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8_黃薔(李相遠)

[인연과 기적]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2. 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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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가 5천 명 한도에서 몇 명씩 줄었다 늘었다 하다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게시글이라도 올리면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몰려나가기도 하고 몰려들기도 합니다. 떳떳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진도 올리고 자신의 이력이며 학력도 올리고 합니다. 물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만 보이도록 설정할 수도 있을 터이니 말이지요. 

알고 지내던 어릴 적 친구나 지인들인 경우는 세월이 흘러감을 올려진 사진을 보고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 시절을 전라북도 전주에서 보냈습니다.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형사들의 눈을 피해 이곳저곳에서 자취를 하기도 하고 은밀하게 숨어 살기도 했습니다. 그때 송대관이 나왔다는 전주영생고 2학년 학생들 3명과 어울려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녀석은 부친이 교육자였던 모양인데 제법 똑똑하고 문제의식이 뚜렷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정신 번쩍 나는 사회과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지요. 그중 한 녀석은 경찰 간부의 아들이었는데 소귀에 경 읽기였지만 안전하게 몇 달 지내기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도망 다니며 언제 치도곤을 또 치러야 할지 모르는 처지인 저는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어린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지 말고 사람들을 위해 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정원석, 박재훈, 한상국, 박영준. 그 아이들의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얼굴이 많이 익어 프로필을 찍어보니 영생고 출신이라고 찍혀있는 겁니다. 그랬더니 맹갈이형을 기억해내더군요. 맹갈이는 원래 그 당시 김제에서 농사를 지으며 함께 마당극을 하던 서울대 미대 출신 가수로 유명한 김민기 형이 스스로 붙인 별명인데 제가 빌려서 쓰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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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서울의 연우무대가 만들어 지기 전에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http://blog.daum.net/enature/15853759)'를 전주에서 함께 올린 뒤부터 '맹갈'이란 이름을 쓰게 되었는데 그 맹갈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아마도 검정고시를 거쳐서 서강대학교를 진학했던 모양입니다. 3명 중 원석이와 상국이가 서강대학교를 갔고 재훈이가 성균관대학을 갔다고 하니 심지 있게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게시판 내용을 살펴보니 정신도 바르게 박혀있고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사는 게 느껴져 기뻤습니다. 귀여운 딸도 3명씩이나 있으니 줄어가는 한민족을 지키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교류가 있었다면 미국에 데려다 고생을 좀 더 시켜서 더 큰 제목을 만들었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하지만. 정말 다행입니다. 

정원석 군이 바르게 살아준 건, 제가 살아온 흔적과도 무관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민감한 고2 시절 전해준 한 마디 한 마디가 정원석 군의 삶에 바르고 큰 지침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진한 보람을 다시 한 번 느껴 봅니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고 살아가는 게 희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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