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임마누엘! 주여 임하소서!]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11. 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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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백남기 선배님 영전에 명복을 기원합니다!


물대포에 시골농부 노인네가 다쳤다고 해서 위중까지 할 줄 몰랐습니다. 그 농민은 쌀값이 15만 원대로 폭락하고 정부가 주겠다고 약속한 논 면적에 따라 지급하는 고정직불금 100만 원도 안 주어서 그걸 달라고 상경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농민의 이름이 너무 낯익었습니다. 



서울대 연고대만 다녔어도 자신과 주위에서 '민주화의 대부'로 모셔져서 지금쯤 정치권 일각에서 땃땃하고 짭짤하게 살고 있을 그 백남기 일줄 몰랐습니다. 나 역시 1980년 5월 17일 이세종 선배의 처참한 죽음 앞에 그 백남기와 같은 꼴로 예비검속에 개처럼 잡혀가 그 살인적인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불법감금 되었던 사람입니다.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페이스북 담벼락에도 처음 며칠간 딴청을 피우며 최백호 북미주 콘서트 같은 헛소리만 게시했습니다. 그만 외면하고 피해버렸는데도 그 농민이 바로 그 백남기 임마누엘 동지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 동지는 1970년대 박정히 유신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인사입니다. 내가 전주 전북대학교를 입학하던 1980년 백남기 임마누엘 동지는 서울 중앙대에 복학하여 학원의 봄을 이끌었던 분입니다. 

.

1980년 5월 17일 살인마 전두환은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광주학살을 위해 광주만 제외한 전국 일원에 민주화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예비검속을 합니다. 제가 대학 1학년의 나이로 잡혀가던 그때. 

백남기 임마누엘 동지도 중앙대 기숙사에서 불법 체포당하고 고문과 옥고를 치렀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 동지는 저를 무척 초라하고 창피하게 만드는 분입니다. 저는 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심정으로 2003년 5.18 민주화 유공자로 못이기는 척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국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백남기 임마누엘 동지는 살인마 전두환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유공자는 무슨 유공자냐며 5.18 민주화 유공자 신청조차 거부한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입니다. 

이 후배를 늘 초라하게 만드시는 백남기 선생이 두개골을 절제하고 수술을 받은 후 부기가 빠지지 않아 두개골을 닫지도 못한 체 수술을 마쳤다고 합니다. 설사 경과가 좋아져도 식물인간이나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소견입니다. 

임마누엘! 주여 임하시어 백남기 임마누엘 동지에게 치유의 기적을 내리셔서 저 유신의 잔당들이 만든 죽음의 그늘을 돌아 다시 우리 곁으로 오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 

속상합니다. 어찌 정의롭고 의로운 사람들이 평생을 이처럼 처연하게 살아야 하는 겁니까? 


[이글을 애타게 백남기 선배님이 회복되길 기도하는 따님이신 백민주화(Minjuhwa Baek)님에게도 바칩니다.]


[‪#‎살인마‬ ‪#‎전두환‬ 을 처형(處刑)하라! 한 손엔 몽둥이 한 손엔 짱돌을 움켜쥐고 연희동(延禧洞)으로 몰려가 살인마(殺人魔) 전두환(全斗煥)을 주살(誅殺)하라!!]



.

백남기농민 약력
Posted 2015.11.17 22:07

1947년 8월 24일(음력)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년 2월 -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년 2월 - 광주고등학교 졸업 (17회)
1968년 3월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
․ 법대 학생회장
․ 군복무
1971년 10월 -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년 10월 15일 -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년~1975년 -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년 -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일흥농원 포도원 1년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1980년 3월 - 복교
1980년 -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년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년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1980년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년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년 8월 20일 -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년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년 -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1981년 11월 - 박경숙(율리아나)님과 결혼
1983년 -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년 - 가톨릭농민회 가입
1987년 -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년~1991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년~1993년 -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1992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1994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2015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2015년 - 부인 박경숙(율리아나)님과 슬하에 1남 2녀
2015년 -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행사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투 중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행진 도중 경찰 당국은 백남기 농민의 머리에 고압 물대포를 직사하였으며, 쓰러진 뒤에도 수십 초 간 직사를 계속하였고, 구호조치를 취하러 온 이들에게까지 직사를 계속해 빠른 응급 치료를 가로막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보성군에 사는 백남기(임마누엘) 농민이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다."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지난 11월 14일 전남 보성에서 상경한 백남기 농민에 대해 마을사람들은 흥 많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서둘러 밀을 뿌리고 다음 날 전국농민대회,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은 아내와 함께 밀농사 등을 짓고 된장, 고추장을 담그며 평생을 땀 흘리며 살아왔다. 또한 자기 농사뿐만 아니라 이웃 농민들과 더불어 살며 우리 농업 살리기에 매진한 사람이기도 했다." [출처: http://www.ccfm.or.kr/entry/백남기농민-약력 ]



유신독재·계엄군에 쫓겨 돌아갈 곳 없었던 농민 백남기
미디어오늘|손가영 기자
입력 15.11.18

“30년 동안 농사짓고 농촌살리기 운동한 강직한 사람… 경찰은 ‘살인진압’한 것”

[미디어오늘손가영 기자]
최강은(56)씨는 지난 17일 백남기(69)씨가 누워있는 중환자실 앞에 앉아 백 씨의 삶을 정리했다. 최씨는 30년 동안 백씨와 함께 농민운동을 하며 ‘막걸리 친구’로 지낸 동료이자 아우다. 최씨는 대학 선·후배부터 고향 주민까지 중환자실을 찾아온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을 들으며 “이 분의 삶을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백씨의 이력을 재구성했다. 최씨는 이를 백씨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카톨릭농민회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글은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SNS로 활발히 공유되고 있는 상태다.

백남기씨는 지난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살인적 진압’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피해자다. 경찰은 백씨의 머리에 물대포를 직사했고 이를 맞은 백씨는 그대로 쓰러졌다. 경찰은 이후 20초 넘게 물대포를 직사했다. 백씨는 코뼈 함몰과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응급실에서 백씨를 처음 진료한 의사는 바로 “가족을 부르라”고 했다. 백씨가 의식을 잃은지 5일 째인 18일, 중환자실에서 백씨의 가족은 “희망적이지 않고, 연명치료는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씨는 그를 “원칙적이고 강직한 형님”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백씨의 지난 50여 년은 민주화운동 10년, 수도사 생활 5년, 농민운동 35년이 채우고 있다. 백씨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묵묵히 행하는 사람이었고 그에 대해 후회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었다. 최씨는 “‘뭐든 잘 될 것이다’라고 주문을 외는 낙천적인 사람이었고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허드렛일을 도맡는 사람이라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 11월18일 서울대병원 본관 입구에서 백남기씨 고향 보성군 옹치면 주민들이 경찰의 '살인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백씨의 청년기는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의 폭력으로 얼룩져있다. 백씨는 1968년에 서울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해 1980년에 퇴학당했다. 12년 동안 백씨는 유신독재에 항의하다 수배생활을 했고 군사쿠데타에 항의하다 고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

1980년 쿠데타가 있기 전까지의 5년 동안 백씨는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봉쇄 수도원’으로 유명한 갈멜 수도회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2년은 농사일 등을 맡는 잡부로 일했고 이후 3년을 수도사로 생활했다. 최씨는 “이 때 포도농사 하나는 기가막히게 배워와서 포도에 대해 모르는게 없는 전문가였다”고 말했다.

백씨는 1973년엔 교내에서 유신철폐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수배명령이 내려져 1974년부터 약 2년 동안 명동성당에 피신해 수배 생활을 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오며 백씨는 복교할 수 있었지만 군사정부 반대 운동을 멈추지 않아 그해 5월 계엄군에 체포돼 10여 개월을 안양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백씨는 체포되기 전,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을 학교에서 주도했고 군사정권을 비판하며 중앙대 4000명을 이끌고 한강을 넘는 도보행진을 주도한 바 있다. 최씨는 “박정희 유신잔당 장례식 상여를 (남기형이) 직접 만들었다”며 “당시 중앙대에 상여를 아는 ‘촌놈’이 남기형밖에 없었다 하더라”고 말했다.

중환자실을 방문한 백씨의 대학 후배는 “계엄군이 5월17일 탱크를 몰고 학교 기숙사를 쳐들어왔을 때 나는 지하통로로 도망갔지만 남기형은 ‘잠깐 도망갈 거, 지금 가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기숙사에 남아 체포됐다”며 “참 강직한 사람이었다”고 최씨에게 전했다. 체포 후 고문관은 ‘김대중에게 돈을 얼마나 받았냐’ 물으며 백씨를 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물을 붓거나 성기를 불로 지지는 고문을 행했다. 최씨는 “워낙 낙관적인 사람이라 과거에 대해 힘들다거나 후회된다는 말은 일절 없었다”고 말했다. 백씨는 결국 1980년 8월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다음 해 3·1절 특사로 가석방될 때까지 수감생활을 했다.

계엄군에 체포되며 퇴학처분을 받은 터라 백씨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백씨는 1981년 고향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로 돌아왔다. 또다른 30년 지기 최용추씨는 “남기형 집은 6대 째 대대로 내려온 집이었다”며 “보성에 뿌리도 깊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아버지가 홀로 계셔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백씨는 농사를 시작했다. 백씨는 첫 2년은 농사를 익힌다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향에 터를 잡은 지 5년 후, 백씨는 ‘카톨릭농민회(카농)’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발을 들였다. 백씨는 이후 1992년 카농 전국 부회장까지 역임한다. 최씨는 “당시 사람들이 (남기형을 보며) ‘촌사람인데 말을 조리있게 한다’며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정도 많고 솔선수범해 부회장으로 추대했다”고 말했다. 카농은 1992년까지 ‘농협민주화 투쟁’ ‘수(水)세폐지 투쟁’ ‘농산물 제값받기 투쟁’ 등에 힘써왔고 백씨도 그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1992년에 백씨는 ‘전국 최초 민선 이장’이 되기도 했다. 최씨는 “원칙적인 성격 그대로, ‘면장이 뽑아주는 이장 임명장은 안받을란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백씨는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을 회의를 통해 이장으로 뽑혔고, 당시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는 관선 이장과 직선 이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보성군 농민회 권영식 회장과 최용추씨도 “아마 그때까지 전국에서 그런 이장은 없었다. 남기형은 옳은 걸 그대로 하려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백씨는 1992년 카농 전국 부회장을 맡으며 ‘생명운동’을 이끌었다. 최씨는 “당시 전국농민회 조직이 완성되며 ‘기존의 생존권 투쟁은 전농에게 맡기고 우리는 평화·생명·공동체운동을 해보자’는 바람이 일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우리밀살리기운동’을 들었다. 백씨와 최씨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여 동안 함께 광주·전남 지역을 방방곡곡 돌며 밀 종자를 모았다. 1984년 정부가 밀 수매를 중단하며 밀 생산이 붕괴되면서 한국에 밀 종자를 자취를 감췄다. 최씨는 “밀은 쌀 다음 많이 먹는 곡물인데 100% 수입이 됐고 수입밀은 방부제와 농약 문제가 심각했다”며 “정부가 수매 안하면 우리가 직접 만들어 수매하자”고 의기투합한 당시를 회상했다.

두 사람은 다행히 마을 어르신들이 간식으로 반찬통에 쟁여놓은 밀 종자를 찾았고 종자를 여러 사람에게 파종했다. 그렇게 3년이 흐르니 밀 농가가 점점 늘어나며 농사가 이루어졌다. 1992년 백씨는 우리밀실리기 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을 준비했고 1994년 공동의장을 역임한다. 이후로도 백씨는 쌀·밀·콩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카농, 우리밀살리기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농민공동체운동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최용추씨는 “(백씨는) 2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농사를 지은 순수한 농사꾼이자 농민운동에 헌신해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백씨를 기억하는 동료들은 백씨를 ‘참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보성군 농민회장 권용식씨는 “농민회에서 무슨 자리가 있을 때마다 막걸리를 일일이 빚어왔다”며 “힘내라고 나눠주고, 같이 마시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최씨도 “‘건강백세, 사업번창, 자손발복, 백년해로, 안심인명’ 이게 (백씨의) 막걸리 권주가였다”며 “항상 남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빌어줬다”고 말했다.

최강은씨는 “대학 선·후배들의 증언, 이때까지 내가 들은 이야기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집을 같이 들춰보면서 남기형 삶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무 준비도 없이 당하게 된 큰 사건이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무고한 시민들, 농촌 말라 죽는다고 할말 하러 올라간 농민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쓰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서울대병원에는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고 강신명 경찰청장 및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농성장이 설치된 상태다. 서울대병원 입구에는 지난 15일부터 백씨의 회복을 기원하고 경찰의 ‘살인진압’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18일 백씨의 마을 주민 34명도 직접 병원을 방문해 “선량한 농민들을 향해 대포를 쏘는 행위를 정부는 중단하고 각성하라”는 플랜카드를 들었다.

<최강은씨가 작성한 백남기 농민 약력>

1947년 8월 24일(음력)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년 2월 -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년 2월 - 광주고등학교 졸업 (17회)
1968년 3월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
․ 법대 학생회장
․ 군복무
1971년 10월 -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년 10월 15일 -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년~1975년 -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년 -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일흥농원 포도원 1년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1980년 3월 - 복교
1980년 -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년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년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1980년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년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년 8월 20일 -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년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년 -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1981년 11월 - 박경숙(율리아나)님과 결혼
1983년 -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년 - 가톨릭농민회 가입
1987년 -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년~1991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년~1993년 -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1992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1994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2015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2015년 - 부인 박경숙(율리아나)님과 슬하에 1남 2녀
2015년 -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행사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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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픕니다.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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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e Kwak 아멘. 
마음속에 눈물이 흐릅니다.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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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Min Su 그 분의. 진정한. 쾌율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라파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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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재 쾌유를빕니다!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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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재 힘없는 자는 억욱함을 호소할 방법이 없는 나라.
Samuel Lee 그래서 자식들에게 죽어라 공부해서 다른자를 밟고 억압하는 힘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모양입니다. ... 그러니 서울대 연고대 나온 정치지도자들이 3류대 나온 사람들을 사람취급이나 하겠어요.
안호재 이번 시위 발생 원인은 누구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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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sup Yi 털고 일어나시길 기도합니다
Samuel Lee 선배님 늘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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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Jun Hyun Nam 정말 안타깝습니다...꼭 일어나시기를 기도합니다..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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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baik Cho 참 안타깝네요! 꼭 일어나셔서 희망이 일어나는걸 보이소서!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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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전국민이 억울해서 화병에 시달림니다.
Samuel Lee 용우 형님은 상경투쟁 하지 마세요. 물대포 맞지 마시게 ...
이용우 투쟁 독려하는 소리로 들을래요.
Samue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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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현정 ㅠㅜ...... 반드시 회복하시길 기도헙니다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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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연 아멘!주여 임하소서!!!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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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Young Cho 함께 기도합니다. 전능의 힘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소서...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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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joon Lee 이번에도 계정원놈들한테 또 당했시유!!! ㅋ
Samuel Lee 조카님도 기도 할줄 아시면 좀 해보시게 ... 화살기도라도 ...
Hwajoon Lee 화살보다는 M60으로 하면 안될까요??? ㅋ
Hwajoon Lee's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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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i Vanessa Shin 쾌유를 기원합니다
Samuel Le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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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i Vanessa Shin 시위가 생기는것을 탓하기전에 이들의 소리를 외면하는 표독한 정권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마치 반동분자로 몰아가는 일부 사회의 시선도 무책임하다고 본다. 시위대들의 비난받는 희생으로 방관하고 몸사리는 비굴한 국민들도 기본 권리를 취하는 것이다.
Samuel Lee 정말 감사합니다.
Samue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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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Lee 쌀값 ㅠㅠㅠㅠ
Samuel Lee's photo.
Samuel Lee 아이고 쌀값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올려준다고 해서 박근혜 찍었는데 오히려 15만원으로 폭락해서 약속했던 고정직불금 100만원 달라고 했는데 물대포 ... 아이고 이게 뭡니까? 몇만원 가지고 목숨을 바처야하는판에 박근혜는 폼잡고 일년에 74조원 북한에 주겠다고 합니다. 아이고 ...
Samue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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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ani A. Kim 가까운 곳에서 보았네요. 종로1가에는 상경한 농민들과 역사 국정화반대에 참가한 중고등학생들이 많았어요. 몇시간동안 최루액 대포를 쏴대는데 조준을 잘못?해서 인도까지 사정없이 퍼부었어요. 인도에는 교복입은 학생들,어린이들도 있었는데요.경찰이 소화기까지 쏴대는 통에 연기가 자욱했어요. 냄새만으로도 구역질이 나고 눈을 뜰수가 없게 매운데, 살갗이 찢어지도록 아픈 그 최루액을 온 몸으로 맞으며 버티시는 분들이 계셨어요.우산을 씌워주는 분들도 계셨구요....See More
Samuel Lee 아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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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Park 욕이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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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ani A. Kim 이제는 거리에서 모두 싸워야 하는 걸까요? 연세 드신 한 분이 제 옆에서 '이 자리에서 4.19날 경찰이 발포해서 밤 12시까지 싸웠는데 160명이 그 날 죽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87년 6.10민주 항쟁도 바로 그 자리였구요. 평화시위를 해도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나가고 언론에는 폭력 시위로만 나오는데 평화시위가 의미가 있을까..얼마나 죽고 다쳐야할까..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Samuel Lee 아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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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Kyu Kim · Friends with 김숙현
유신본당과 싸우고 유신잔당과도 싸우고나니 창조유신이 나타나서 이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내모네요~~ 안타깝고 서글픕니다 ~
Samuel Lee 감사합니다.
Samue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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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koun Na · Friends with Gum-Ran Gong
이런 글을 보면 
"전말이 전도돼다"
이번 농성은 농민대회가 아닌 통합적 정권 타도를 위한 폭력적 태러를 준비한것 같더라고요....See More
Samuel Lee 어렸을때 애들 괴롭히던 힘쌘놈을 약한애들 여러명이 힘을 합쳐서 혼내준적이 없지요? 아니면 그 못된 힘쌘놈인 적도 없나요? 어린애들도 이해되는 상식을 부정해 보고 싶으신가요? 독재자들에게 못이룬 갑의 꿈을 대리만족이라도 하시는 건가요?
Samuel Lee 그래도 무감각한 사람들보다는 이런 의견 보여 주시는 나 선생이 그나마 인간답기는 합니다. 그 점 감사합니다.
Wonkoun Na · Friends with Gum-Ran Gong
다수의 사람들이 무감각 한것이 아니라 이런 sns에 잘못 반응을 보였다가 봉변 당할까~ 염려스럼이 앞서서 갈고 싶지 않아서 일겁니다. 선생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들 빼고요.
Samuel Lee "전말이 전도돼다"가 아니라 "본말이 전도되다"
LikeReply19 hrs
Samuel Lee Wonkoun Na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은 느껴져 좋습니다.
LikeReply9 hrsEdited
Samuel Lee Wonkoun Na 이거 보셨나요? 버스 위에서 벌벌 떨며 손하나 까딱 않은 경찰이 물대포를 조준하며 쏘아댑니까? 전후 사실관계를 알고 댓글 다는거요? 반대부터 하려고 댓글부터 다는거요? 그 나이는 어디로 자신거요? https://youtu.be/ee4LjzHrnIg
Samue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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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wangsun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개판치고 있지요
50이 넘어 식어가는 피에 열을 가하고 
피를 역류하게 합니다...See More
Sungbo Baraami · 5 mutual friends
백남기 어른의 회복을 간절히 바랍니다.
UnlikeReply16 hrs
Samuel Lee Wonkoun Na 이거 보셨나요? 버스 위에서 벌벌 떨며 손하나 까딱 않은 경찰이 물대포를 조준하며 쏘아댑니까? 전후 사실관계를 알고 댓글 다는거요? 반대부터 하려고 댓글부터 다는거요? 그 나이는 어디로 자신거요?https://youtu.be/ee4LjzHrn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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