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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中有眞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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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정동영 민주당 고문이 미주교포들의 개성공단 투자를 독려하러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정동영 고문과 함께 왔던 이종걸 의원과 통성명을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함께 이종걸 의원의 휴대전화기로 사진도 찍어 이메일로 보내주겠다 했는데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하지만 매년 시절 인사는 빼놓지 않고 한다. 어떤 해는 서명 필체가 다른 연하장을 두 장씩이나 받았다. 가라 사인 중인 두 비서의 목록에 내 이름과 주소가 동시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올해는 이메일로도 오고 또 우편으로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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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희귀피부암을 앓고 있다고 친한 성공회 신부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내 각시가 암전문간호사(Oncology Nurse)를 오랫동안 한 적이 있어서 치료방법을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불치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암이 마치 감기 걸리듯 하고 5년 생존율을 쉽게 넘어가 어지간한 암은 암도 아닌 세상에 아침 새벽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별세 소식을 접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또 이종걸 의원의 연하장이 도착해 있다. 내지에는 피아노 치는 모습이 실렸다. 자신은 귀공자라고 말하는 듯하다. 겉장에는 전각글씨로 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가 찍혀있고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이 망명 시절 조각한 작품이라고 잔잔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과연 이종걸 의원은 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를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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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학사상 최고의 금자탑은 누가 뭐라 하여도 도연명(陶淵明)이다. 수많은 불멸의 시들이 많이 있지만 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가 포함된 20수의 연작시 음주(飮酒)도 빼놓을 수 없다. 나도 개인적으로 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가 포함된 그 다섯 번째 시중에 나오는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을 좋아하고 자주 음미하며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없는 이무기로 살아가는 표표한 도연명의 마음을 헤아리곤 한다. 상하관계로 속상할 때 나는 도연명처럼 자리를 박차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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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수백 년 전에 살다간 도연명이지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오늘의 나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당 이회영 선생도 중국땅에서 그리 느끼셨으리라. 모든 참 진리를 아는 듯 연하장 표지에 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를 박은 이종걸 의원은 과연 이 숭고한 의미를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내가 보기엔 어찌 국회의원 자리에 목매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야당의원이 있어 주어야 할 없는 자들의 절규 속에서 나는 이종걸 의원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참으로 아쉬운 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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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오두막을 지었는데 사람 사는 인근에 있다네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그런데 수레바퀴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지,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유를 아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지척의 땅도 절로 외져진다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가끔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 한 송이를 꺽어들고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물끄러미 남녘 산을 바라보며 소일할 뿐이라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날이 저물어가니 산색은 더욱 아름답게 물들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던 새들도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보게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이런 것 속에 참된 의미가 있음이 분명할 터인데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마땅한 어휘를 잊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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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나면 도연명의 음주 20수 모두를 음미하여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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