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경찰간부 요람'에서 '무풍지대'로
갈태웅 기자
발행일 2008-10-11
"세무대학이 폐지됐고 철도대학도 매각한다는데, 정작 시끄럽던 경찰대 문제는 어떻게 된 거죠?"
경기도내 한 경찰서에서 경사로 근무하는 A(34)씨는 지난해말까지 한창 논란이 됐던 '경찰대학 존폐 문제'가 새 정부 출범 이후 갑자기 수면 아래로 사라진 이유가 궁금하다. '작은 정부', '공직 개혁' 정책으로 공무원들과의 마찰도 불사하던 MB정부가 정작 경찰 조직문제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경찰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조차 없기 때문이다.
경찰대학. 초급 경찰간부 양성을 위해 지난 1981년 개교한 특수목적 대학이다. 창경 당시부터 고질적인 우수인력 확보난에 시달리던 경찰조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경찰 관련 지식과 소양을 체계적으로 정립시켰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경찰대는 그러나 조직통로 독점, 특정집단 세력화, 인사·병역상의 각종 특혜 등과 같은 폐해도 양산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하게 존폐 논란에 시달려 왔다. 특히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진보와 '권위주의' 타파 등 개혁·변화 바람이 불면서 경찰대학 개혁 문제는 본격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경찰의 날'에 노 대통령이 '특정집단 독주'라는 표현으로 경찰대를 간접 비판한 이후 경찰대 존폐 논쟁은 20여년만에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후 입학정원 축소, 대학원 전환 등 각종 개편 방안이 심각하게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같은 목소리는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문제, 촛불집회 등의 긴급 현안에 밀려 사실상 사라지고 말았다. 더구나 뜨거운 정국 속에서도 각종 정부조직 개편 작업에는 가위질이 가해졌지만 경찰대학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어떠한 언질이나 장기계획, 심지어 용역검토 작업도 전무한 실정이다. 심지어 군사정권 시절, 한때 최고의 권력 중심 기관으로 명성을 날렸던 대통령 경호실(현 대통령실 경호처)까지 현 정부에서 직제가 격하된 현실 속에서 경찰대는 왜 '무풍지대'가 됐을까. 제기되는 배경들과 함께 경찰대 존폐 논의를 둘러싼 연혁과 쟁점 등을 살펴본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
익히 잘 알려진대로 경찰대학 폐해의 쟁점은 크게 학교제도 및 인사·병역상의 특혜와 경찰 내 특정조직 과부하에 따른 동맥경화 현상 초래 등 두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적을 상대로 하는 군과 시민을 상대로 하는 경찰은 엄연히 성격이 다른데도 똑같은 사관학교식 운영을 한다는 점, 졸업 후 육사와 달리 의무복무기간이 일괄적으로 6년에 불과한데다 대학원 위탁교육까지 의무복무기간에 산입한다는 점, 남자의 경우 2년간 전경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군복무 의무를 종료하고 의무복무기간에도 포함한다는 점, 국비로 교육하면서도 졸업 이수 및 경위직급 부여 요건이 육사나 일반대학 수준보다 크게 높지 않다는 점 등이 우선 거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순경 출신 한 경찰간부는 "경찰대학 제도는 출발부터가 '경위=소위', '전경대 소대장=야전 소대장'이란 잘못된 등식을 안고 있다. 경사 이하 계급을 군조직의 부사관 계급으로 볼 수 없진 않느냐"면서 "경찰대를 사관학교로 본 당시 정권의 무지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간부직 독점 및 집단세력화도 경찰조직 내 상당한 논란거리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위 이상 경찰관 중 경찰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4%로, 일반순경 출신(86.5%)보다는 압도적으로 적지만 경찰간부후보생(1.4%)이나 고시 출신(0.1%)보다는 비중이 높다. 특히 알짜 요직이라할 수 있는 경찰청 본청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경우 경찰대 출신은 약 41%로, 간부후보생(28%)이나 고시(18.6%), 일반(11.7%)을 모두 앞서고 있다. 현재 경찰대 출신 중 최선두주자인 윤재옥(1기)경북지방경찰청장의 경우 47세로, 초고속 승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상반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폭행사건 당시 경찰대 1기 출신인 황운하(현 대전중부경찰서장) 총경이 경찰 수뇌부 책임론을 거론하고, 황 총경 징계에 경찰대 동문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인 사례처럼 소위 '이너서클화'도 비판적 시각을 받고 있다. 당시 이 일련의 움직임들은 수개월 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정면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경찰대 개혁, 20여년째 시끌
1985년 첫 졸업생(경위) 배출 이래 경찰대는 줄곧 첨예한 화두였다. 경찰청은 지난해 6월 한국행정연구원이 작성한 '경찰대 운영 혁신방안에 관한 연구용역보고서'를 토대로 연간 120명인 경찰대 신입생 정원을 80명으로 줄이는 안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처럼 대학원을 신설, 졸업한 경찰관들을 경위로 임명하는 방안을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경찰대 개혁안이 나온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다. 1979년 11월 '경찰대학설치법'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오는 개혁안은 줄곧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울 것도 없는 개혁안을 30년 가까이 되풀이한다는 것 자체가 개혁이 더디다는 점을 여실히 방증한다.
당시 경찰대학설치법 제정안을 심사보고한 김상년 법안심사소위원장은 국회 제103회 내무위 6차 회의에서 "경찰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25세 미만으로 확대해 현직 경찰에게도 기회를 부여하도록 내무부장관 다짐을 받았다"고 발언했다.
경찰청 의뢰로 1992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성한 '2000년대 경찰행정 발전방안'에서도 "장기적으로 경찰대를 경찰 재교육기관, 특히 간부 대상 연수과정 중심으로 운영함으로써 경찰인력 자질 향상에 기여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일반 대학에 경찰 관련 학과 설치를 적극 유도하고 잠정적으로 경찰대 졸업생 규모를 축소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앞으로 10∼15년 뒤 경찰대로 인해 조직 내부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체적 근거로는 경찰조직 간부급이 대부분 경찰대 출신으로 충당되면서 경찰조직의 유연성, 조직 내 분위기와 전반적인 사기 등에 미치는 영향, 여타 우수 간부인력의 유입 가능성 저하 등이 거론됐다.
이러한 우려는 1990년대 후반 현실로 드러났고, 이무영 당시 경찰청장(현 18대 국회의원)은 1998년 경찰청 자문기구로 경찰개혁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어 후임 최기문 청장도 2003년 취임 직전 인사청문회에서 "앞으로 순경으로 3년 이상 근무한 우수 경관들을 선발해 1년간 교육시킨 뒤 경위로 임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2004년 경찰청 혁신기획단에서도 이 같은 안을 검토했지만 결국 백지화됐다.
▲2000년대 후반 본격 논란 점화
일시나마 잠잠하던 경찰대 논란이 다시 불붙게 된 건 2005년 하반기부터. 평소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요직 독점 등에 불만을 표출해오던 비간부·하위직 출신 전·현직 경찰·소방관들이 '대한민국무궁화클럽'이란 모임을 결성하고, "하위직 경찰관들과의 내부 갈등을 유발하는 경찰대학 제도를 폐지하라"고 공개 촉구하면서 재촉발됐다.
국회에서도 이에 가세했다. 2005년부터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 최규식(현 18대 국회의원)의원이 '2008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재학생이 모두 졸업한 이후 경찰대학을 폐지한다'는 내용의 경찰대 폐지 법안을 발의하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최 의원은 특히 2006년에는 국회도서관에서 '경찰대학 어떻게 할 것인가? 폐지 후 대안모색 토론회'를 열고, 공개적으로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이에 앞서 정균환 전 민주당 의원은 1998년 '경찰개혁'이란 연구 서적 출판을 통해 국회의 경찰대 폐지론 움직임에 일정 부분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전국 대학 경찰행정학과를 중심으로 한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물들을 속속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미 2003년 동국대 대학원 경찰행정학과 학생들에 의해 '경찰대학 개혁' 관련 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이후 계명대와 원광대, 관동대 등 지방 거점 경찰행정학과 교수진들에 의해 '경찰대 폐해론'을 지적하는 문헌들이 줄기차게 생산돼 나왔다. 특히 경찰 선진국인 영국에서 경찰학과 정치학을 함께 공부한 이력이 있는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장은 국내 최초로 경찰대학 문제만을 집중 조명한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등의 연구서적을 2004년과 2008년 잇따라 출간해 세간의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 열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9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치사를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경찰대 문제 등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정점에 다다랐다. 이미 2003년 인수위 시절부터 경찰대 문제와 개선방안 등을 놓고 칼날을 세운 바 있는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경찰에서 출신 연고에 따라 내부집단이 형성되고 특정 집단 독주체제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자기혁신 과제로 삼아 고쳐나가야 하고, 장차 제도개혁까지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지적, 경찰대 출신들의 반발을 불렀다.
▲경찰대 옹호론
물론 경찰대 폐지론이 전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최규식 의원에 의해 경찰대 폐지론이 쟁점으로 급부상한 뒤에도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김부겸·이인영 의원과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은 "폐지보다는 인사 운영의 묘를 살려 경찰대에 대한 조직 안팎의 갈등과 비난을 잠재우고 우수 인력을 양성하는 요람으로 키워야 한다"고 반박했었다.
하지만 이들도 경찰대 출신들의 특정부서 집중 현상에 대해서는 삐딱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이 의원은 "경찰청 내 혁신기획과 재정, 인사·교육 등의 60% 이상을 경찰대 출신이 차지한 반면 특수수사와 형사·외사·보안분야에는 30% 미만에 그치는 등 특정 부서에 경찰대 출신이 몰려 있다"면서 "본청 특성상 기획부서에 우수자원이 필요하겠지만 일선 현장으로 경찰대 출신을 내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의원도 "폐지가 능사는 아니다. 다만 우수 인재들을 기획부서 등에 편중시키지 말고 수사 등 힘들고 남들이 기피하는 분야에서 헌신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학계에서도 옹호론자들은 꽤 있다. 숙명여대 법학과 이영란 교수는 "경찰대의 공과는 치안서비스 수요자인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평가될 일이지, 내부 불만이나 일반대학 경찰 관련학과의 이해타산으로 판단될 문제가 아니다"면서 "경찰대는 차별화된 전문교육으로 경찰학 발전을 주도하면서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당사자인 경찰대 출신들은 과연 어떤 옹호론을 펴고 있을까. 이들은 현재 총경급 이상 경찰간부 500여명 중 경찰대 출신은 20.8%로 간부후보생(46.7%)보다 적은데다 임관자 대비 총경급 이상 진급비율도 경찰대 출신은 간부후보생의 5.2%보다 못 미치는 4.6%에 그치고 있다며 요직 독점 비판을 반박하고 있다.
황운하 전 경찰대 총동문회장(대전중부경찰서장·1기)도 최근 "기수문화의 비리 가능성은 솔직히 인정하지만 이는 어떤 조직이든 가능한 일로, 견제장치나 투명한 인사제도 마련 등이 대안이다. 섣부른 폐지론은 굉장히 부적절하고 설득력이 없다"며 폐지론을 정면 비판했으며 경찰대 출신으로 현재 일반대학 경찰행정학과에 재직 중인 김상호 대구대 교수도 "경찰대 문제를 단순히 시장 논리로만 봐선 곤란하다"고 경계론을 편 바 있다.
▲논란 재점화 시점은
그렇다면, MB 정권 출범 이후 경찰대 문제는 왜 여지껏 국정 전반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경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우선, 집권 당시 온통 경제정책에만 초점을 맞춰 온 현 정부 운영자들이 타 정권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안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는데다 타 공공조직과 달리 경찰대 존폐를 포함한 경찰조직 개혁 작업은 10만명 경찰 구성원간 상당한 반발과 후유증 등이 장기간 수반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게다가 자치경찰제 도입·시행 과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국가경찰제의 주요 산물인 경찰대학 제도부터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최응렬 교수는 "현 정권이 대선 운동을 펼칠 당시부터 치안문제는 주요 공약사항에 포함되지도 않는 등 주요 관심대상이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하위직 경찰들의 재반발 등 논란 불씨가 다시 지펴질 경우 경찰대 존폐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국정 전반 쟁점 사안으로 재부상할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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