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Ⅰ] 문학 15.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1941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5. 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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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jcP_v1Pzj8

 

[Ⅰ] 문학 15.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1941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도 전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인류의 어리석음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년 2월 10일~1956년 8월14일)이 1939년에 집필하고 1941년에 초연한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은 억척어멈 안나 피어링(Anna Fiering)이라는 여주인공이 1624년에서 36년까지 12년간 유럽 각지의 전쟁터를 유랑하면서 장사를 하는데 그러는 동안에 배다른 세 자식(용감한 맏아들 아일립과 정직한 둘째아들 슈바이처카스, 동정심 많은 외동딸 카트린)을 모두 잃고 장사도 점점 기울어간다. 이러한 몰락의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이동수레가 점점 허술해지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녀는 때로 신교 측인 스웨덴 군을 따르기도 하고 전세가 뒤바뀌면 구교도측 의 황제 군을 따르기도 하면서 철저하게 전쟁을 이용하여 벌어먹고 살지만 자식들을 모두 잃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끝내 전쟁의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부유한 독일 제지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개신교 신봉자인 어머니와 천주교 신자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의학공부를 했으나 문학과 연극에 더 많은 인생을 허비하며 반전사상으로 독일을 떠나 망명생활을 했다.

 

 

 

 

015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억척어멈과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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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열다섯번째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억척어멈과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 시작합니다. 전쟁을 통해 이득을 추구하다가 결국 전쟁 때문에 자식들을 잃게 되는 억척어멈의 운명을 통해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평화가 계속되면 무기장사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도 전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인류의 어리석은 전쟁의 참혹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억척어멈과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 속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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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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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일찍이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띄고 있었는데,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보였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 자신의 사상을 작품에 이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실질적으로는 그의 동료들과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로 서푼짜리 오페라 각본은 거의 대부분 그의 여비서였던 엘리자베스 하우프트만이 영국인 게이의 거지 오페라 번역한 것을 메인 텍스트로 삼은 것이어서 후에 하우프트만이 공동 저자로 인정되었습니다. 감성적인 관람보다는 이성적이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관람을 요구하는 인간소외 현상의 '소격효과 (Verfremdungseffekt)'라는 기법으로 극작계에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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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2.10~1956.8.14)1898 2 10 독일 바이에른 왕국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제지공장 경영자인 아버지 베르홀드 프리드리히 브레히트(Berthold Friedrich Brecht) 어머니 조피 브레히트(Sophie Brecht) 큰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이름은 오이겐 베르홀드 브레히트(Eugen Berthold Brecht)였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태어났을 , 독일은 변혁기에 접어들고 있었고 산업화의 거센 물결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부유한 중산층이었으며 베르톨트의 모친은 개신교 프로테스탄티즘을 숭배하였고, 그의 부친은 구교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어린시절 친구로는 카스파 네허(Caspar Neher)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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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때인, 1915년에는 로마시인 호레이스의 조국을 위해 죽는것은 합당하고 달콤하다라는 시에 대해 특정목적을 위한 값싼 선전이라는 에세이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 당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로무알드 자우어 신부의 개입으로 퇴학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18세때인, 1916 7월부터는 베르트 브레히트(Bert Brecht)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때인, 1917년에는 1차대전에 징집되지 않으려고 뮌헨 대학교 의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때 연극부에 들어가 연극을 접했습니다. 봄에 폴라 반홀저(Paula Banholzer, 1901~1989) 첫사랑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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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때인, 1918 가을 제1 세계 대전 말기에 아우그스부르크 야전병원에서 의무병으로 배치 되었으나 전쟁이 1달만에 끝나 집에 돌아왔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그는 이미 학창 시절 때부터 형성되어온 반전 사상을 작품의 주요 테마로 선정하기에 이르렀고, 반전사상은 남은 인생 동안 그의 고유한 철학적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요소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해에는 희곡 바알(Baal)’ 죽은 병사의 전설(Legende vom tote Soldaten)' 저작하였습니다. 의학공부를 계속 했으나 문학과 연극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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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때인, 1919 희곡 한밤중의 북소리(Trommeln in der Nacht)' 뮌헨 극장에서 공연되어 젊은 연극인에게 주는 클라이스트 문학상(Kleist-Prei)’을 수상했습니다. 그해 7월에는 첫사랑 폴라 반홀저(Paula Banholzer, 1901~1989) 사이에서 아들 프랭크 반홀저(Frank Banholzer, 1919.7~1943.11.13) 출생했습니다. 22살때인 1920년에는 어머니 조피 브레히트(Sophie Brecht)가 사망했고, 정치 코메디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1921 11월과 1922 4 사이에 극작가 아놀트 브레논(Arnolt Bronnem)과 함께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이름을 베르톨트(Bertolt) 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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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때인, 1922년 성악가 마리안네 조프(Marianne Josephine Zoff, 1893.6.30 ~ 1984.11.22)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25살때인, 1923년에는 '도시의 정글 속에서를 창작하고, 그해 3 12일에는 마리안네 조프와 사이에서 한네 마리안느 히오프(Hanne Hiob, 1923,3,12~2009,6,23) 출생합니다. 26살때인, 1924년에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여배우 헬레네 바이겔(Helene Weigel)’ 만나 바람을 피웁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기 시작합니다. 1924113 헬레네 바이겔과 사이에서 아들 스테판 세바스티안 브레이트(Stefan Sebastian Brecht, 1924 11 3 ~ 2009 4 13)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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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때인, 1927년에는 시집 가정기도서(Hauspostille)'를 출판하고, 마리안네 쪼프와 정식으로 이혼합니다. 30살때인, 1928년에는 작곡가 커트 바일(Kurt Weil) 공동작업을 통해 서푼짜리 오페라(Dreigroschenoper)’ 베를린 쉬프바우어담 극장에서 초연 되어 100 이상 공연하며 대대적인 성공을 이뤄 유명해집니다. 작품은 독일의 중산층을 겨냥한 풍자희극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중산층들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희극의 속성을 파악치 못하고 그들의 가치관이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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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때인, 1930년에는 헬레네 바이겔과 정식으로 결혼하여 여생을 함께합니다. 그해 1028일에는 헬레네 바이겔과 사이에서 막내딸 바바라 브레히트-(Barbara Brecht-Schall , 1930.10.28 ~ 2015.8.31)’ 태어났습니다. 34살때인, 1932년에는 희곡 어머니(Die Mutter)'를 초연하였습니다. 그의 친구들과 함께 칼 코르쉬(Karl Korsch)교수의 마르크스주의 강의를 청강하고 유물변증법 연구회를 조직했습니다. 35살때인, 1933227일에는 나치스가 집권하고 공산당을 탄압하는 빌미가 된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날인 2 28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나 프라하, 비엔나 취리히 등지를 거쳐 덴마크의 스벤보르에 정착합니다. 이일로 나치스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저작물을 소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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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때인, 1935년에는 모스크바로 여행을 하고, 나치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합니다. 40살때인, 1938년에는 3제국의 공포와 비참, ‘갈릴레이의 일생을 창작합니다. 41살때인, 1939년에는 희곡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집필합니다.  이 시절에는 스웨덴의 스톡홀름 근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43세때인, 194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헐리우드 근교에 정착하여, 독일 망명 문인들과 만남을 가집니다. 46세때인, 1944년에는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집필합니다. 49세때인, 1947 12월에 미국의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이 불어 FBI의 감시를 받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다시 독일 민주 공화국, 동독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당시 많은 동료 좌파작가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 서독으로 이주하였지만, 독일 접령 연합군 군정당국이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독 입국을 거부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동독을 택하여 동베를린으로 이주하여. 15년간의 망명기간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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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세때인, 1949년에는 부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극단 베를린 앙상블 창단합니다. 그리고 그해에 모스코바에서 스탈린 평화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Deutschlands, SED) 간부들이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던 동독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여 풍자시를 쓰기도 했으며, 정부가 인민을 버렸다면서, 1953 동독 노동자 봉기 진압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집필활동과 연극연출에 전념했습니다. 56세때인, 1956 8 14 동베를린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가족으로는 1929 결혼한 아내 헬레네 바이겔과 자녀인 슈테판과 바바라가 임종을 지켰습니다. 1923 마리안네 조프와 사이에서 태어나 마리안네 조프가 데리고 한네 마리안느 히오프도 생존해 있었습니다.

(S12)

억척어멈과 자식들(무타 쿠하지 운트 이레 킨다) 내용과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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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4 , 스웨덴 체류 , 상사와 교활한 모병꾼이 어느 도시근교의 도로에서 전쟁의 지원병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억척어멈 안나 피어링(Anna Fiering) 수레가 접근합니다. 억척어멈은 군인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하지만 군인들의 주된 관심은 자식들 중 명을 포섭하는데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히 아일립에게 눈독을 들입니다. 그러나 억척어멈은 자식은 어느 명도 군대에 보낼 없다고 말합니다. 억척어멈의 주위를 데로 끌기 위해 상사는 혁대를 하나 사겠다는 관심을 보이고, 그녀가 가격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모병꾼이 아일립과 함께 몰래 빠져나갑니다. 아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는 카트린에게 수레를 끌라고 하며 다시 길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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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5년과 1926 사이에 억척어멈은 스웨덴 군을 따라 폴란드를 통과합니다. 그녀는 스웨덴 사령관 숙소의 주방에서 취사병과 거세한 수탉 마리의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용병 대장과 군목 그리고 아일립이 등장합니다. 용감한 아일립은 만용을 부려 농부를 살해하고 20마리를 훔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대장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대장의 요구에 따라 아일립은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부엌에 있던 억척어멈이 노래를 이어서 부릅니다. 둘은 재회하고 기뻐합니다. 억척어멈은 아들에게 화를 내는데 이는 소를 훔쳤기 때문이 아니라 몸을 조심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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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로부터 3 , 둘째아들 쉬바이처카스는 정직함을 인정받아 군대의 출납계원이 되었습니다. 억척어멈은 병기장교로부터 탄환을 사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취사병과 군목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함께 정치얘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대포와 사격소리가 들려옵니다. 취사병은 달려나가 연대와 합류합니다. 군목은 사제의 옷을 갈아입고 억척어멈과 함께 머뭅니다. 억척어멈은 구교 깃발을 자신의 수레 위에 달아놓았습니다. 쉬바이처카스는 연대의 금고를 가지고 나옵니다. 어머니가 이것을 버리라고 하지만 쉬바이처카스는 버리지 않고 금고를 이동마차에 보관하게 됩니다. 사흘 그는 구교병사들에 의해 체포됩니다. 창녀인 이베트가 억척어멈의 수레를 200냥에 사서 돈으로 슈바이처를 구해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몸값을 흥정하다가 슈바이쳐는 사형을 당합니다. 군인들이 쉬바이처카스의 시체를 가지고 억척어멈에게로 와서 확인을 하려 하지만 억척어멈과 일행은 그를 모른 하고 상사는 시체를 시체더미에 갖다 버릴 것을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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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척어멈은 장교막사 앞에서 몇몇 군인들이 자신의 수레를 망쳐 놓았다고 항의하겠다고 서있습니다. 억척어멈은 조금 후에 항의하러온 젊은 군인을 진정시키며 그런 일시적인 분노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군인은 그냥 돌아가고 그녀 역시 항의를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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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이지나 억척어멈의 포장마차는 총탄으로 파괴된 어느 마을에 서있습니다. 억척어멈과 동행하던 군목은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폐허가 집에서 아직 갓난아이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카트린이 뛰어들어가서 젖먹이 하나를 구해옵니다. 카트린은 자장가를 웅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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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32, 바이에른 잉골슈타트 근교에서 억척어멈 일가는 황제 측의 구교 용병대장인 틸리장군의 장례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억척어멈은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궁금해합니다. 군목은 어떻게든지 전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억척어멈은 물품을 사들이고자합니다. 물건을 사러보낸 카트린이 이마와 위에 상처를 입고 돌아옵니다. 억척어멈은 딸에게 상처를 입힌 전쟁을 저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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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국도 변에 억척어멈의 수레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전쟁은 다른 형태의 장사일 뿐이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녀의 사업은 번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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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스웨덴의 왕이 죽자 평화가 계속됩니다. 억척어멈은 큰아들 아일립을 만날 있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억척어멈은 평화로 인해 사들여놓은 물품을 팔지 못해서 자신은 망했다고 말합니다. 억척어멈이 시장에 가고 없는 동안 아일립이 손에 수갑이 채워진 군인에게 끌려들어옵니다. 그는 평화가 선포된 이후 농부를 죽이고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집행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그는 떠나야 했고, 군목은 그와 함께 갑니다. 취사병은 사실을 억척어멈에게 알리지 않기로 합니다. 억척어멈이 돌아와서 전쟁이 다시 발발했음을 말하고 서둘러 다시 길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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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4 가을, 장사가 안돼서 억척어멈 일행은 동냥질 이외에는 것이 없습니다. 통의 편지가 취사병에게 도착하는데.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음식점이 이제는 자신의 몫이라며 억척어멈에게 함께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말도 못하고 얼굴도 엉망인 카트린은 장사에 방해가 뿐만 아니라 장소도 비좁으므로 그녀를 놓고 가자고 합니다. 카트린은 이야기를 엿듣고 몰래 빠져나가려 하다가 어머니에게 발각됩니다. 취사병이 음식을 얻어먹으러 사이에 그의 소지품을 남긴 억척어멈과 카트린은 수레를 끌고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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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척어멈과 카트린은 농가를 지나다가 노래를 들으며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전쟁이 터져도 상관이 없다는 부유한 자들의 노래입니다. 억척어멈은 노래를 듣다가 다시 길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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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36 정월, 포장마차는 따로 떨어진 농가 옆에 서있습니다. 기수 명과 중무장한 세명의 황제의 구교병정이 숲에서 걸어나옵니다. 그들은 농가에 잠입해서 그들을 위협해서 마을로 가는 샛길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군인들은 마을사람이 잠들어있는 사이에 마을을 공격하려는 부대의 척후선봉이었습니다. 어쩔 몰라 서서 기도하고 있던 농부 사이에서 카트린은 몰래 빠져나와 북을 들고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북을 치기 시작합니다. 농부와 농부의 아내는 놀라서 북치기를 그만두라고 하고, 앞에 갔던 기수와 군인들도 놀라서 돌아옵니다. 수레를 부숴도 카트린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계속 북을 칩니다. 결국 그녀는 총에 맞아떨어지고 북치기를 그칩니다. 하지만 할레시의 사람들은 깨어서 방어태세를 이미 갖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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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억척어멈은 카트린 옆에 앉아서 자장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농부의 아내가 카트린이 죽었음을 확인해줍니다. 억척어멈은 아일립을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억척어멈은 장례 치르는데 필요한 돈을 주고 다시 떠납니다. 억척어멈은 자신의 생계와 자녀를 빼앗아간 전쟁의 폐해에 직면하면서도 전쟁이 인간에 미친 파괴적인 영향을 깨닫지 못하고 극이 끝날 때에도 여전히 장사를 걱정하며 전장으로 진군해 가는 다른 부대를 따라 포장마차를 이끌고 떠납니다.

(S21)

억척어멈과 자식들에 대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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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품은 1938년과 1939년에 망명지인 스웨덴에서 완성되어 1941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 되었습니다. 막과 장의 구별을 따르는 전통적인 희곡 형식이 아니라, 12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나열식 희곡입니다. '30 전쟁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작품의 배경은 30 전쟁입니다. 12년간 유럽 각지의 전쟁터를 유랑하면서 포장마차를 이끌고 장사를 하는 종군 상인 억척어멈 안나 피어링(Anna Fiering) 그녀의 배다른 자식인, 아들 아일립과 슈바이처카스, 그리고 카트린의 몰락의 과정을 전쟁의 승리와 패배의 과정과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억척어멈은 전쟁을 사업으로 간주하고 오직 전쟁만이 자신과 자식들을 먹여 살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에서는 여러 가지 모순된 상황과 모순적 인간상이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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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쓰게 직접적인 계기는 나치스의 전쟁 준비에 대한 덴마크 정부의 태도였습니다. 덴마크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히틀러의 전쟁을 배척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적당히 공조해 이득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작품을 통해서 이런 근시안적인 정책을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전개된 30 종교전쟁은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독일이 관련된 유럽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극작품의 배경으로 적합했습니다. 다양한 서사적 형식이 사용되고 있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사극의 정수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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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소재는 1670년에 나온 그림멜스하우젠(Grimmelshausen) 소설 시골의 떠돌이 여인 꾸라셰(디 란즈소토아제쩨벤 꾸라셰Die Landstorzetzerin Courase)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소설에서는 떠돌이 여인 꾸라셰가 기병대위에서 중위로 중위에서 주보의 여인으로 나중에는 집시여인으로까지 전락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주인공의 몰락과 끈질긴 생활력은 그대로 남겨놓으면서도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전개된30년종교전쟁중의 사랑과 애욕이라는 원래의 주제를 전쟁과 장사라는 문제로 변형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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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어멈이라 불리는 안나 피어링(Anna Fiering)이라는 주보의 여주인은 1624년에서 1936년까지 12년간 유럽 각지의 전쟁터를 유랑하면서 장사를 하는데 그러는 동안에 배다른 자식, 용감한 맏아들 아일립과 정직한 둘째아들 슈바이처카스, 동정심 많은 외동딸 카트린을 모두 잃고 장사도 점점 기울어갑니다. 이러한 몰락의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이동주보가 점점 허술해지는 것으로도 있습니다. 그녀는 때로는 신교 측인 스웨덴 군을 따르기도 하고 전세가 뒤바뀌면 구교도측 황제군을 따르기도 하면서 철저하게 전쟁을 이용하여 벌어먹고 살지만 자식들을 모두 잃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끝내 전쟁의 모순을 깨닫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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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통해 이득을 추구하다가 결국 전쟁 때문에 자식들을 잃게 되는 억척어멈의 개인적 상황은 모순적이고 비참합니다. 첫째 아들 아일립은 용기 때문에, 둘째 아들 슈바이처카스는 정직함 때문에 묵숨을 잃고, 카트린은 동정심 때문에 변을 당하는 모습을 통해 전쟁상황에서 소시민들이 미덕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전쟁 통에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며 아이를 차례로 잃는 억척어멈의 운명을 통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전쟁의 참혹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왕이 전사하고 한동안 평화가 계속되자 억척어멈은 장사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도 전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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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장편소설 억척어멈과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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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열여섯번째 , 알베르트 카뮈(Albert Camus) 이방인(리톤저LEtranger, the stranger, 1942)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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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억척어멈과 그 자식들Brecht.hwp

 

 억척어멈의 리얼리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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