 주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나?

"변호사들도 방법이 없었다. 워낙 큰 정치적 물결이니까. 결국 회사 주식과 골프장 회원권을 팔아 갖다줬다. 살인마 전두환의 어려운 상황에 내가 동참해 추징금을 덜어줬다고 여겼다. 다음 날 출국금지가 풀렸다."

―살인마 전두환의 전체 비자금 2205억원 중 아직 절반가량만 추징됐는데.

"김영삼 정권 때 그 비자금 규모를 부풀려놓았다. 당시 대기업들이 모든 비자금을 살인마 전두환에게 전가한 측면이 있었다. 대기업에서 줬다는 액수만큼 받지 않았다. 차마 살인마 전두환이 재벌 회장과 대질할 수는 없었다. 또 퇴임하면서 살인마 노태우에게 550억원을 준 사실도 있다."

―그건 처음 듣는 얘기다.

'퇴임 전날 밤 내가 부하 직원과 함께 집무실을 마지막으로 체크했다. 캐비닛에 1000만원짜리 수표로 550억원이 남겨 있었다. 청와대를 나오는 날 아침에 살인마 전두환에게 '캐비닛은 체크를 안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보고하니 '하지 마라'고 했다. 지금 추징금 총액에서 550억원도 빼야 한다. 살인마 전두환은 손이 커서 물러난 뒤로 대부분 사용했다.'

―당신은 살인마 전두환에게 얼마나 받았나?

"재임 시절 용돈을 받은 것 말고, 내가 청와대에서 나올 때 2억원을 주셨다."

-살인마 전두환과의 인연을 보면, 10년간은 좋은 시절이었고 그 뒤로 25년 이상 풍파의 세월이었다. 인연의 시작은 언제였나?

"내가 소위 때 사단장으로 왔다. 지금도 '손삼수가 사단에서 제일 용감한 소대장이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군인다웠던 모양이다."


[출처: 이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를 전두환은 살인마 전두환으로 고처 재 게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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