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조직 만드는 경찰대 폐지하라” / 시사저널 1999.07.15

서울지검 검사, 검찰 PC 통신에서 주장…경찰대 출신들 “법적 대응 불사”

정희상 기자 | 승인 1999.07.15(목) 00:00|507호

김광식 경찰청장이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돌출 행동을 중지하라고 경찰에 지시한 가운데 이번에는 검찰에서 ‘돌출 행동’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현직 검사가 ‘경찰대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지검 강력부의 한 검사는 6월25일 검사와 검찰 직원이 이용하는 자체 통신망에 ‘경찰대 설치 운영의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제목의 글을 띄웠다. 글의 요지는 ‘경찰대 동문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찰 조직이 인권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경찰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

그는 경찰대학을 폐지해야 하는 근거로 ‘인사 특권’과 ‘사조직화’를 들었다. 즉 경찰대생이 학비를 국고에서 지원받고, 졸업 후 병역 특례를 인정받아 전원 7급 공무원 상당인 경위로 임용되는 것은 인사 특혜라는 것이다. 또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경찰의 집단 이기주의를 관철(수사권 독립)하는 데 동원되는 것이야말로 경찰대 출신을 중심으로 경찰이 사조직화하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물론 검찰 PC 통신망에 뜬 이같은 주장이 검찰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글이 공개되어 파문이 일자 글을 올린 검사는 “수사권 독립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집단 행동을 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외부로 유출되지 않으리라 믿고 개인 차원에서 글을 띄웠다”라고 해명했다. 서울지검 간부들도 ‘개인의 일기와 같은 성격’이라며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 글은 수개월 동안 전개된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대한 일선 검사의 시각을 대변하는 성격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 서울지검의 한 소장 검사는 “사실 할 말을 한 것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의 PC 통신망에 오른 경찰대 폐지 주장이 알려지자 경찰대 출신 간부들은 ‘법적 대응 불사’를 외친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주장이 국민에게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현실이 안타까워 경찰 스스로 자제하는 마당에 검찰이 극단적인 표현으로 경찰대학 동문을 자극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검·경 수뇌부의 자제 명령 안 먹혀

최근 들어 경찰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검·경 대립이 정국 불안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는 등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동안 공세 입장에 있던 경찰이 먼저 진화에 나서는 형국이었다. 경찰청은 6월28일 경찰 수사권 독립 주장을 담은 대자보를 경찰서와 파출소 게시판에 게재한 김석기 서울 수서경찰서장을 서울 경찰청 방범지도과장으로 인사 조처했다. 이어서 김광식 경찰청장은 경찰청 국장단과 각 지방경찰청장에게 수사권 독립 논의에 돌출적으로 나서는 경찰대 출신 소장 간부들을 특별 관리하고 교양 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경찰 수뇌부의 이런 조처가 수사권 독립 의지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찰은 거의 없다. 경찰청에 근무하는 경찰대 출신 한 간부는 “우리의 수사권 독립 주장이 자칫 검찰과 감정 대립으로 비쳐 본질이 호도되는 사태를 걱정했다. 검찰과 국민 감정을 생각해 좀더 성숙한 방법으로 접근하자는 내부 공감이 형성되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경찰 간부 2명을 유럽에 파견했다. 선진 자치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검·경 간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서이다. 또 경찰대 동문들은 눈에 띄는 모임을 자제하고 자연스럽게 수사권 독립을 공론화하기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연구하고 전화로 의견을 듣기로 했다.

이런 시점에 검찰 내부에서 경찰대 폐지 주장이 나오자 경찰대 동문은 전체 경찰대 출신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며 법적 대응 불사까지 들고나온 것이다. 검·경 수뇌부가 비난 여론을 의식해 공개적인 대립을 자제시켰지만 일선 검사와 경찰 간부 사이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입력시간 : 1999-07-1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