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4_李命稙大監

일제의 신하들 -정미칠적과 고종의 마지막 신하 - 이명직.이철규 부자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2. 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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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맨 왼쪽), 내부대신 임선준, 군부대신 이병무,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정미칠적(丁未七賊: 을사조약 체결 2년 후인 1907년 7월에 체결된 한일신협약 -제3차 한일협약 또는 정미7조약 - 조인에 찬성한 내각 대신 일곱 사람을 가리킴) 중 탁지부대신 고영희, 법부대신 조중응, 학부대신 이재곤만 빠진 체 찍힌 사진입니다. 내부대신 임선준이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조선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 명의로 체결된 불평등 정미7조약 조인에 찬성하고 순종의 재가를 얻도록 협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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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정부 급(及) 한국정부는 속히 한국의 부강을 도(圖)하고 한국민의 행복을증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좌개조관(左開條款)을 약정(約定)함.
제1조 한국정부는 시정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수할 사.
제2조 한국정부의 범령의 제정 급(及)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예히 통감의 승인을 경할 사.
제3조 한국의 사법사무는 보통행정사무와 차(此)를 구별할 사.
제4조 한국고등관리의 임면은 통감의 동의로써 차를 행할 사.
제5조 한국정부는 통감의 추천한 일본인을 한국관리에 임명할 사.
제6조 한국정부는 통감의 동의없이 외국인을 고빙(고聘) 아니할 사.
제7조 명치 37년 8월 22일 조인한 일한협약 제1항을 폐지할 사.
우위증거(右爲證據)함으로 하명(下命)은 각본 국정부에서 상당한 위임을 수하여 본 협약에 기명조인함이라.
광무11년 7월 24일
내각총리대신훈이등 이완용
명치40년 7월 24일
통감후작 이등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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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시 1895년 탁지아문 주사로 대궐에 들어 1906년 규장각직학사(종2품) 근무하던 이명직 선생은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함께 궁에서 쫏겨나 수원 동탄 돌머루에 칩거하며 젊은이들에게 해외유학을 독려하며 사회계몽 활동을 벌이다가 일제는 1914년 농상공부 금광국 기수인 아들 이철규를 평안북도 희천군 동면장으로 보내 부친과 떨어뜨려 논후 1915년 호랑이 사냥꾼으로 위장한 일본헌병에게 독살되었습니다. 고종 주위에 충신들의 암살과 살해는 고종이 승하한 1919년까지 이어집니다. 1919년에는 고종 승하의 의문을 제기하던 이명직 선생의 아들이며 농공상부 금광국 기수를 지내고 평안북도 희천군 동면장으로 있던 이철규가 일제에 참살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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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초 저들 정미칠적의 모습에서 현대의 한국 정치가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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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암살된 충신 이명직(李命稙) 선생


1919년에 참살된 이명직 선생의 아들, 금광국 기수, 평안북도 희천군 동면장 이철규 (李喆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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