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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이라는 조카분이 한분 존재함을 확인했고 직계가족들은 한국을 떠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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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백두산포수의 아들로 경기도 양주(京畿道 楊州,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원산출신이라고 했다)에서 출생한 김상경은 백두산포수인 아버지가 죽을 위기에 처한 러시아 귀족을 구해주고 그 보답으로 아들 김상경을 러시아로 데려가 달라하여 1909년 김상경은 러시아로 이주한다. 그 후 제정 러시아 할곰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러시아 장교로 러시아 터키주재 대사관 무관등을 지낸다. 이후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과의 전투에서의 공으로 대위를 거쳐 중령으로 진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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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은 귀족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가 쫒겨나고 1917년 10월 볼세비키혁명 후 제정러시아군에서 해임된다. 이 후 적백내전에 백계러시아군으로 참전하지만 소유하던 1만2천핵타르의 방대한 토지를 볼세비키에게 몰수당한다. 러시아군에 복무하는 동안 러시아 여자(마리아)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1919년 적백내전이 적군 승리로 점점 굳어지자 백계러시아군에 속해 있던 폴란드군을 이끌고 폴란드로 이주하여 신생 폴란드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폴란드 여성(헬레네)과 결혼한다. 폴란드 아내는 두 번째 아내다. 나중에 결혼한 폴란드인 아내와의 사이에는 1남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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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폴란드군에서 대령까지 진급하고 폴란드 제9사단 제8경비대장으로 복무한다. 20년대말 독일령 동프로이센 굼비넨으로 이주하여 생활한다. 그러나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자 가족을 이끌고 꿈에 그리던 북한으로 귀국한다. 해방후 백계 러시아군 장교였던게 소련파 남일 허가이등에게 발각되자 가족을 이끌고 남한으로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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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바로 1947년 만59세의 나이로 육군 사관학교 3기로 입교한후 단기 교육 후 대령으로 임관한다. 5여단장으로 재직하지만 여수.순천 반란사건에서 예하부대14연대가 반란군에 가담하여 문책당하고 해임된다. 당시 주소지는 서울시 금병동 6 (서울市 錦兵洞 6)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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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대령은 러시아어, 폴란드어, 일본어, 체코어, 터키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백선엽장군의 회고록 "실록 지리산"에도 등장하여 '폴란드군출신이고 부인이 폴란드인이라 장교들 사이에 화제이던 인물'이라고 백선엽은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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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哈爾濱外國語學校(하얼삔외국어학교) 卒業, 露西亞할곰陸軍士官學校 卒業
경력 및 활동 : 歐州第1次戰(구주 제1차대전) 出征, 土耳其駐在 露西亞大使官附武官(터키 주재 러시아대사관부무관, 波蘭國第9師團第8警備隊長(폴란드 제9사단 제8경비대장), 光復軍 國內支隊 司令部 高級參謀(광복군 국내지대 사령부 고급참모), 平山牧場長(평산목장장) 等 歷任. 1950년 現在 陸軍大領, 大韓國軍 總司令部 勤務(國防部 第一旅團長).
-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문서, 참고문헌 대한민국인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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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 찍은 가족사진. 가운데 서 있는 유럽인 여성이 부인인 폴란드 여성 헬레네이고 안고 있는 아이가 막내딸이다. 왼쪽에 선 남자가 러시아인 첫 아내와 사이에서 난 장남으로 20살이라고 나온다.
▲ 砲煙彈雨의 歐洲를 九死一生으로 脫出 卅年 만에 도라온 金相謙氏[寫]//都宥浩博士도 昨日橫濱에 到着 - (동아일보 1940년 1월 25일)
▲ 異域風霜三十個年 寤寐不忘의 故土에 昨日 金相謙氏 朝鮮向發[寫] - (동아일보 1940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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